“언제까지 생각만 할 겁니까?”
비참함은 다음 생에나 맞이하자
실행하는 길엔 분명 스승이 기다리고 있다
쇠락하는 시골마을을 구해낸 계약직 공무원의 고군분투기
무대는 이시카와현 하쿠이시의 미코하라 지구. 인구 2만2670명의 소도시로, 주민의 50퍼센트는 65세를 넘긴 고령화 마을(한계취락)이다. 마을 주민들의 연 수입은 900만 원(87만 엔). 지난 20년 새 인구는 37퍼센트나 줄어들었다. 게다가 농사를 포기하는 경작지는 늘어만 가고, 아기 울음소리가 끊긴 지도 오래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이 마을 젊은이들이 자기 출신지를 숨기고 부끄러워한다는 것. “어디 출신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들은 말끝을 흐린다. 자기 고향에 자부심이 없는 사람들…… 게다가 20년 후면 마을 주민의 평균 연령은 90세가 된다. 꼬부랑 노인들이 그때도 과연 먹고살 수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 희한한 발상으로 똘똘 뭉친 계약직 공무원 다카노 조센이 이 마을에 발령을 받아 온다. 도시에서 방송 구성작가를 하던 그는 집안 사정상 이곳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결코 오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나이 제한에 걸려 임시직밖에 될 수 없었다. 다카노는 상사에게 물었다. “정규직이 될 방법이 정말로 없는 건가요?” 상사는 이에 “꼭 필요한, 대단한 존재가 되지 않는다면 무리다”라고 답했다. 그때 다카노는 결심한다. “한번 불살라보자.”
1라운드: “천황 폐하, 이 쌀을 한번만 드셔보시죠”
2005년 4월, 다카노는 시장으로부터 두 가지 지시를 받는다. 첫째, 과소 고령화 마을을 활성화할 것. 둘째, 1년 안에 농작물을 브랜드화할 것. 참고로 마흔 후반의 다카노는 전에 농사를 지어보거나 물건을 팔아본 경험이 전무했다. 하지만 농촌의 현실을 목격한 그의 가슴은 뜨겁게 달아올랐고, 과소 마을을 변화시켜보겠노라고 다짐하게 된다.
다카노는 마을 변화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마을 주민들을 주역으로 삼는다. 우선 그는 어르신들이 애써 지은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팔려면 농협에 대한 의존성을 끊고 직판장을 실시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도시 출신 공무원과 농촌 노인들의 손발이 착착 맞을 리가 없었다. 마을 어른들은 새로운 변화에 직면하자 불안한 마음에 들고일어났다.
“적자가 나면 시가 책임질 건가?”
“처음부터 이익을 볼 순 없죠. 흑자가 날 때까지 해보는 겁니다.”
순간 재떨이가 날아왔다.
“자네가 쌀을 팔아오면 말을 듣지.”
“……알겠어요, 쌀을 팔아보겠습니다.”
그에게 당장 할당된 수량은 50가마니. 허세를 부렸지만 대책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가슴은 여전히 뜨거웠다. 다카노는 이때부터 ‘브랜드 쌀 작전’에 뛰어들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미코하라 쌀이 브랜드화될 잠재력이 있는가였다. 조사해보니 이곳 쌀은 맛있기로 전국 3위에 올라 있었다. 이 기사를 한 경제지에서 발견한 그는 뛸 듯이 기뻤다.
마음이 바빠진 그는 머리를 굴렸다. ‘일본인들은 은근히 주변 사람들 말은 별로 안 믿고 타지의 높은 사람들 얘기만 귀담아듣지. 그렇다면 이 쌀은 가장 유명하고 높은 분께서 드셔주셔야만 한다.’ 높은 분은 누구인가. 천황 폐하 부부가 아니던가. 그는 어렵사리 궁내청에 연락을 넣었다. 그런데 일은 의외로 쉽게 풀리는 듯했다. 천황 부부께서 이 쌀을 드시기로 했다는 전갈이 온 것이다. 하지만 반나절 후 절망적인 전화가 걸려왔다. 궁내청에서 “아까 한 말은 없던 일로 해야겠습니다”라며 말을 바꾼 것이다. 동네방네 떠들면서 자랑했는데, 망신살이 제대로 뻗쳤다! 이 프로젝트는 이대로 막을 내리게 되는 걸까.
2라운드: “교황님, 우리 쌀을 맛보실 생각이 1퍼센트도 없습니까?”
이쯤에서 다카노의 학창 시절로 돌아가보자면, 그는 평범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실력이 뛰어나기보단 포기를 모르고 온갖 발상을 짜내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것. 우주항공에 관심이 많았던 십대 시절, 그는 스탠퍼드 대학의 페이터 A. 스타록 박사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다. 한 손에 사전을 들고 서툰 영어로 ‘저는 선생님의 팬입니다’라고 밝힌 것. 어느 날 다카노 앞으로 커다란 상자가 도착했다. 거기엔 스타록 박사의 논문과 답장이 담겨 있었다.
다카노는 그때 모습 그대로였다. 궁내청에서 쌀을 거부한다면 노선 변경을 꾀할 때다. 마을 이름이 미코하라神子, 미코하라神子. 번역하면 ‘신의 아들’이다. 신의 아들은 곧 하느님의 아들, 하느님의 아들은 예수 아닌가. 그렇다면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누구일까. 바로 전 세계에 11억 명의 신자를 거느리고 있는 가톨릭이다. ‘당장 교황에게 이 쌀을 보내자!’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자. ‘교황은 독일 출신인데 쌀을 드실까?’ 그래도 일단 편지부터 썼다. 하지만 한 달을 기다려도 답장은 오질 않았다. 두 달이 지나도 묵묵부답이었다. ‘역시 외국인에겐 쌀이 먹히지 않는구나. 50가마나 판다고 약속했는데, 이 일을 어쩐담.’ 또다시 노선을 바꿀 때였다.
3라운드: 미국 대사관과의 협상
미코하라 지구의 쌀, 쌀, 쌀……. 다카노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일본에서는 미국을 쌀 미米자를 써서 미국米国으로 쓴다. 뜻풀이를 하자면 미국은 바로 ‘쌀의 나라’다. ‘쌀의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미코하라 쌀을 당연히 먹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의 생각은 거침없이 뻗어나갔다. 하지만 생각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행동하는 게 그의 신조 아니던가. 시간도 별로 없었기에 그는 작전을 개시하기로 했다. 때는 2005년이었고,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조지 W. 부시였다. 하지만 ‘한번 드셔보세요’라며 미코하라 쌀을 무턱대고 백악관으로 보냈다가는 세관에 걸릴 게 뻔했다. “전략을 우회해서 일단 아버지 부시 주소부터 찾아보자. 대사관을 통해서 아버지한테 보낸다고 하면 특권으로 검역에 통과시켜줄지도 몰라.” 아버지 부시가 먹고 나서 그 아들 부시에게 쌀을 전해주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보자. 이 길 외에 다른 수단은 없다! 그때부터 다카노는 미국 대사관과의 협상에 돌입했다.
이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어, 어디세요?”
“로마 교황청 대사관입니다.”
“네? 뭐라고요?”
“바티칸 말입니다, 바티칸. 내일 비행기에 오르시지요.”
과연 이 작은 마을에 한 줄기 빛이 쏟아질 것인가. 왜 교황님은 그를 만나자고 한 것일까. 독자들은 그의 다음 행보를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회의는 없다, 기획서도 없다
상사에겐 사후 보고한다
미코하라의 쌀은 어쨌거나 엄청난 대성공의 드라마로 이어진다. 그리고 다카노는 4년 만에 정규직 공무원이 되는 행운을 얻는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슈퍼 공무원’이라 부르게 된다. 이 책엔 그가 농가 소득을 올리고 젊은이들을 마을로 모여들게끔 한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소개된다. 농협에 의존 않고 직판장을 실시한 것, 무농약·무비료의 자연 재배를 확산시켜 ‘미코하라 지구 살리기 프로젝트’에 돌입한 것, 일본 전통문화인 요보시 부모 제도를 벤치마킹해 ‘유휴지, 빈집 정보 은행 제도’를 시행한 것……. 그의 이야기는 일본방송 TBS 일요극장에서 <나폴레옹의 마을>이란 드라마로도 방영됐다. 드라마 설명엔 “다카노 조센의 『로마법왕에게 쌀을 먹인 남자 과소의 마을을 구한 수퍼 공무원은 무엇을 했나?』를 원안으로 해, 소멸 직전의 한계 취락을 정비하기 위하여 개혁을 일으키는 ‘슈퍼 공무원’의 분투를 그린다”라고 나와 있다.
일개 공무원인 그는 이런 일을 어떻게 이뤄낼 수 있었을까. 맨 처음 시청에 와서 그가 느꼈던 점은 공무원들이 맨날 회의만 하고 보고서를 쓸 뿐, 아무것도 실행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때 다카노의 머릿속에 묘안이 떠올랐다. 예산을 적게 배정받으면 상사에게 보고 절차를 거칠 필요도 없고 윗선의 개입도 줄어들 것이다! 행동하는 데 걸림돌이 많으면 이 마을은 변할 수 없다. 그는 ‘기획서 따위 쓰지 않겠다’ ‘모든 일은 사후 보고한다’라는 제안을 상사에게 함으로써 공무원 조직을 발칵 뒤집어놓는다. 하지만 예산을 쓰지 않는다고 하니 그에겐 결국 행동의 자율권이 주어졌다. 게다가 한 선배 공무원은 그에게 “범죄 행위만 아니면 모두 내가 책임져주겠다”고까지 말해줬다. 그리하여 그는 한계취락을 부흥시키는 일에 뛰어든다.
그는 ‘축적된 실패’도 결국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가능할지 그것만 생각하면 됩니다. 할 수 없는 사람은 할 수 없는 겁니다. 사심을 없애고, 자신을 버리면 일이 잘 풀리거든요.”
이 책이 일본 공무원들의 필독서가 되고, 드라마로 제작되며, 젊은이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내고 있는 이유다.
책 속으로
책 속으로
과소‧고령화 마을의 외로운 노인들의 실상을 직접 보고 나니, 어떻게 이 지경이 되도록 시청은 손을 놓고 있었는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꼬박꼬박 월급만 챙긴 공무원들은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았고, 관공서도 행정 기관도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정말 개탄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도 농민들이 기댈 곳이라고는 시청밖에 없는 눈치였다. 하지만 시청은 그들을 위해 어떤 효과적인 방법도 찾아내지 못했고 결국 마을은 점점 더 피폐해졌다. _22쪽 시청의 무력함, 마음에 불을 붙이다
에르메스의 캘리그래퍼를 찾아보다가 마침 요시카와 선생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는 2001년에 에르메스의 스카프를 제작했고, 게다가 하쿠이에서도 별로 멀지 않은 후쿠이에 거주하고 있어서 조건이 좋았다. 다만, 다들 요시카와 선생에게 부탁하려면 수백만 엔이 들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예산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매니저를 통하지 않고 선생에게 직접 연락한 뒤, 미코하라 지구의 과소·고령화 마을의 힘든 상황을 전하고 간곡히 부탁했다. “선생님, 사실 저희는 사례금 대신 쌀 30킬로그램밖에 드리지 못합니다. 그래도 ‘노토 미코하라 쌀’이라고 써주실 수 없을까요? 선생님의 글자가 마을을 구할 수 있습니다.” _119쪽 에르메스의 캘리그래퍼가 디자인하다
그동안 나는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달려왔다. 공무원에는 세 종류가 있다. 있으나 마나 한 공무원, 있어서는 안 될 공무원, 없어서는 안 될 공무원. 이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어디서 일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인가 아니면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인가…… 이는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_269쪽 산이 높지 않으면 저변 확대가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