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식』은 1973년에 민음사에서 출간된 이제하의 첫 창작집이다. 당시 이 작품집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국내 작가들과 출판계에 충격을 던졌고, 나아가 70년대 창작집 출판붐을 일으키는 데 일조를 했었다. 특히, 1974년 표제작「초식」이 현대문학 신인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으나 이를 거부, 더욱 화제가 되었었다. 1988년 문학과비평사에서 재출간되었던『초식』은 1997년 마침내 새로운 장정으로 문학동네에서 이제하 소설전집의 첫째권으로 출간되어 다시금 주목을 받게 되었다. 첫 출간 당시에는 데뷔작「손〔手〕」을 비롯하여 총 14편의 작품이 수록되었으나, 단편「유자약전(劉子略傳」이 장편으로 묶이는 관계로 이번『초식』에서는 빠졌다. 소설집『초식』이 첫 출간된 그해 문학평론가 김현은 이제하의 소설세계를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정리한 바 있다. 1. 이제하의 소설 주인공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광기(狂氣)이다. 2. 그 광기는 가족제도의 혼란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습속(習俗)의 무질서화에서 연유한다. 3. 그것은 제도 자체를 방법론적으로 부인한다. 4. 그것의 구극적인 목표는 노동이 유희가 되고 유희가 노동이 되는 상태이다. (김현, 「일탈과 컴플렉스에서의 해방」, 『현대문학』1973년 12월호)
파괴와 탈출의 욕망으로 들끓는 젊은 문학정신
문학적 출발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는 이제하 소설의 이 네 가지 명제를『초식』에서 선명히 확인할 수 있다.『초식』 속에 흐르고 있는 기본적인 물줄기는 일탈과 해방의 욕망인 것이다. 그의 소설은 삶을 구속하는 이데올로기와 제도, 그리고 이데올로기와 제도의 바탕이 되는 일상적 생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해방의지로 가득 차 있다. 그의 광기의 미학은 그러한 일탈과 부정의 몸짓이며, 이는 그의 문학을 지배하는 기본 원리이다. 『초식』에 수록된 대부분의 작품은 유년시절과 군 제대 후의 청년기를 전후로 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4·19와 5·16과 같은 사건들, 그리고 그 이후의 군사정권과 이에 의하여 경제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추진된 근대화 등과 같은 시대적 현실로 점철된 60년대의 풍경을 담고 있다.「황색의 개」는 전쟁을 통해 불구가 된 주인공의 자아 상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으며,「임금님의 귀」는 5·16 이후의 군사정권에 대한 야유와 조소를 담고 있고,「초식」은 나의 부친의 국회의원 출마벽에 얽힌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서 자유당, 4·19, 5·16혁명에 이르는 한 시대의 정신적 황폐감을 묘사하고 있다. 이렇듯 이제하의 소설들과 역사, 사회, 시대 사이의 거리는 매우 가깝다. 그러나 이제하는 60년대라는 시대를 대상으로 한 시대적, 혹은 역사적 상상력에 신화적 상상력을 덧붙임으로써 환상적 리얼리즘이라는 독특한 경지를 개척한다. 바로 이 점이 이제하 소설만의 개성이며 득의의 영역이다. 이제하 소설에 있어서 역사나 시대는 그 자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 혹은 사실의 차원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환상이라고 하는 특이한 의식의 차원에 존재하는 것이다.
상실의 시대를 건너가는 이제하적 통찰의 세계
이제하 소설의 내용은 철저한 내면 세계의 표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이제하 문학의 본질은 개인의 내면이다. 그는 인류의 미래까지도 그 내면의 탐구에서 희망한다. 그가 규정하는 문학의 사회적 기능은 사람의 내면에 관한 이해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제하 스스로 "6·25로부터 4·19와 5·16을 거치는 50년대와 60년대의 시대를 상실의 시대로 규정하고 그 시대적 상실감으로부터 작품의 영감을 길어오고 있다"고 피력하고 있는 것처럼 그의 소설은 60년대 이후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추진된 산업사회화의 추세 속에서 진행되는 인간 상실의 문제를 첨예하게 다루고 있다. 그러한 인간 상실의 문제를 표출하는 주요 방식은 예술적 광기의 형태이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혹은 자본주의적 논리에 의해 소외되고 몰락하는 인간의 실존적 삶의 황폐화를 그는 화랑을 중심으로 한 광기의 삶을 극화하는 형태 치밀하면서도 리얼하게 보여준다. 그 광기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이란 자신의 참모습을 상실한 채 비인간적이고 사물적인 요소들이 인간적인 모습으로 뒤죽박죽 뒤섞여버린 기괴한 불구자의 그것이다. 그리하여 인간 실존의 리얼리티에 대한 이제하의 통찰은 상실의 현장으로서의 현실에 대한 부정과 거부의 형식으로 소설화되는 것이다.
언어의 마력적 속성을 발굴하고 회생시키는 작가
소설집『초식』에서 구가되는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이제하적 개성은 감성적 문체의 특성이다. 그의 소설은 시대와 역사, 관념으로부터 비롯된 무거운 주제를 감성 속으로 용해시켜 내면의 집요한 천착으로 이끌어내면서 환상적 이미지와 시적인 문장으로 다양하게 엮어낸다. 행간의 여백을 통하여 이미지를 구성하는 솜씨는 읽는 이로 하여금 극적인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언어의 마력에 빠져들게 한다. 또한 다양한 문체의 전개에 의하여 풍자, 비유, 상징, 회화적 기법 등을 동원한 이제하 소설의 기법은 참신함을 넘어 소설 미학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문학평론가 송재영(충남대 불문과 교수)은 이를 두고 "언어의 마력적 속성을 발굴하고 회생시키는 작가" "기존의 모든 언어체계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작가"라고 이제하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실로 이제하의 첫 소설집『초식』은 이제하 소설문학의 시원이자 진행형이며 미래, 그 모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