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부르크의 대가
- 원서명
- The Master of Petersburg
- 저자
- J. M. 쿳시
- 역자
- 왕은철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일
- 2018-03-22
- 사양
- 384쪽 | 128*188 | 환양장
- ISBN
- 978-89-546-4680-2
- 분야
- 장편소설
- 수상내역
- 노벨문학상
- 정가
- 14,800원
- 신간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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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격동의 러시아에 대한 치밀한 묘사, 집요하게 파헤치는 내면의 어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쿳시의 손에서 재탄생한 도스토옙스키!
"쿳시의 높은 위상을 더욱 격상시키기에 충분한, 충격적이고도 황홀한 작품." _퍼블리셔스 위클리
1869년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독일에 망명중이던 도스토옙스키는 의붓아들 파벨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다. 아들이 묵던 하숙집을 찾은 그는 아들의 유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슬픔에 잠긴다. 그러던 중 아들이 급진적인 혁명 모임에 가담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들의 죽음이 타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는다. 그러나 그 음모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동안 알지 못했던 뒤틀린 욕망과 광기를 마주하게 되는데……
한 작가에게 두 번 주지 않는다는 전례를 깨고 부커상을 두 차례 수상하고, 200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남아프리카의 ´대가´ J. M. 쿳시의 장편소설. 도스토옙스키와 그의 작품 『악령』을 쿳시만의 지적이고 도발적인 스타일로 변주했다.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정상과 비정상, 쾌락과 고통을 가르는 선을 넘나들고 뒤집으며 이어지는 예술 창작의 근원적 욕구에 대한 치열하고도 집요한 사유가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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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지은이 J. M. 쿳시 J. M. Coetzee
194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태어났다. 케이프타운 대학을 졸업하고 1965년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8년부터 약 3년 동안 뉴욕 주립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하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존스홉킨스, 하버드, 스탠포드, 시카고 대학에서도 강의했다. 1972년 고국으로 돌아가 케이프타운 대학 영문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2002년 정년퇴임했다. 이후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해 애들레이드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1974년 『어둠의 땅』을 발표하며 소설가로 데뷔한 쿳시는 두번째 소설 『나라의 심장부에서』(1977)로 남아프리카 최고의 문학상인 CNA 상을 받았고, 『야만인을 기다리며』(1980)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마이클 K』(1983)와 『추락』(1999)으로 한 작가에게 두 번 주지 않는다는 전례를 깨고 부커상을 두 차례 수상했으며, 에트랑제 페미나상, 예루살렘상, 아이리스 타임스 국제소설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그리고 2003년 "정교한 구성과 풍부한 대화,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서구 문명의 도덕적 위선을 날카롭게 비판했다"는 평과 함께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 『포』(1986) 『철의 시대』(1990) 『슬로우 맨』(2005)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2007), 자전적 소설 3부작 『소년 시절』(1997) 『청년 시절』(2002) 『서머타임』(2009) 등이 있고, 다수의 에세이와 연구서를 집필했다.
옮긴이 왕은철
전북 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클래리언 대학과 메릴랜드 대학에서 각각 영문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대문학>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으며 유영번역상, 전숙희문학상, 한국영어영문학회학술상, 생명의신비상, 전북 대학교 학술상과 수업상을 수상했다. 현재 전북 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피의 꽃잎들』 『마이클 K』 『연을 쫓는 아이』 『전쟁 쓰레기』 등 40여 권의 역서가 있으며, 『문학의 거장들』(한국연구재단 우수도서) 『J. M. 쿳시의 대화적 소설』(문화관광부 우수도서) 『애도 예찬』(전숙희문학상) 『타자의 정치학과 문학』 『트라우마와 문학, 그 침묵의 소리들』(생명의신비상, 세종도서 문학나눔도서)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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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차례
1 페테르부르크 · 7
2 공동묘지 · 14
3 파벨 · 20
4 하얀 양복 · 34
5 막시모프 · 45
6 안나 세르게예브나 · 74
7 마트료나 · 97
8 이바노프 · 116
9 네차예프 · 136
10 탄환 주조탑 · 158
11 산책 · 185
12 이사예프 · 209
13 변장 · 223
14 경찰 · 238
15 지하실 · 251
16 인쇄기 · 277
17 독약 · 296
18 일기장 · 313
19 불 · 331
20 스타브로긴 · 338
옮긴이의 말_존재의 중추신경을 건드리는 작가 · 362
에세이_첫만남과 『페테르부르크의 대가』 ·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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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리뷰
도스토옙스키,
그는 어떻게 세기의 역작을 탄생시켰는가?
격동의 러시아에 대한 치밀한 묘사,
집요하게 파헤치는 내면의 어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쿳시의 손에서
재탄생한 도스토옙스키!
“쿳시의 높은 위상을 더욱 격상시키기에 충분한,
충격적이고도 황홀한 작품.” 퍼블리셔스 위클리
존 쿳시는 『페테르부르크의 대가』를 통해 악과 허위, 몰락의 조건으로 에워싸인 인간이 그것을 헤쳐나가는 한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어쨌든 사유할 것. 그 끈에 딸려나오는 것들이 견딜 수 없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직시할 것. 이입을 넘어 이식되어 몸의 일부가 되는 독서경험이 있는데, 내겐 존 쿳시가 그러하다. _소설가 정용준
쿳시는 어떠한 경우에도 타협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등장인물의 현실과 정신상태를 한 오라기의 감상도 없이 바라보는 쿳시의 예리한 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가 “존재의 중추신경”을 건드리고, “뼛속까지 파고드는”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네이딘 고디머의 말은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소설을 “사유의 한 방식”으로 여기는 쿳시는 자신의 인식의 지평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헤집어보고 회의하고 의심한다. “종달새처럼 하늘로 솟아, 독수리처럼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그의 상상력”(고디머)에는 섣부른 감상이 자리잡을 여지가 없다. _옮긴이의 말 중에서
1869년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독일에 망명중이던 도스토옙스키는 의붓아들 파벨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다. 아들이 묵던 하숙집을 찾은 그는 아들의 유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슬픔에 잠긴다. 그러던 중 아들이 급진적인 혁명 모임에 가담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들의 죽음이 타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는다. 그러나 그 음모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동안 알지 못했던 뒤틀린 욕망과 광기를 마주하게 되는데……
『마이클 K』『추락』으로 한 작가에게 두 번 주지 않는다는 전례를 깨고 부커상을 두 차례 수상한 쿳시는 “정교한 구성과 풍부한 대화,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서구 문명의 도덕적 위선을 날카롭게 비판했다”는 평과 함께 200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쿳시는 『페테르부르크의 대가』를 통해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와 그의 작품 『악령』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변주하며 소설 쓰기의 근원적 욕구와 작가의 숙명에 대해 치열하고 집요하게 사유한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살 듯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배고픔 속에 살아가지요.”
이 소설의 배경이 된 1869년은 도스토옙스키가 작가로서 창작의 절정에 이른 시기였다. 그해 ‘네차예프 사건’이 러시아를 휩쓸었고, 이 사건은 도스토옙스키가 『악령』을 집필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당시 모스크바의 페트롭스키 대학에 다니던 학생 네차예프는 썩어빠진 러시아 사회에 분노하여 5인조 비밀결사조직을 만들고 혁명을 도모했다. 그 과정에서 조직의 일원이던 이바노프가 조직을 빠져나가려 하자 친구이자 동료인 그를 살해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아내의 남동생이자 이바노프의 친구에게 사건의 전말을 전해들었고, 세기의 역작 『악령』을 탄생시켰다.
그는 이것이 러시아다! 하고 말하면서 그 말을 아이에게 들이밀고 아이의 얼굴을 그 속에 비비고 싶다. 러시아에서 너는 고운 꽃이 될 여유가 없다. 러시아에서 너는 우엉이나 민들레가 되어야 한다. _ 본문 중에서
“더 좋은 의사에게 데려갈 돈만 있었더라도 아이들을 살릴 수 있었을 겁니다. 비극이죠. 하지만 누가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요즘엔 주변에 비극이 널려 있잖아요.” _본문 중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쿳시의 손에서 도스토옙스키와 『악령』은 새롭게 태어난다. 『페테르부르크의 대가』는 도스토옙스키가 네차예프 사건을 접하고 『악령』을 집필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빚쟁이들에 쫓겨 외국으로 망명하고 평생 간질로 고통받았던 도스토옙스키의 삶뿐 아니라 혁명의 바람이 막 불어닥치던 당대 러시아 사회와 그 안에 도사린 분노, 혁명의 딜레마, 부패한 기득권층, 하류층의 비참하고도 처절한 삶, 점점 더 악화되는 빈부격차에 대한 치밀한 묘사가 돋보인다.
“파벨이 내버린 삶, 그 젊음을 쓸 수만 있다면!”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의붓아들 파벨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슬픔에 아들이 지내던 도시, 묵던 방, 입던 옷, 누웠던 침대를 찬찬히 느끼며 죽은 아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한다. 그리고 인생에 가장 아름다울 시기에 세상을 떠나버린 파벨이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다. 동시에 파벨이 가지고 누렸던 것, 찬란한 젊음과 청춘의 힘에 대한 질투가 튀어나온다. 파벨이 내던져버린 그 모든 것을 자신이 대신 누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들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던 중, 아들이 생전에 쓴 소설을 보게 된다. 조악한 소설이라는 혹평과 동시에, 그 쓰다만 소설을 자신이 대신 완성하고픈 욕구를 느낀다.
자기 몫은 없는지 보려고 정사情事가 있었던 곳으로 몰래 기어들어오는 늙은 회색 쥐 같은 아버지. 어둠 속에서 시체 위에 앉아 귀를 쫑긋 세우고 시체를 갉아먹다가, 다시 귀를 쫑긋하고 또다시 갉아먹는 회색 쥐. _본문 중에서
그는 파벨의 마지막 자취를 좇으며 아들의 영혼이 자신에게 스미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파벨은 항상 냉담하기만 했던 아버지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도스토옙스키는 파벨과 자신이 그다지 사이가 좋은 부자지간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모른 척하고 싶고 아들의 죽음 앞에 어떻게든 화해의 실마리를 찾고 싶다. 그는 슬픔에 잠긴 아버지 행세를 하면서, 유품을 찾아 아들을 영원히 추억하려는 척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추악하고 비겁한지 깨닫는다.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이 그 모든 것을 언젠가 작품에 써먹으리라는 것을. 그 절망적이고도 고통스러운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광기 어린 욕망은 멈추지 않는다.
“당신을 팔고, 당신의 딸을 팔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팔 것이다.
파벨을 산 채로 팔았고,
할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내 안에 있는 파벨을 팔 것이다.”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에서 도스토옙스키는 파벨이 묵던 하숙집 주인 안나 세르게예브나와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어린 딸 마트리요나에 다가가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리고 그는 경찰이 가져간 아들의 유품을 찾고, 아들의 죽음에 관한 석연치 않은 사실들을 밝히고자 위험을 무릅쓴다. 그러나 그것은 아들의 인생과 죽음과 그것에 얽힌 비밀들을 작품의 소재로 쓰기 위함이다.
그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순간에도, 자신이 이 대목을 잊지 않고 있다가 어느 날 작품에 써먹으리라는 걸 알고 있다. 수치심이 그를 훑고 지나간다. 그러나 그것은 피상적이고 일시적인 느낌일 뿐이다. 처음에는 글에서, 지금은 그의 인생에서, 수치심이 그 힘을 잃어버리고 도덕관념도 없이 텅 빈, 끝없이 수축하는 수동성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린 것 같다. _본문 중에서
쿳시는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정상과 비정상, 쾌락과 고통을 가르는 선을 넘나들고 뒤집으며 작가로서의 근원적 욕구에 대해 말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악령』을 쓰기 시작하면서 죽은 아들을 배반하고 자신의 영혼을 배반한다. 작가에게 창작이란 배반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배반하고, 자신을 배반하고, 자신의 삶을 끝없이 배반하는 것이다. 작가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당위의 문제가 아니다. 작가라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필연과 숙명의 문제다. 그 배반으로 작가가 얻는 것은 영혼의 타락이다. 작가에게 영감이란 악마의 선물과 같은 것이고, 창작을 위해 작가는 자신의 영혼을 값으로 지불한다. 창작 행위란 행복한 무아지경이 아니라 고통스럽고 비극적이며 때로는 악마적인 것이다.
책 속에서
희미하게 아들의 냄새가 난다. 그는 거듭해서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이렇게 생각한다. 그애 영혼이 나에게 들어오는구나. _본문 11쪽
다시 오마. 아들이 학교에 입학하던 날, 그가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했던 약속이다. 널 버리지 않으마. 그리고 그는 그를 버렸다. _본문 13쪽
나는 이미 늙었어. 선고가 내려졌어. 그 선고문이 이 사람 저 사람을 거쳐 내게 다가오고 있었던 거야. 나만 그걸 몰랐을 뿐. _본문 16쪽
아이들 대 아이들이 아닌 자들, 사랑의 행위 속에서 죽음을 처음으로 미리 맛볼 정도로 충분히 나이를 먹은 자들. 그가 그날 밤에 느꼈던 절박함과 열기. 불길 속의 잔 다르크처럼 그의 팔에 안겨 있던 그녀, 육체가 타서 없어지는 동안 육체와 연결된 끈에 맞서 몸부림치던 영혼. 시간에 맞서는 것. 어린아이는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것. _본문 93쪽
아버지, 아들의 빛바랜 복사판. _본문 98쪽
“말은 자기가 수레를 끌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이해하지 못해. 자기는 맞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지. 맞을 때 도망가지 못하도록 자기를 묶어놓은 게 바로 수레라고 생각하는 거란다.” _본문 106쪽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언제나 이런 것일까? 가장 강렬한 적대의식을 농담 속에 숨기는 관계? 그래서 그가 쓸쓸히 혼자 남게 된 걸까? 그의 삶을 지탱하던 아들과의 싸움이 사라지고, 하루하루가 텅 비어버렸기 때문일까? 민중의 복수가 아니라 아들들의 복수, 이것이 바로 혁명의 밑바닥에 깔린 것일까? 아버지는 아들과 아들의 여자를 시샘하고, 아들은 아버지의 금고를 털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_본문 157쪽
그는 난간을 잡고 깎아지른 어둠 속의 저기를 내려다본다. 여기와 저기 사이에 영원한 시간이 있다. 인간의 마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시간이다. 여기와 저기 사이에 파벨이 살아 있었다. 전보다 더 생기 있게 살아 있었다. 우리는 추락하는 동안 가장 강렬하게 살아 있다. 그 진실이 가슴을 쥐어짜는구나! _본문 177쪽
믿는다는 말은 또다른 말이다. 믿는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나는 저 아래 포장도로 위에 있는 몸을 믿는다. 나는 피와 뼈를 믿는다. 부서진 몸을 주워모아 껴안는 것, 그것이 믿는다는 것의 의미다. 믿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똑같은 것이다. _본문 177쪽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은 아이, 사는 것이 감히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애정을 받은 아이. 살인적인 부드러움, 부드러운 살기. _본문 182쪽
나는 페테르부르크의 거리에서, 고개를 돌리고 손짓을 하는 사람들의 몸짓에서 너를 본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파도가 치듯 내 가슴이 들썩인다. 아무데도 없으면서 모든 곳에 있는, 오르페우스처럼 찢기고 흩어지는 너. 젊고 황금빛이 나고 축복받은 시절의 너. _본문 222쪽
“나는 늘 아버지들의 진정한 죄가, 그들은 한 번도 그렇게 고백한 적이 없었지만, 탐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걸 자기들이 독차지하려고 해요. 때가 되어도 돈주머니를 넘겨주지 않죠.” _본문 229쪽
“당신은 배고픔과 질병, 가난에 찌든 끔찍한 얼굴을 보고 경악하고 있어요. 하지만 배고픔과 질병과 가난은 적이 아니에요. 그것들은 진짜 힘들이 스스로를 세상에 드러내는 방식에 불과합니다.” _본문 262쪽
“코페르니쿠스 같은 사람들은 우리에게 있을 만큼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또다른 코페르니쿠스가 나왔다면, 그는 자기 눈을 도려내야 하지 않을까요?” _본문 268쪽
그들은 가장 유순하고 가장 길들이기 쉬울 것 같은 사람을 하인으로 고른다. 그들은 강한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한다. _본문 316쪽
“사실 삶이라기보다는 값이나 돈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오. 내 삶은 글을 쓰기 위해 내가 지불해야 하는 값이오. 파벨은 그걸 이해하지 못했소. 나도 값을 지불하고 있다는 걸 말이오.”_본문 322쪽
광기는 그의 내부에 있고 그는 광기의 내부에 있다. _본문 340쪽
그는 막시모프의 조수와 그의 질문을 떠올린다. “어떤 종류의 책을 쓰시죠?” 그는 이제야 자신이 대답했어야 할 말이 무엇인지 안다. “난 진실의 왜곡에 관한 글을 씁니다. 나는 구부러진 길을 택해 아이들을 어두운 곳으로 데리고 가는 사람이오. 펜이 춤추는 대로 따라가는 사람이오.” _본문 341쪽
“마리아가 바보였으니까. 바보들은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거지. 바보들이 결혼하면 바보 아이들을 낳을 것이고, 그 바보 아이들은 다시 바보 아이들을 낳을 테고, 그렇게 되면 온 세상이 바보들로 가득찰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전염병처럼 말이야.” _본문 358쪽
고통이 아니라 고통의 무딘 부재. 마치 전쟁터에서 총을 맞고, 피를 흘리고, 그 피를 보면서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내가 이미 죽었나? 하고 생각하는 군인 같다. _본문 361쪽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존 쿳시는 『페테르부르크의 대가』를 통해 악과 허위, 몰락의 조건으로 에워싸인 인간이 그것을 헤쳐나가는 한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어쨌든 사유할 것. 그 끈에 딸려나오는 것들이 견딜 수 없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직시할 것. 이입을 넘어 이식되어 몸의 일부가 되는 독서경험이 있는데, 내겐 존 쿳시가 그러하다. 소설가 정용준
밀도 있는 서사, 그 속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등장인물들. 역사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리는 개인과 구원으로서의 글쓰기. 뉴욕 타임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가장 눈부신 소설가 쿳시. 사랑과 진실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의심하게 한다. 시애틀 타임스
아버지와 아들, 슬픔, 예술 창작의 메커니즘과 미스터리에 대한 엄청난 사유가 돋보이는 소설. 월스트리트 저널
소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쿳시. 도시의 몰락, 어린이들, 매춘, 범죄, 섹스와 죄책감, 순수의 고난, 수치심을 모르는 작가, 러시아의 끊임없는 야만성 등에 대한 도스토옙스키적 질문을 하나하나 변주한다. 인디펜던트
도스토옙스키를 통해 19세기 러시아의 정치적 소용돌이를 그려냈다. 쿳시의 높은 위상을 더욱 격상시키기에 충분한, 충격적이고도 황홀한 작품. 퍼블리셔스 위클리
예술과 삶의 관계에 대한 도발적이면서도 아이러니한 탐구. 예술 창작의 잔인한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거칠면서도 지적이고 도발적인 소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격동의 러시아에 대한 치밀한 묘사, 집요하게 파헤치는 내면의 어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쿳시의 손에서 재탄생한 도스토옙스키!
"쿳시의 높은 위상을 더욱 격상시키기에 충분한, 충격적이고도 황홀한 작품." _퍼블리셔스 위클리
1869년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독일에 망명중이던 도스토옙스키는 의붓아들 파벨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다. 아들이 묵던 하숙집을 찾은 그는 아들의 유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슬픔에 잠긴다. 그러던 중 아들이 급진적인 혁명 모임에 가담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들의 죽음이 타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는다. 그러나 그 음모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동안 알지 못했던 뒤틀린 욕망과 광기를 마주하게 되는데……
한 작가에게 두 번 주지 않는다는 전례를 깨고 부커상을 두 차례 수상하고, 200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남아프리카의 ´대가´ J. M. 쿳시의 장편소설. 도스토옙스키와 그의 작품 『악령』을 쿳시만의 지적이고 도발적인 스타일로 변주했다.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정상과 비정상, 쾌락과 고통을 가르는 선을 넘나들고 뒤집으며 이어지는 예술 창작의 근원적 욕구에 대한 치열하고도 집요한 사유가 빛을 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