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대의 상징 지식인 쉬즈위안, 그를 통해 국가를 만나고,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보았다면
이제 국경 바깥에서 펼쳐지는 개인의 삶을 들여다볼 차례
‘비판적 지식인 쉬즈위안의 국가 3부작’이라는 타이틀로 출간된 『미성숙한 국가』와 『나는 내 나라가 낯설다』에 이어 완결작이라 할 수 있는 『한 유랑자의 세계』가 출간되었다. 『미성숙한 국가』가 중국 백 년 역사를 통해 자신이 속한 국가의 현재를 세련된 독법과 새로운 사유 방식으로 읽어내고, 『나는 내 나라가 낯설다』가 중국 대륙과 타이완을 아우르며 국가의 역사와 하나일 수밖에 없는 숱한 민중의 삶의 목격담을 그려냈다면 『한 유랑자의 세계』는 국경의 바깥에서 살아가는 개별 개인들의 삶의 투쟁기이자 국가의 존재가 그들에게 미치는 자장(磁場)의 관찰기이다.
세계 여러 도시를 다니는 그의 여행 방식은 일반인의 여정과는 사뭇 다르다. 그에게 여행은 보이는 것에 대한 관찰과 탐구이기보다 보이지 않는 이면에 대한 사유의 연장이며, 사유의 대상은 사람으로 집중된다. 그 때문에 풍경은 사람과 사회를 이해하는 배경으로 기능할 뿐 그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축적된 시간에 더 관심을 쏟는다.
때문에 『한 유랑자의 세계』에서 독자는 개별 여행지의 파편화된 정보와 인상 대신 얼핏 스쳐 지나서는 볼 수 없는,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그 이면의 이야기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여행의 새로운 독법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동남아, 유럽, 아프리카 등을 누비는 쉬즈위안의 여정을 통해 바라보는
국가와 개인의 관계, 그리고 그로 인해 획득하는 새로운 여행 독법
이 책에서 저자 쉬즈위안의 족적은 종횡무진이다. 인도의 콜카타에서 첫 장을 시작한 그의 여행기는 부탄을 거치고,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이어 블라디보스토크를 지나 로마와 베를린 그리고 파리와 하이델베르크로 이어진다. 그리고 훌쩍 이집트 카이로, 팔레스타인, 케냐를 누빈 뒤 케임브리지에서 머문 1년을 회고하고, 미얀마의 양곤에서 마무리한다. 책의 순서는 여행의 순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개별 도시들끼리의 연관성과 맥락 역시 부재하다. 여행의 시기와 개별 도시를 특별히 밝히지도 명시하지도 않은 것은 여행하는 동안 그가 마주하는 풍경과 그만의 시선이 그만큼 시공간의 객관적 정보에 갇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독자는 가상일지언정 낯선 곳에 스스로를 세우고 그곳에서 쉬즈위안의 시선을 따라 마치 제3지대 같은 공감각의 영역을 공유하는 독서의 경험이 가능한 것 또한 그런 구성의 덕분이다.
쉬즈위안의 여행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 바로 사람이다. 숱한 여행지에서 그는 역시 숱한 사람을 만난다. 때로는 역사와 문헌에 등장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역시 때로는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국가라는 필터가 씌워진다. 오늘날 어떤 개인도 국가의 소속 없이 존재하기 어렵듯 그가 만나는 모든 이들 역시 국가라는 시스템 안에 속해 있고, 그 소속 국가와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질수록 역설적으로 국가의 자장은 더 강력하다. 가깝거나 혹은 멀게 중국이라는 국가를 공유하는 이들을 통해 국경의 바깥에서 작동하는 국가 시스템이 개인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피는 과정은 흥미로우며, 중국이 아닐지언정 국가와 개인의 관계의 다양한 조망 속에 차이와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 또한 의미가 있다.
보이는 것만 보느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느냐.
각 도시의 개별 장면에 시공을 초월한 새로운 역사적 문맥을 부여하다
무질서하고 쇠락해가는, 영국의 오랜 지배를 받았던 국가. 인도에 관한 아주 일반적인 편견으로부터 출발한 인도의 콜카타에서 그는 타고르의 흔적을 찾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그러나 쉬즈위안의 여행 독법이 빛을 발하는 것은 이 지점부터다. 그는 이러한 편견을 비난하거나 섣불리 편견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분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인도를 바라보되 타고르로 상징되는 인도의 역사와 사람들의 가치에 주목한다. 아울러 타고르와 한 시대를 살았던 중국의 젊은 청년 쉬즈모와 탄윈산을 비롯한 역사 속 인물들을 호출함으로써 자신의 조국 중국과 인도의 인연을 통해 그때 그 시절 인물들이 어떻게 각자의 방식으로 역사의 격변에 대응했는가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그것의 의미를 자신의 방식으로 부여한다. 여기에 더해 간디와 타고르가 만나는 한 장면을 인용함으로써 두 사람의 차이를 직관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 역시 그의 탁월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가장 행복한 왕국’이라고 명명한 부탄에서 그는 가난하지만 그 사회에 흐르는 조화로운 일상과 진정한 삶 속에 넘쳐나는 사람 사는 냄새와 전통의 맛을 느끼고 그것이 가진 의미를 상찬한다. ‘성장기 자신의 관심 대상이 오로지 미국과 서유럽에 국한되어 있었다’는 그의 고백은 그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20세기에 성장기를 보낸 누구라도 히말라야 산 속 깊이 숨어 있는 작은 나라에 관심을 두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온 세상이 부유함과 발전의 속도에만 도취되어 있을 때 자신들의 속도로 조화로운 사회를 구축한 부탄에서의 나날은 쉬즈위안으로 하여금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깨닫게 한다. 이러한 그의 깨달음은 인상비평이나 감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댐 건설이 한창인 마을 주민과의 대화, 부탄문화센터에서 일하는 인류학자, 어린 시절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인도로 유학을 가서 스위스 농업학자와 결혼한 부탄의 여성작가 등과의 대화를 통해 부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내일을 엿보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블라디보스토크를 유영하듯 여행하며 쉬즈위안이 보고 느낀 것은 사회주의의 본산이라는 타이틀과 거대한 땅덩어리 뒤에 가려진 러시아의 현재다. 광활하다고 여겼던 붉은 광장의 작은 규모에 놀란 순간은 러시아 여행에서 그가 느낀 심정의 상징과도같다. 러시아가 거인이라면 기껏해야 절름발이 거인일 것이라고 탄식하는 그의 시선은 스탈린에 대한 원래 이미지는 모호해지는 대신 강력한 지도자로 추앙받는 모순에 가닿으며, 이것으로 고도로 팽창하는 러시아 민족주의 정서로 공산주의의 파산이 남긴 이데올로기의 진공상태를 메운 푸틴의 정책이 어떻게 러시아에서 성공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생각보다 작은 붉은 광장, 행위에 비해 추앙 받는 스탈린, 그리고 푸틴의 민족주의 정서의 성공을 오늘의 러시아를 설명하는 하나의 축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는 파리의 헌책방에서 만난 한 권의 책을 통해 중국 근대사의 주역들을 불러내고, 베를린의 무너진 장벽에서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광둥 지역에서 홍콩으로 탈출하려던 수많은 인파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이렇듯 그의 시선과 관찰로 각 도시의 개별 장면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새로운 문맥을 부여받고, 이로 인해 역사의 보편성과 특이성을 넘나들며 다양한 의미로 새롭게 교직되곤 한다.
쉬즈위안의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시선의 대상,
바로 그 땅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중국, 중국인 그리고 세계의 군상
이렇듯 세계 곳곳을 다니며 그가 관찰한 대상의 또다른 유형은 바로 그 땅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이다. 인도에서는 중국인의 후예로 인도에서 태어나 자란 리완청(당시 56세)의 부정확한 중국어를 통해 그곳에서 나고 자란 화인들이 스스로의 모국 중국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살피고, 중국인과 영국인 사이의 혼혈로 태어나 부탄 왕실과의 인연으로 부탄에 머물게 된 맥 러틀랜드의 삶을 통해서는 짧은 순간 충돌한 두 세계의 산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들여다봄으로써 다양한 인생의 방식에 대해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모스크바에서는 붉은 정권 시절 태어나 소년선봉대와 공산주의청년단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KGB와의 투쟁의 역사를 관통해온 저항자의 회고를 통해 소비에트연방이 러시아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듣기도 하고, 동시에 모스크바에서 가이드로 일하는 중국청년을 통해 그들이 타국에서 겪는 차별의 실상을 목도하기도 한다. 이런 차별은 비단 모스크바에서만의 일은 아니었다. 유럽에서도 중국인들에 대한 차별과 부당한 대우는 특이한 사례가 아니라는 것, 국가 밖에서 사는 이들에게 강력한 국력이야말로 삶의 기반과 안전을 좌우하는 바로미터라는 현실 역시 그가 주목한 지점이기도 하다. 카이로의 생활력 강한 어린 노동자, 치과의사면서 소설을 쓰는 작가, 또한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중국청년들의 삶을 통해 그들이 지향하는 미래와 그들이 구축하고 있는 오늘의 혼돈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국가의 시스템이 기성세대는 물론 젊은 청년들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또한 독자들로 하여금 돌아보게 한다.
한 사람의 지식인이 세 권의 책을 통해 천착한 국가라는 키워드,
이를 통해 경험하게 될 유의미한 인식 확장의 경험
‘비판적 지식인 쉬즈위안의 국가 3부작’이라는 타이틀로 묶인 『미성숙한 국가』, 『나는 내 나라가 낯설다』에 이어 출간한 『한 유랑자의 세계』는 애초 저자가 하나의 키워드를 염두에 두고 저술한 것이 아니다. 각각의 독립된 단행본으로 출간된 그의 저술은 그러나 중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지식인자 새로운 사유 방식을 제시하는 사회비평가인 그의 관심사가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세 권의 책을 함께 기획, 제안하고 직접 번역한 김태성은 이러한 쉬즈위안의 저자로서의 매력에 착안, ‘국가’라는 키워드를 통해 기존의 단선적이고 일차적인 국가주의를 벗어나 새로운 문맥으로서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재발견할 것을 독자에게 제안한다.
이로써 한국의 독자들은 중국 내에서도 비판 받는 지식인의 사유 방식을 통해 단순히 중국이라는 하나의 국가, 또는 중국인이라는 국경의 테두리 안에 귀속한 저자의 책이 아닌 우리 역시 속해 있는 국가라는 시스템, 그리고 그 안에서 사유하고 살아가는 우리 스스로의 인식의 확장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자타 공인하는 ‘우리 세대의 가장 중요한 중국 지식인’이자 인문책방 운영자,
기존 지식인의 족적과는 전혀 다른 그의 이력으로 스스로의 좌표를 설정하다
저자 쉬즈위안의 이력은 매우 독특하다. 그는 사회비평가 겸 작가인 동시에 베이징에서 유명세의 한가운데 있는 인문책방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거친 후 해외 유학을 다녀와 학문에 정진하거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구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대부분 지식인들의 초반 이력의 경로다.
쉬즈위안은 달랐다. 베이징 대학 시절 이미 각종 매체에 글을 기고함으로써 이미 문명(文名)을 날린 그가 졸업 후 취한 행보는 대학원 진학이 아닌 책방 대표였다. 그는 또한 자신의 글을 기존 매체에 게재하는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매체를 만들어냄으로써 자신의 뜻을 세상에 발신하는 스스로의 진지를 구축함으로써, 신세대 지식인의 참신하고 세련된 행보를 이어왔다.
그는 또한 하나의 분야에 스스로를 구속하지 않는다. 사회를 비평하고 역사를 성찰하는 행보를 이어나가되 거기에 지식인의 시선과 저널적 태도를 장착함으로써 글쓰기와 사유의 새로운 방식을 선보였다. 그는 또한 기존의 구조를 활용하는 대신 필요에 따라 매체를 만들고, 뜻을 펼칠 공간을 직접 구축해왔다는 점을 들어 스스로를 창업가의 지점에서 기존 지식인과의 차이가 있음을 구별하는 영민함을 보이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언론 지식인 13명이 5만 위안(한화 약 800만 원)씩 모아 마련한 그의 인문책방의 이름이 단샹제(單向街)인 것은 이러한 그의 족적의 신호탄으로 여길 수 있다. 발터 벤야민의 유명한 저작 『일방통행로』를 참조한 탓에 단샹제의 영어 표기는 ‘ONE WAY STREET’다. 이 책방은 현재 책방만이 아닌 멀티미디어를 결합한 회사로 확장중이다. 그의 새로운 사유와 인식의 확장은 사회와 역사적 비평에만 머물지 않고 있음을 또 한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http://www.owspace.com)그를 가리켜 세계적인 반체제 설치미술가이자 인권운동가인 아이웨이웨이(艾未未)는 ‘그는 우리 세대의 가장 중요한 중국 지식인’이라고 평한 바 있으나, 2014년 홍콩 민주화 시위 당시 중국 정부는 자국 내에서 출판을 금지한 지식인 명단에 그의 이름을 포함시키는 등 양 극단에서 각별한 관심의 대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