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동시의 눈부심이 새로운 언어와 상상력에 연유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장세정 동시야말로 그런 눈부심을 그 안에 충분히 내장한 작품들이라고 보아야 옳다. 그럼에도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의 동시가 결코 새로운 표현 기법과 언어의 유희에만 빠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장세정은 언어를 아주 감각적으로 세련되게 다루면서도 어린이가 살아가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건강함을 보여 준다."
_김제곤(아동문학평론가)
바삭바삭 호롤롤롤 핫 핫 핫-도그 팔아아~
우리 동시의 맛을 한 단계 끌어올린 시인 장세정의 첫 동시집
담벼락이 여름내 펼쳐 놓고 팔았어요
까슬까슬 오요요욜 풋내 나는 풋-도그
살랑살랑 물결치게 내버려 두는 재미로 팔았어요
요사이 서늘한 바람 불고
가을 햇살이 풋-도그 속을 들락날락하더니
노릇노릇 갈색으로 튀겨 놓았어요
겨울이 오는 기척에 놀란 담벼락
서둘러 바람을 앞세워 손님을 불러요
바삭바삭 호롤롤롤 핫 핫 핫-도그 팔아아~
토끼도 닭도 얼씬 않는 학교 담벼락
팔랑 나비 한 마리 수줍게 날아와
동전 대신 춤 한 수 건네요
재바른 팔랑 나비 한 입 먹고 춤추고
한 입 먹고 춤추고 날개에 가을 물이 올라요
_「강아지풀」 전문
가을 햇살이 바삭하게 튀겨 놓은 핫도그처럼 탐스럽고 고소한 시편들로 그득 채운 장세정의 첫 동시집이 출간되었다. 문학동네 동시집 시리즈의 쉰여섯째 권이다. 장세정은 오랜 시간을 동시를 읽고 쓰는 데 썼다. 세상 모든 아이들이 “때를 만나 제 빛깔로 꽃을 피우고 맘껏 향기를 뿜”기를 간절히 바라며(‘책머리에’, 장세정), 그런 날들이 자라 10년이 지나고서야 한 권의 동시집을 꾸린 것이다. 여름내 펼쳐 놓은 풋-도그에 토끼도 닭도 얼씬 않아도, 그저 살랑살랑 물결치게 내버려 두는 재미로 팔았던 담벼락의 마음처럼 시인은 “감히 나무의 목숨과 맞바꿀 시집 한 권 내어도 좋은 때, 시집을 펼쳐 든 사람들의 한순간을 물끄러미 잡아끌어도 좋은 때, 시보다 더 재미난 게 있다면 시를 던져 버리고 더 엉뚱하게 더 발랄하게 살아도 좋은 때”를 기다렸다. 그렇게 영근 시편들은, 한 입 맛본 이 누구라도 그 마음을 가을빛으로 물들일 수 있을 만큼 충만하고 또 풍요롭다.
훌라훌라 즐거운 언어와 새로운 리듬이 함께 만들어 내는 상승의 에너지
장세정의 동시를 가장 뚜렷하게 관통하고 있는 것은 발랄하고 새로운 언어적 감각이다. 세상의 모든 동시가 그러하듯, 『핫-도그 팔아요』 속 동시도 작은 것들의 작은 마음을 노래하지만 그 목소리는 결코 조그맣지 않다. 장세정의 생명들은 오히려 세상을 향한 망설임 없는 믿음을 내비친다. 분명하고 굳건한 생명의 힘은 “출입금지/ 경작금지/ 아파트 숲 빈터마다/ 경고 팻말 서 있어도/ 감쪽같이”(「봄비 온 뒤」) 뿌리 내리는 푸성귀들처럼 싱그럽고, “톡/ 도토리 떨어”진 자리에 “자리 났다” 하면서 “살랑 몸을 말고” 들어앉는 “바람 한 줄기”(「깍정이」) 처럼 산뜻하고도 자연스럽다. 시 안을 살고 있는 아이들 마음도 그와 같아서, 놀고 싶지만 학원에 가야 하는 속상한 마음은 흔들리는 스프링말에게 줘 버리고(「스프링말」), 축구 경기에 끼지 못한 뿔난 마음은 빠박 빠박 발따귀에 실어 “슈~웅” 보내 버린다(「그네 신발」).
“조각 얼음 위에/ 삼치 한 마리/ 2000원”에 눈싸움을 벌이는 귀여운 할머니(「눈치」)나 “대나무밭에 앉은/ 하얀 백로들”을 향해 “-후어이!” 고무신 스트라이크를 날리는 대찬 할머니(「스트라이크!」), “여자라고/ 학교를 안 보내” 줘서 “서러워/ 서러워/ 돌주먹을 날”리던 50년 전의 어린 고모와(「돌주먹」) “모처럼 아빠 일 나가는 날/ 부르릉 시동 소리에 깨어/ 화르르/ 피어”날 먼지꽃을 그리는 엄마(「먼지꽃」)도 같은 마음의 아이를 품고 있다. 답답하고 응어리진 마음을 종이비행기로 접어 날리듯 경쾌하게 던지고 훌라훌라 다시 달릴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올까. 아동문학평론가 김제곤은 「스트라이크!」를 읽으며 이렇게 썼다.
“이 시의 배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말하자면 자연과 인간 사이에 조성되는 긴장 관계라 할 수 있다. 이런 긴장의 관계를 우리 동시들은 대개 시인의 관념이 만들어 낸 허상으로 무화시키기 일쑤였다. 할머니는 백로를 쫓아내기보다 대개 넌지시 묵인하는 쪽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동시에 등장했던 할머니는 주로 그렇게 너그럽고 푸근한 역할을 맡아 왔다. 장세정은 그런 허상에서 과감히 탈피한다. 할머니로 하여금 백로가 내려앉은 대나무밭으로 냅다 ‘고무신 한 짝’을 날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가 거기에서 멈추었다면 그것은 현실 한 귀퉁이를 있는 그대로 재현한 것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 시의 압권은 백로를 하얀 ‘볼링 핀’에 비유한 바로 그 대목부터 시작된다. 할머니와 백로 간에 조성된 긴장 관계가 시원한 볼링 게임의 한 장면으로 전환됨으로써, 우리는 사실의 재현이 결코 보여 주지 못하는 선명한 인상과 시적 쾌감을 얻어 가지게 된다.”
주인이 손님 되어도 좋고 손님이 주인 되어도 좋은 곳
오득!
생밤 한 톨 깨물었는데
밤벌레 동그랗게 누워 있다
뭘 봐!
주인이 방에 누워 있는 거 처음 보냐?
졸리니까 문 닫아!
나는 얼른 문을 닫아 주었다
_「가택침입」 전문
느닷없이 껌껌한 배 속으로 들어갈 뻔한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밤벌레와 사람의 입장이 뒤바뀌는 순간이다. 화자는 무심코 깨문 생밤 속 밤벌레의 일갈 앞에 ‘침입자’가 된다. 무당벌레, 개미, 송충이가 자리 잡은 벤치에 “엉덩이 살살 디밀”며 “내 엉덩이 쪼끄맣다”고 되뇌는 나(「끼워 줘」)에서도 시인의 이런 태도는 감지된다. 작고 여린 것들을 주인으로, 존귀한 주체로 존중하는 시인의 마음이다.
『핫-도그 팔아요』 속에서 자주 목격되는 것은 이처럼 무엇과 무엇이 서로의 자리를 바꾸는 장면이다. 유모차 속 아기와 할아버지가 서로의 웃음을 바꾸고(「잃어버린 말」) 똑 떨어진 빗물과 내가 마음을 바꾸고(「똑」) 「꿈틀꿈틀」 속 버들강아지와 송충이는 수줍게 겨우겨우 마음을 교환해 친구가 된다. 반드시 둘이서 서로 바꿀 필요는 없다. “무심한 영지에게/ 전송하고픈 내 마음”은 “삣삣삣삐 찟찟찟찌” 딱새에게로(「암호」), “수만 광년을 날아”서라도 보고 싶은 할머니를 향한 마음은 “깜빡깜빡” 새별에게로(「새별」) 보내도 괜찮다. “봄날 물굽이 속에서 잃어버린, 영원한 아기”를 떠올리며 “바닥에 동그랗게 몸을” 대는 엄마의 마음처럼(「수학여행」) 닿을 곳 없이 떠나는 마음이어도 좋다. 동그란 지구 속에서 굴절하고 또 굴절하여 언젠가는 가야 할 곳으로 갈 마음이기 때문이다.
볼로냐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모예진의 독특한 감성
『핫-도그 팔아요』의 그림은 독특한 스타일의 그림으로 2015, 2016년 두 해 연속으로 볼로냐 올해의일러스트레이터에 선정된 화가 모예진이 그렸다. 그의 첫 그림책 『그런 일이 종종 있지』는 볼로냐 도서전 현지에서 해외 출판사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섬세한 연필선으로 표현하는 은근한 유머와 묵묵하게 느껴지지만 깊은 감정을 품고 있는 인물을 묘사하는 것이 모예진 화가의 특기이다. 시와 시 사이를 부드럽게 오가며 또 하나의 이야기를 이어 가는 그림은 『핫-도그 팔아요』의 감상을 한층 즐거운 차원으로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