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제 갈 길을 찾을 것이다』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미국 작가 해나 피터드가 2011년 출간한 첫 책으로, 미국 대서양 인근 중부의 어느 교외 동네에서 벌어진 한 소녀의 실종과 이십 년이 넘도록 그 사건에 사로잡혀 있는 한동네 소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년들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가운데, 삶과 운명의 불가해함, 사춘기의 채워지지 않은 욕망과 후회 등이 마치 메아리처럼 작품 전반에 울리며, 더 나아가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소문과 추측과 판타지로 구성한 타인의 삶이 그 실체와는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또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얼마나 혹독한지를 말하고 있다.
이 책은 〈가디언〉 〈시카고 트리뷴〉 〈캔자스시티 스타〉 등의 여러 매체에서 최고의 소설로 선정되었고, 〈워싱턴 포스트〉 〈파이낸셜 타임스〉 『오프라 윈프리 매거진』 등은 그해 출간된 최고의 데뷔소설, 매력적인 데뷔소설이라는 찬사와 함께 새로운 작가의 훌륭한 시작을 높이 평가했다. “아름답고 확신에 찬 산문”(벤델라 비다), “그저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패트릭 서머빌) 등 작가들도 호평을 보탰다. 이렇듯 인상적인 첫 책으로 이름을 각인시킨 해나 피터드는 2006년 문학잡지 『맥스위니스』가 선정하는 어맨다 데이비스 하이와이어 픽션 어워드를 수상하고, 2008년 「허기와 밤과 별」이 살만 루슈디의 선택을 받아 『최고의 미국 단편소설 100선』에 실리는 등 이미 그 재능을 인정받았으며, 성공적인 데뷔 이후 지금까지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오고 있다.
이 소설에서 두드러진 점은 1인칭 복수 ‘우리’가 이야기를 서술하는 화자라는 것이다. 해나 피터드가 문학적 영향을 받은 작가로 꼽히는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 송이 장미」, 퓰리처 상 수상작가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처녀들, 자살하다』가 이 책과 함께 언급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우리 소년들’의 목소리로 어른의 세계가 요구하는 대로 온전한 개인인 ‘나’가 아직 되지 못한 ‘우리’의 시간을 통렬히 증언한다. 사춘기를 지나 중년에 이른 ‘우리’의 목소리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 시간에 대한 노스탤지어, 회한이 깔려 있다.
노라에게는 실제로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
소설의 중심에는 온 동네에 비극의 그림자를 드리운 사건이 있다. 10월의 마지막날 핼러윈 밤, 열여섯 살 소녀 노라 린델이 실종된 것이다. 한동네 소년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실종의 수수께끼를 풀고 진실을 발견하고 싶은 마음에 모여서 서로를 추궁하기 시작한다. 그들 각자가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사실, 가정과 추측은 그들의 판타지를 자극하고 소문을 부풀릴 뿐, 진실과는 상관없다. 그렇게 노라 린델의 실종은 오랫동안 우리 소년들을 성가시게 하는 미스터리로 남는다. 그들은 중년 남자가 될 때까지 이십 년이 넘도록 한편으로는 걱정과 우려로, 또 한편으로는 호기심과 충족되지 못한 욕망 때문에 그 사건에 사로잡혀 닿을 수 없는 곳의 노라를 생각하고, 지금쯤 노라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상상한다.
소설은 또한 노라가 숱한 의문을 남기고 떠난 ‘우리’ 소년들의 이야기다. 우리 중 유일하게 공립학교에 다니고 노라가 사라지기 전달에 그녀와 섹스를 했다고 우기는 트레이 스티븐스, 지금의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혼자만 모르고 있는 드루 프라이스, 노라의 여동생 시시에게 집착하게 된 폴 엡스타인, 우리 사이에서 약간 이상한 괴짜로 통하는 대니 햇칫, 연상의 앵커를 짝사랑하게 된 마티 멧카프, 그밖에 잭 보이드, 척 굿휴, 윈스턴 러더포드, 스투 즈블로스키. 소녀들의 이야기도 있다. “완전 짜증났던 전형적인 여동생 타입”이었지만 노라의 실종 이후 우리 남자애들의 관심을 끌게 된 시시 린델, 시시의 단짝으로 화려하고 섹시한 분위기의 엄마 때문에 늘 상처받는 밍카 디너만, 가장 섹시해 남자애들 사이에서 인기를 독차지하지만 한동네 대학생에게 강간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세라 제프리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부모들 이야기이기도 하다. 딸의 실종으로 조금씩 망가져가다 결국 암으로 세상을 떠난 린델 씨, 자기 집 차고에서 자살한 대니 햇칫 부인과 아들, 아들의 친구들인 우리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주지만 아내의 자살 이후 재활원을 들락거리는 신세가 되는 햇칫 씨, 사춘기 소년들의 성적 호기심을 부추기는 러시아 여자 디너만 부인…… 해나 피터드는 짤막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현대 중산층 가정의 음울한 초상을 섬뜩하도록 담담하게 그려 보인다.
노라의 실종 당일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래서 노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환상이 현실과 어긋날까봐, 현실에 거부당할까봐” 진실을 알길 내켜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날, 노라는 위험한 포식자에게 걸려들어 죽임을 당했을까. 아니면 애리조나로 가서 쌍둥이를 낳고 거기서 만난 멕시코 남자와 살게 될까. 또 아니면 뭄바이에서 문신 새기는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질까. 폭발 사고로 죽는 걸까, 아니면 암으로? “이런 것들을 확실히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소설이 제시하는 그와 같은 가능성들 중 하나가 진실일 수도 있다. 소설은 소녀 실종이라는 치명적인 범죄를 다루면서도 경찰 조사에 대한 묘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운명은 제 갈 길을 찾을 것이다』가 ‘가정’의 소설이자, 문제를 해결하는 안도감보다는 물음들을 추적해가는 과정에 집중하는 소설이기 때문일 터이다.
우리는 그저 어린애들이었다, 몽상가들이었다!
너무 지체된 성장기, 그 우울하고 어두운 이야기
이 책은 실종된 소녀 노라 린델의 이야기다. 또한 그녀가 남겨두고 간 소년들이 어떻게 어른이 되어가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노라의 실종은 십대 시절의 끝을 상징하는 사건이지만, 소년들은 그녀에 대해 질문하고 그녀가 겪었을지도 모르는 일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그녀가 어떻게 되었을지 몽상하면서 끊임없이 사춘기를 유예한다. 소년들 스스로 고백하듯, 그것은 “너무 오래 지체된 성장기의 잔여물”이다. 또한 그것이 어른이 된다는 것, 남자가 된다는 것, 다른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는 인간이 된다는 것의 중압감 때문임을, 그들은 알고 있다. 그들은 삶이 계속될수록 “바깥으로, 세상 속으로” 떠밀리고 있음을, 어른이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한편으로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 주는 침울한 위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어른에게 약속된 평안을 아직 찾지 못한 사람이 자기뿐일까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소년들은, 아니 이제는 아내와 딸과 아들이 있는 중년의 남자들은 마침내 노라를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순간을 맞이하고서 길었던 성장기에 진정한 작별을 고하며 주위의 이 모든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독자들은 어둡고 우울한 사춘기의 한 자락,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혹독한 과정을 함께하며 자신의 십대 시절을 새롭게 돌이켜보게 될 것이다. 비교적 짧지만 긴 여운이 있는 작품이다.
▶ 본문 중에서
우리가 대학으로 떠나기 전날 밤, 어린 시절의 그 마지막날 밤 마침내 혼자가 되었을 때, 우리 모두가 어쩌면 동시에 눈을 감고 노라 린델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아마 거짓말일 것이다. 우리는 눈을 감았고, 지금으로부터 십 년 후, 이십 년 후의 노라와 우리 자신을 상상했다. _25쪽
노라 린델은 사라졌다. 그리고 트레이 스티븐스는 감옥에 갔으니 어떤 면에서는 그도 사라졌다. 이 무렵 우리는 이미 밍카 디너만과 린델 씨를 잃었다(각각 교통사고와 암이었다). 때로는 인생이 우리를 남겨두고 떠난 사람들에 대한 기록에 불과한 것 같았다. _94쪽
마침내 우리는 침실 창가에 서서 하루의 마지막 순간을 맞으며, 어딘가 얼떨떨하니 준비되지 않은 채로 분명한 사실을 깨닫고 만다. 이것이, 우리 주위에 있는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사실을.
분홍빛 밤의 시간이다. _273쪽
무엇을 기억하든 우리는 그애를 생각할 것이고, 그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할 것이며,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는 알지 못하겠지만, 그게 그애를 생각하는 마지막 순간일 것이다. 그날이 올 것이다. 이제 확실해졌다. _275쪽
▶ 언론평
하나하나 중요하고 신중하게 선택된 단어들로 이루어진 매력적인 데뷔소설. _오프라 매거진
삶과 운명의 미스터리에 대한 숙고. _엘르
비교적 짧은 소설이지만, 피터드가 구사하는 언어의 적확함이 엄청난 깊이를 부여한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타인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가, 그러면서도 소문과 추측, 판타지의 단편들을 수집하는 데는 얼마나 열심인가 숙고하는 소설. 소름끼치면서도 감동적이다. _워싱턴 포스트
내레이션에서 떠오르는 것은 사실이 아닌 정교한 디테일이며 그것은 순식간에 기억으로 전환된다. 표면적으로는 한 소녀의 실종에 대한 소설로 보이지만 핵심은 이것이다.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_뉴욕 타임스
▶ 옮긴이 윤미나
고려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출판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지은 책으로 『굴라쉬 브런치』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꼭두각시 인형과 교수대』 『겨자 빠진 훈제청어의 맛』 『그림자라면 지긋지긋해』 『디센던트』 『불평하라』 『사랑을 쓰다』 『단 한 번도 비행기를 타지 않은 150일간의 세계일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