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쿠르상 수상 작가, 영화 〈언노운〉 원작자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의 환상 로맨스
리엄 니슨 주연 영화 〈언노운〉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데뷔 이래 서른 편이 넘는 소설을 발표해온 그는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의 각본과 각색 작업을 통해 대중적인 필력을 널리 인정받은 작가다. 『언노운』 외에도 여러 작품이 해외 유명 감독들에 의해 영화화되었으며,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의 각색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대중성뿐만 아니라 프랑스 이민정책 문제를 풍자적으로 그린 소설 『편도 승차권』으로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한, 평단으로부터 문학성까지 인정받은 작가이기도 하다.
『빛의 집』은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명화 속으로 들어간 한 인물의 특별한 모험을 그린, 코뵐라르트의 기발한 상상이 빛나는 작품이다. 주인공 화자는 마그리트의 그림 〈빛의 제국〉 속 집안으로 들어가 화가의 옛 애인을 만나고,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그의 그림 한 점을 발견하며, 헤어진 여자친구와 재회해 꿈같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현실보다 더 매력적인 그림 속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사랑이 살아 숨쉬었던 그 세계의 완전한 회복을 꿈꾸며 아마존 주술사를 만나고, 뇌 과학 연구소를 찾아가는 등 환상적인 모험을 이어간다. 작가는 따뜻한 감성, 유머, 판타지, 풍자를 뒤섞어 평범한 한 인물이 예술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삶의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초현실적 명화 속에서 되살아나는 가장 찬란했던 순간
마그리트의 그림을 둘러싼 환상적이고 매혹적인 모험담
한때 잘나가는 아역배우였지만 예고 없이 변성기가 찾아오면서 모든 걸 과거의 영광으로 추억하게 된 제레미 렉스. 사람들의 환영과 관심은 모두 옛말이 되어버렸고, 이제 몰락한 유명인의 근황을 취재하는 프로그램에 간신히 얼굴을 비출 뿐이다. 이십대 중반이 되도록 아직 뚜렷한 미래도, 변변한 직업도 없다. 새삼스레 음악 공부를 하겠다는 그에게 밥벌이가 되는 일자리부터 찾으라던 아버지 뜻에 따라 꾸역꾸역 제빵사 자격증을 땄지만, 그나마 단속반에 잘못 걸려 고작 사흘째에 해고당하고 말았다. 바로 그날 저녁 그는 여자친구 캉디스를 집으로 초대해 퀴즈 프로그램 우승 상품으로 받은 공짜 여행권으로 함께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고, 지구상 가장 낭만적인 도시에서 깜짝 프러포즈도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삼 주 후, 제레미 렉스는 낭만적인 베네치아의 곤돌라 위에, 허니문 스위트룸의 널찍한 침대 위에 혼자 쓸쓸히 앉아 있다. 그날 빵가게에서 있었던 일로 캉디스와 말다툼을 벌이다 끝내 그녀와 헤어졌고, 결국 혼자서 여행을 떠나온 것이다. 여전히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제레미 렉스는 베네치아 이곳저곳을 방황하다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캉디스가 특별히 좋아하던 그림,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을 발견하고 한참 동안 그림 앞을 떠나지 못한다.
제레미 렉스는 그림 속 건물 안에 유일하게 불을 밝힌 창문을 바라보며 그 내면을 상상한다. 그리고 캉디스와 서로 애틋했던 시절, 그녀의 라일락빛 방안에서의 달콤한 첫 경험을 회상하며 모든 근심으로부터 해방되는 듯한 감미롭고 편안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천재 화가의 그림에 매료된 채 한참 동안 불 켜진 창문을 응시하던 그는 경비가 와서 미술관 폐관 시간을 알리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한다.
“저, 실례지만…… 그림에 불이 꺼졌는데요.”
그의 눈앞에서 창문 안쪽 주황색 불빛들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집안에 누군가 살고 있어서 잠잘 시간이 되어 일부러 불을 끈 것처럼, 바깥의 가로등 불빛은 그대로인데 창문을 밝히던 불빛만 사라졌다. 혹시 그림 뒤에 특수한 장치가 되어 있는지 살펴보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르네 마그리트가 말 그대로 천재 화가라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아무런 비밀을 밝혀내지 못한 채 혼란만 더해지고 있을 때, 낮에 곤돌라 충돌 사고가 나면서 알게 된 필리프 네케르라는 남자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이 미스터리한 남자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제레미는 처음부터 그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낭만의 도시에서 혼자 곤돌라를 타고 있는 남자라면, 그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일 터였다. 두 사람은 바에서 만나 서로의 옛 애인에 대해 털어놓으며 가까워지고, 제레미는 미술관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밤이 깊자 제레미는 캉디스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쓸쓸한 스위트룸으로 돌아가는 대신, 어딘지 음산한 분위기의 필리프 네케르의 숙소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한다. 유령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에너지를 측정한다는 필리프 네케르는 〈빛의 제국〉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이튿날 제레미와 함께 다시 그림을 보러 간다.
다시 찾은 미술관에서는 더욱 신기한 체험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바라볼수록 빠져드는 듯한 느낌, 누군가 안에서 바라보고, 기다리는 듯한 느낌의 그 그림 속 창문이 빠끔 열리며 젊은 여자가 고개를 내미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그의 주변에 미술관 대신 어둠이 내린 거리의 풍경이 펼쳐진다. 그림 속의 아스팔트를 딛는 느낌, 나뭇잎 냄새 등 시각뿐만 아니라 후각, 촉각까지 전혀 새로운 공간에 와 있다. 그렇게 불이 켜진 ‘빛의 집’에 들어간 그는 마르타라는 여자의 안내를 받아 집안을 둘러보고, 지금까지 세상에 공개된 적 없는 〈내면의 여인〉이라는 마그리트의 또다른 작품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 년 전 캉디스와 처음 사랑을 나누었던 순간을 생생히 다시 경험하는 등 그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절을 되살려낸다.
하지만 제레미는 허망하게도 이내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사 분 삼십 초 동안 사망 상태였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를 다시 살아보는 황홀경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지만, 그는 변함없이 캉디스와 헤어진 상태고, 여전히 희망 없는 인생의 주인공일 뿐이다. 명화를 감상하던 중 일어난 갑작스러운 의식불명. 그를 이러한 기묘한 체험으로 이끈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경색으로 혈관이 막혀 잠시 의식을 잃은 것일까, 필리프 네케르의 말대로 생과 사를 오가며 유체이탈과 임사체험을 경험한 것일까. 아니면,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는 정말 마성의 힘이 깃들어 있는 것일까.
현실보다 더 매력적인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사랑이 살아 숨쉬었던 그 세계의 완전한 회복을 꿈꾸며, 그는 그림 속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가 지금껏 경험했던 것보다 더욱 초현실적인 모험을 감행한다. 아마존 주술사를 만나 ‘아야우아스카’라는 신비의 약초를 맛보고, ‘사고작용 연구소’라는 뇌 과학 연구소를 찾아가 인공적인 임사체험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기상천외한 모험을 통해 그는 또다시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그림 속에서 화가의 애인으로 짐작되는 젊은 여인과 환상적인 몸매의 콩고 여인, 나치 정권하 총사령관의 문화담당 참모 등 수많은 미스터리한 인물들을 만나며 복잡다단했던 수수께끼를 맞춰나가고, 그림 속 세상과 현실의 세상을 오가며 〈빛의 제국〉과 마그리트의 미공개 그림 〈내면의 여인〉을 둘러싼 비밀을 밝혀내며 마침내 사랑 앞에 한층 성숙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산산조각난 존재, 덧없기 짝이 없는 운명에게 비상탈출구를 열어주고
또다른 세계를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예술가들의 역할이 아닌가. _본문에서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는 어느 작가의 작품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하고 매력적인 소재로 독자들의 오감을 사로잡는 놀라운 소설을 선보인다. 르네 마그리트라는 실존했던 작가의 잘 알려진 그림을 매개로, 작가 자신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임사체험과 뇌 과학을 등장시키며, 여기에 환상성, 유머와 휴머니티를 절묘하게 녹여내 매우 초자연적이면서도 낭만적이며 현대적인 작품을 만들어낸다. 또한 “나는 상상의 자유를 사랑한다. 하지만 동시에, 작고 구체적인 디테일들까지 누구도 반박할 수 없도록 쓰고 싶다”는 한 인터뷰에서의 말처럼, 작가는 기묘하면서도 치밀한 자료를 토대로 새롭고 독창적인 스타일의 작품세계를 쌓아올리고 있다.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이 실제로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빛의 제국〉을 감상하던 중 떠오른 영감을 바탕으로 쓰였다. 그림을 감상하다 작가 자신에게 문득 영감이 떠오른 특별한 경험이나 소설 속 제레미의 신비한 체험을 모두 비범한 예술품을 감상하다 순간적으로 느끼는 정신적 충동이나 흥분 상태인 ‘스탕달 증후군’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위대한 예술작품이 아니더라도 일상의 평범한 오브제를 통해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의식이 이동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또하나의 예술적 소재가 되기도 한다. 코뵐라르트는 자신의 특별한 경험으로부터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시공간을 통해 사랑하는 존재와의 재회를 꿈꾸고, 의식의 벽에 구멍을 뚫어 자아를 회복하고 궁극의 삶을 살아가려는 주인공의 모험을 이끌어냈고, 그렇게 탄생한 주인공의 모험이 마치 주술처럼 독자들을 매혹한다. 그리고 독자들은 그렇게 탄생한 『빛의 집』을 통해,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가 제시한 또다른 세계를 통해 저마다의 매혹적이고 환상적인 모험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