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를 떠나보낸 엄마를 원망하며 자랐다.
다시 만난 엄마를, 나는 ‘레이디’라고 불렀다.
마야 안젤루와 어머니 비비언 백스터의 관계는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마야가 세 살 때 비비언 백스터는 마야의 아버지와 이혼했고, 다섯 살인 첫째 아들 베일리 주니어와 마야는 곧 친할머니에게 보내졌다. 할머니 손에 자란 마야는 열세 살 때 다시 어머니에게 가게 되는데 바로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를 ´어머니´대신 ´레이디´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마야가 처음으로 ‘어머니’라는 말을 한 것은 그녀가 엄마가 된 직후다.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된 자신을 전혀 비난하지 않고 보살피며 지지해준 어머니에게 그제야 마음을 완전히 열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나를 집안에 먹칠한 아이로 생각하지 않았다. 계획하고 낳은 아이가 아니었고 나는 학업 계획을 다시 세워야 했지만, 비비언 백스터 여사에게는 그런 게 인생이었다. 미혼모가 된 게 잘못은 아니었다. 조금 불편하게 됐을 뿐. _본문 100∼102쪽
마야 안젤루는 아들을 출산한 지 이 개월 만에 일을 구하고 어머니 집을 떠난다. 부유한 사업가 어머니가 있는데도 편한 삶을 거절하고 자립하고자 한다. 마야 안젤루에게 그런 자립심을 가르친 장본인인 비비언 백스터는 딸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응원한다. 그리고 그 이후 엄마이자 딸인 두 사람은 서로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의지하면서 끈끈한 유대를 맺기 시작한다.
생활비 때문에 스트립 댄서가 되겠다는 딸과 함께 무대의상을 만들어주는 엄마!
폭력 남자친구에게 복수하라고 총을 건네는 엄마!
표면적으로 비비언 백스터는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 조금은 특이한 엄마다. 혼자 힘으로 아들을 부양하기 위해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스트립 댄서가 되려는 딸을 말리기는커녕 함께 무대의상을 만든다. "옷을 안 벗을 참이면 맨살이 거의 다 드러날 정도로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어야 해. 그래야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으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 무대 위에서 옷을 벗으면서 포즈를 잡으면 안 된다. 계속 춤을 춰야지"(본문 160쪽) 하면서. 심각한 폭력을 가한 남자친구에게 복수를 하라고 딸에게 총을 건네는가 하면, 막 흑인 출입을 허가한 호텔에 딸과 함께 가면서 총을 챙기기도 한다.
2016년의 우리가 읽어도 놀랄 정도로, 비비언 백스터는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다. 그녀는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당당한 여성이고, 여전한 인종차별 속에서도 오히려 백인들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 사람들이 무어라 하든, 비비언 백스터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기어이 해낸다. 위험이 예상되더라도, 그것이 마땅히 자기 권리라면 절대 미리 포기하지 않는다.
"여자는 조합원으로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 그러지 뭐냐. 흑인 여자는 절대 안 된다나? 그래서 내가 말했지. ‘내기할래요?’ 그들 문틈에 발을 넣고 엉덩이까지 들이밀 거다. 모든 여자들이 조합에 가입하고, 배를 타고 바다로 나설 수 있을 때까지 말이야." 본문 182쪽
진취적이고 자주적인 비비언 백스터를 본받아, 마야 안젤루는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하며 꿈을 이루는 데 성공한다. 그녀는 1940년대에 미혼모로서 혼자 힘으로 아이를 키우느라 온갖 궂은일을 다 하면서도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행복한 삶을 추구하며 엄마라는 역할과 자기 자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았다. 모두 어머니에게서 좋은 사람과 좋은 엄마가 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마야 안젤루는 자기 삶을 대중들에게 소개하고 나누는 것으로, 희망을 찾으며 살아가는 세상 모든 아들딸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주었다.
"아들과 딸들을 사랑과 웃음과 기도로 길러내고,
비틀거리고 쓰러지더라도 다시금 일어나
나무랄 데 없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기 위해 전진하는
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부모 없이 할머니와 유년 시절을 보내고, 일곱 살에 끔찍한 일을 당한 뒤 한동안 말을 잃고, 청소년 시절에 미혼모가 된 흑인 여성. 1930∼40년에 일어난 일이든 2016년에 일어난 일이든, 그런 일을 겪은 아이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장면을 쉽게 상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삶을 산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훌륭한 엄마가 있었다.
『엄마, 나 그리고 엄마』를 통해 우리는 마야 안젤루가 그녀의 어머니에게서 얻은 지혜를 배운다. 삶의 가장 낮은 곳까지 추락한 것만 같았던 한 인생이 자유롭게 날아오르기까지 옆에서 묵묵히 지켜주고 본보기가 되었던 엄마 비비언 백스터의 지혜는 갈팡질팡하는 우리 시대의 많은 엄마들에게도 여전히 가치 있다.
성별과 나이와 인종을 막론하고 참으로 살기 힘든 시대다. 들려오는 흉흉한 소식에, 아이 손을 잡은 엄마들의 손에는 절로 힘이 들어간다. 각박하고 흉포한 세상 속에서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키워야 할까? 아이들에게 어떻게 자부심과 용기를 심어줄 수 있을까? 마야 안젤루와 어머니의 이야기는 그런 고민들로 시름에 잠긴 오늘의 엄마들에게 위로와 힘이 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돈독하고 소중한 사이, 엄마와 딸. 『엄마, 나 그리고 엄마』는 다시금 그 관계의 소중함을 깨우치고 모녀간의 사랑이 사람을 어떻게 치유하고 살리는지 함께 목도하는 시간을 선사한다.
■ 이 책에 쏟아진 찬사
마야 안젤루는 처음으로, 모녀지간의 화해의 여정과 확고한 유대와 지지에 대해 자세히 다루었다. 아주 놀랍고 너무나 솔직한, 사랑과 치유의 연대기. 북리스트
용감한 두 영혼의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초상. 피플
이 책에 담긴 교훈과 사랑은 세상으로 나아가려 애쓰는 이들에게 말을 걸 것이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마야 안젤루의 작품 중 가장 강력하다. (…) 안젤루의 눈부신 작품 목록에 강인한 정신력과 고운 마음의 작품 하나가 더 생겼다. 엘르
압축적이고 꾸밈없는 마야 안젤루의 글은 단도직입적이다. 배경에는 칼립소 음악의 부드러움, 돌풍, 악의적인 순간들 사이사이로 퍼붓는 음악성이 있다. (…) 엄마와 함께한 삶에 관한, 팽팽하게 엮고 정교하게 조정한 자서전. 커커스 리뷰
안젤루의 트레이드 마크인 유머와 열렬한 낙관주의가 깃들어 있다. (…) 화해를 위해 마야 안젤루는 이 짧은 책에 많은 것들을 공개했고, 이는 거부하기 어렵다. 워싱턴 포스트
■ 본문에서
그날 나는 누군가에게 미소 짓기만 해도 베푸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그후 세월이 흐르면서, 따뜻한 말 한마디, 지지 의사표시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고마운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옆으로 조금만 움직이면 다른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생긴다. 음악이 마음에 들면 소리를 높일 수 있고, 귀에 거슬리면 소리를 낮출 수 있다. 본문 32쪽
이걸 명심해라. 앞으로 너희를 따라다닐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평판이야. 옷이나 돈이나 앞으로 너희가 몰게 될지 모르는 커다란 차가 중요한 게 아니야. 평판이 좋으면 세상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단다. 헨더슨 할머니도 해주신 얘기라는 거 안다, 나랑 다른 표현을 쓰셨을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여기서 나와 클라이델 아빠와 함께 사는 동안에는 거짓말하지 말고, 남을 속이지 말고, 많이 웃었으면 좋겠구나. 먼저 자기 자신을 향해서, 그다음에는 서로를 향해서 말이다. 본문 49쪽
"너에 대해서는 어떤 걸 알게 됐어?"어머니가 물었다.
"내가 일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 그런 자세만 있으면 된다는 거요."
"아냐. 넌 너에게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야. 능력과 의지 말이야. 사랑한다. 네가 자랑스럽구나. 그 두 가지만 있으면 넌 어디든 갈 수 있어." 어머니가 말했다. 본문 75쪽
어머니는 자신이 내 편이라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나를 해방시켰다. 나는 자라면서 어머니와 점점 가까워졌다는 것을, 그리고 어머니가 나를 해방시켰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내가 밑바닥 중에서도 밑바닥으로 간주됐을 사회로부터 나를 해방시켰다. 나를 삶으로 해방시켰다. 본문 103쪽
생각해봐, 내가 진짜 대단한 사람이 될지도 모르잖아. 언젠간 말이지. 본문 113쪽
얘야, 맞닥뜨리게 될 모든 상황에 대비하는 자세를 길러야 해. 틀렸다고 생각하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마. 옳다고 생각하는 일만 하고, 거기에 네 목숨을 걸 태세를 갖춰라. 본문 184쪽
얘야, 자기 자신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남한테 자기를 보호해달라고 부탁하는 바보처럼 보일 수 있어. 본문 1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