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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배우고 익혀 자신이 조금이나마 발전했다는 기분이 드는 날이 있다. 오늘 하루를 뜻깊게 보낸 마음에 뿌듯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드는 ‘전진’의 나날. 하지만 그런 날이 날마다 이어지진 않는다. ‘오늘은 밥값도 못 했구나’ 하는 날도, 심지어 오늘은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나았겠다 싶은 ‘후진’의 날들 또한 존재한다. 인생, 특히 어른의 인생은 이 책의 제목처럼 ‘전진하는 날’과 ‘전진하지 않는 날’의 반복인 셈이다.
????전진하는 날도 하지 않는 날도????는 2007년 6월부터 2008년 3월까지 <주니치 신문>에 연재된 에세이와 2008년 4월부터 2010년 9월까지 일본 겐토샤 출판사의 웹진 <겐토샤 plus>에 연재된 동명의 에세이를 묶은 산문집이다. 글의 주제는 몇 가지만으로 포괄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치통, 친구와의 여행, 집의 이사, 헤어스타일 등 다소 신변잡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주제에 걸친 글이 섞여 있다. 그야말로 마스다 미리가 자유롭게 쓴 ‘어른의 일기장’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에세이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하나 고르자면, 전작 ????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와 마찬가지로 ‘어른의 삶’을 들 수 있다. 마스다 미리는 본격적인 성인의 나이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은 어른이 되는 것이 두려웠다고 고백한다.
“전문대를 졸업한 뒤, 나는 무섭고 무서워서 울기만 했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어른의 세계로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한 번 더 시험을 쳐서 대학에 갈까도 생각했지만, 돈도 없었고 일단 아르바이트를 찾아서 일했다. (……) 그리고 밤이 되면 이불 속에서 “무서워, 무서워” 하고 정말로 매일 울었다.” _「졸업」에서
대부분의 성인이라면 대학을 졸업할 즈음 한 번씩 겪는 심정이다. 이 시기의 많은 성인들에게 ‘어른’이란 ‘재미없고 고단한 삶’을 의미한다. 이젠 어디까지나 억지로 부여된 길을 따라가만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마스다 미리는 정작 어른이 되어보니 어른의 시기도 그렇게 재미없는 건 아니라며 우리를 안심시킨다. “어른이 되면 즐거운 일 따위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구나”라고. 젊은 시절 즐겼던 많은 것들이 재미없어지는 일도 물론 있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만남처럼 여전히 재밌는 일도 얼마든 존재하며, 어른이 되고 나서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즐거움도 생긴다. 친구들과 공연을 보고 돈가스를 먹고 돌아온 밤, 그녀는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인생이란 대체 무엇일까? 좋은 인생은 어떻게 보내야 할까.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할 때도 있지만, 연극의 여운을 가슴에 안은 채 욕조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고 있으니, ‘인생, 이런 느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천천히 밀려왔다.” _「여자들만의 신년회」에서
이것이 바로, 무섭고 무서워서 매일같이 울며 걱정했던 어른의 삶에 대한 마스다 미리의 해답이다. 오래오래 열심히 일할 것, 자신의 일에 일희(一喜)는 해도 너무 일우(一憂)하지는 않을 것, 그리고 여운도 즐기는 삶을 이어나갈 것.
<겐토샤 plus>에는 지금도 이 산문집에 포함된 글들에 이어 동명의 에세이가 격주로 연재되고 있다. 다음에 나올 십 년, 즉 마흔 이후의 마스다 미리가 보여줄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책 속에서★
살다보면 마음처럼 할 수 없는 일이 많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야 할 때. 내키지 않는 일을 맡아야 할 때. 정말 진심으로 싫을 때는 거절해도 괜찮지만, 뭐, 마음먹고 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할 경우, 나는 언제나 앤을 떠올린다. 진심이 아니어도 된다고. _「앤의 마법」에서
어른은 다음에 만날 때도 어른이지만, 아이들은 그렇지도 않아서 하루하루 어린이에서 멀어져간다. 다음에 만날 때는 오늘과 다른 키, 다른 얼굴 모양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 아이들이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을 리는 없겠지만,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잘 알고 있어서 작은 이별도 ‘진짜 이별’처럼 슬픈 게 아닐까 생각했다. _「‘진짜 이별’」에서
“이런 것은 내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나’가 아니야~ 더 화통하고 너그럽게!” 하고 나 자신에게 충고한다. 그렇지만 너그럽게 변하는 것도 억울하다. 이런 격렬한 자신의 감정 역시 놓고 싶지 않은 것이다. 40세이지만, 어른이지만, 나는 여전히 사춘기인 채로다. 앞으로도 철없는 어른인 채 나이만 먹어갈지도 모르겠다. _「어른이란」에서
한 가지, 아무리 말해도 엄마가 버리지 않았던 것이 있었다. 내가 전문대생 시절에 그린 서양화다. 창피하니까 버리라고 해도 엄마는, “이건 엄마가 죽을 때까지 갖고 있을 거야” 하고 버티더니, 커다란 서양화 캔버스를 몇 개나 이삿짐센터 사람에게 옮겨달라고 부탁했다. 내 그림을 무조건 좋아해주는 것은 이 사람밖에 없구나, 하고 생각했다.
_「본가의 이사」에서
지금 내가 죽으면 이 청서한 만화가 정말로 출판되는지 어쩌는지 지켜볼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괜찮을까 불안해진다. 그래서 청서한 원고를 출판사에 보낼 때, 음산한 메모를 덧붙인다. 「제가 죽더라도 이 원고를 꼭 책으로 출판해주세요…….」
이런 메모를 받은 편집자는 “하여간 이 사람 참…” 하고 매번 어이없어할 게 분명하다. 알지만, 걱정돼서 쓰지 않을 수 없다. 유언이라면 어떻게든 들어줄 테니…….
_「한 번뿐인 인생과 유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