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
- 원서명
- Stupidity
- 저자
- 아비탈 로넬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일
- 2015-10-30
- 사양
- 544쪽 | 138*222 | 신국판 변형 | 양장
- ISBN
- 978-89-546-3828-9
- 분야
- 철학/심리/종교, 문학동네 인문 라이브러리
- 정가
- 30,000원
- 신간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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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해체론과 페미니즘을 아우르고, 철학과 문학비평, 자전적 글쓰기를 넘나드는 파격과 유희의 사상가 아비탈 로넬. 자크 데리다와 폴 드 만을 잇는 해체론의 계승자이며 독특한 글쓰기로 현대 문화와 문명을 사유해온 학계의 이단아 로넬의 대표작이자 국내 첫 번역서 『어리석음』이 출간되었다. 번뜩이는 지성과 촌철살인의 풍자로 근대 이후를 수놓은 철학과 문학의 거인들을 거침없이 들었다 놓았다 하는 동시대 사유의 전위를 만난다. 이성의 세계에 백치미와 비웃음으로 치명적 균열을 내는 어리석음, 영리한 자들이 그리도 감추고 싶어하던 사유의 원점! 이 책은 "어리석음"이라는 특정한 주제에 관한 글쓰기인 동시에 글쓰기 자체의 의미를 묻는 글쓰기를 지향한다. 또한 어리석음은 무엇인가를 해명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돌아보게끔 하는 글쓰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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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해체론의 창조적 계승자로 손꼽히는 미국의 철학자, 비평가, 번역가. 관념론과 해석학, 정신분석학과 페미니즘을 비롯한 다양한 이론적 바탕 위에서, 문학과 철학, 대중문화와 기술사회, 기독교와 이슬람 문제 등 문명사의 폭넓은 사안을, 독특한 글쓰기를 통해 숙고해온 우리 시대의 독창적 사상가다.
1952년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난 로넬은 이스라엘 외교관이던 부모를 따라 네 살 때 미국 뉴욕으로 이주한다. 미들베리 대학을 졸업한 뒤, 베를린 자유대학에 유학해 야콥 타우베스와 한스게오르크 가다머가 운영하던 해석학연구소에서 수학한다. 1979년 스탠리 콘골드의 지도 아래 프린스턴 대학에서 독일학 박사학위를 받고, 그해 6월, 한 학술대회에서 평생 스승이 될 자크 데리다와 만난다. 데리다에게 도전적인 질문을 던졌고 이에 데리다가 이름을 묻자 “형이상학Metaphysics”이라고 대답한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1980년 데리다의 에세이 「장르의 법칙」을 영어로 번역해 소개한 이래, 데리다 저술의 영어 번역자로 학계에 이름을 알린다. 이듬해 훔볼트 재단의 연구원으로 3년 동안 베를린에서 지내며 데리다, 엘렌 식수, 폴 드 만 같은 학자들과 교류한다. 1984년 버지니아 대학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으나 부당한 사유로 해고된 뒤, 캘리포니아 대학(버클리) 독문학과와 비교문학과 교수로 부임해 10년 남짓 재직한다. 이곳에서 필리프 라쿠라바르트, 장뤽 낭시, 주디스 버틀러 등과 함께 연구하고, 캐시 애커 등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행위예술가로도 활동하면서, 문화운동과 페미니즘에 헌신한다.
1995년 뉴욕 대학 비교문학과와 독문학과로 자리를 옮겨 현재까지 재직중이며, 유럽대학원에서도 정기적으로 강연하고 있다. 데리다와 폴 드 만 이후 해체론 철학을 가장 활발히 연구하는 학자이자 현대 사상의 최전선에 있는 이론가로 평가된다. 2009년 파리 퐁피두센터 주최로 ‘아비탈 로넬에 따르면’이라는 제목의 컨퍼런스가 개최되고, 같은 해 제자 다이앤 데이비스의 주도로 낭시, 버틀러, 베르너 하마허 등이 필진으로 참여해 로넬의 사유를 정리한 책 『로넬 읽기』가 발간된다.
주요 저서로 『받아쓰기: 신들린 글쓰기』(1986), 『전화번호부: 기술, 정신분열증, 전자 연설』(1989), 『마약 전쟁: 문학, 중독, 조증』(1992), 『유한성의 악보: 밀레니엄의 종말에 관한 에세이』(1994), 『어리석음』(2002), 『테스트 충동』(2005), 『아메리칸 필로』(2006), 『패배한 자식들: 정치학과 권위』(2012)가 있고, 그밖에 논문 모음집 『위버리더』(2008), 프랑스에서 출간한 인터뷰집 『아메리칸 필로』(2006)[영어판 『투쟁하는 이론』(2009)]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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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론. 천천히 깨닫는 사람
1. 어리석음의 문제
왜 우리는 지방에 머무는가
2. 어리석음의 정치학
무질, 현존재, 여성 공격, 그리고 나의 피로감
3. 시험의 수사학
★ 키르케고르 위성
4. 백치의 실종과 귀환
★ 워즈워스 위성
「백치 소년」
★ 칸트 위성
우스꽝스러운 철학자의 형상, 혹은 나는 왜 이리 유명한가
주|아비탈 로넬 연보|해설|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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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리뷰
“타자 앞에서 나는 어리석다”
2002년 출간된 『어리석음』은 아비탈 로넬의 사유가 가장 원숙기에 이른 시점에 쓰였고, 저자가 걸어온 학문적 궤적이 고스란히 집약된 대표작이다. 이 책은 그 구성에서부터 파격적이다. 얼핏 보기엔 횔덜린, 무질, 슐레겔, 루소 등 ‘어리석음’을 논한 서양의 다양한 저작을 새롭게 읽는 형식이지만 어떤 연대기적 순서를 따르거나 일정한 주제에 따라 묶여 있지는 않다. 여기에 핀천, 도스토옙스키, 워즈워스의 작품들에 대한 비판적 읽기가 더해지고, 칸트, 키르케고르, 워즈워스에 대한 명상은 ‘위성satellite’이라는 명칭 아래 별도의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중간중간 로넬 자신의 실존 체험과 관련된 자전적 이야기가 불쑥 끼어들기도 한다. 특히 서론 말미에 부록처럼 삽입된 저자의 ‘일기’(61~63쪽)라든가 폴 드 만과의 학문적 인연(193~195쪽) 같은 사적인 이야기들이 그렇다.
인간 지성계라는 우주 공간에 루소, 괴테, 횔덜린, 니체, 슐레겔, 무질, 플로베르, 카프카, 도스토옙스키, 바타유, 프로이트, 벤야민, 하이데거, 라캉, 들뢰즈, 데리다, 폴 드 만, 그리고 저자 자신이 저마다 하나의 행성처럼 (겉보기엔) 무질서하게 퍼져 있고, 그 중간에 ‘어리석음’이라는 블랙홀 또는 웜홀이 존재의 구멍처럼 자리해 시간여행을 이끌며, 이 사유의 우주 공간을 관측하기 위한 세 개의 위성(칸트, 키르케고르, 워즈워스)이 띄워져 있다고 보면 된다.
이 책에서 로넬은 ‘어리석음’에 빛을 비추어 철학적으로 해명할 의도가 전혀 없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히듯, “억압된 사유의 영역에 빛을 비추자는 주장들은 유보되어야” 하며, “너무나 쉽게 광휘와 빛나는 진리의 상징들에 휩싸여온 지식 영역과 확연히 다른 편에 다다르기 위해…… 이제부터 어둠 속으로 길을 헤쳐나가고 암흑과 대면”(6쪽)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리석음은 무지無知, 지식/지혜의 결핍과 관련이 있다. 어리석음은 지식 이전의 순수한 상태와는 다르며 지식을 전제하기에 어리석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지식/지성은 어리석음을 억압하고 타자화함으로써 성립한다. 푸코가 갈파했듯, 비이성/광기를 분류하고 통제함으로써 ‘이성/정상’의 체제가 구축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때의 지식/지성은 ‘안다고 가정된 주체sujet supposé savoir’, 코기토적 주체에 기반하고 있다. 따라서 앎의 확실성, 주체의 확실성이 불확실해질 때 어리석음에 씌워진 억압과 차별의 멍에는 벗겨진다. 초자아에 억압돼 있던 무의식의 봉인이 풀리듯, 안다고 가정된 주체의 허약한 실상이 드러나는 순간 앎의 세계는 거대한 미궁에 빠진다. 존재의 거대한, 영원한 구멍이 실체 아닌 실체를 드러낸다. 하지만 그것이 곧 진정한 앎의 시작이다. 이 경계지점에서 취해야 할 윤리적 태도를 로넬은 이렇게 명시한다. “타자 앞에서 나는 어리석다.”(103쪽)
로넬이 이 책에서 펼쳐 보이는 ‘어리석음’의 만화경은 프로이트와 니체가 이성에 눌린 어둠의 봉인을 푼 이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장 이후 해체된 인간 지성의 풍경에 다름 아니다.
두 돌파의 사상가[프로이트, 니체]는 더 어두운 광채를 요청했고, 가차 없는 비틀거림의 행보, 무의식의 으르렁거림, 그리고 암흑 언저리의 끊임없는 휘청거림에 우리가 대처할 수 있게 했습니다. (6쪽)
브레히트는 지능은 유한하지만 어리석음은 무한할 수 있다고 말했고, 아인슈타인은 “우주와 어리석음, 이 두 가지는 무한하지만, 우주에 대해서는 확신을 못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실러는 어리석음이 무한성의 영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역설적이지만 신에게 한계를 부과할 수도 있다고 본다. “어리석음과 싸우는 과정에서는 신 자신들도 당혹스러워한다.” (122~123쪽)
삶을 구성하는 근원적 공백
로넬에게 어리석음은 “모더니티(근대성)의 지울 수 없는 표식으로서 우리의 증상”이다. 어리석음은 주체가 처한 근원적 굴욕의 상황을 나타내며, 우리가 떠안고 살아가는 “일상의 트라우마”(32쪽)다. 우리는 모두 어리석음의 산물이지만 어리석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인식되지 않는다. 어리석음은 트라우마의 작용처럼 우리 실존의 근본구조이며, 특정한 지식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 우리의 어리석음에 대한 무지야말로 가장 근원적 무지를 이룬다.
우리가 어리석은 존재인 것은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로넬이 보기에 어리석음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알 수 없는 인간의 상황은 진정한 앎의 기반이 된다. 허먼 멜빌이 『빌리 버드』에서 드러내는 “이해의 공백”(164쪽), 폴 드 만이 몰두해 있는 “모든 지식의 완전한 공백”(187쪽), 도스토옙스키의 ‘백치’가 암시하는 “신성한 공백”(338쪽), 워즈워스의 시 「백치 소년」를 두고 “공백을 그려내는 존재의 떨림”(424쪽)이라 말할 때의 그 공백. 로넬이 말하는 어리석음은 이 근원적 공백의 표상이며, 라캉의 ‘그것(사물)’, 즉 상실된 대상으로서의 절대적 타자와 가까운 그 무엇이다. 이 책 전체는 이 인식 불가능한 공백을 중심으로 저마다의 궤도를 따라 회전하는 사유의 행성들로 채워져 있다. 이 은하계의 중심에는 태양과 같은 빛이 아니라 블랙홀 같은 텅 빈 어둠이 존재하는 셈이다.
로넬은 서양철학이 이 거대한 공백으로서의 어리석음을 어떻게 억압하고 왜곡했는지를 치밀하게 추적한다. 어리석음에 관한 철학적 사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 일이야말로 어리석음의 사유로 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로넬은 서양철학이 전제하는 진리 관념의 허구성을 비판한 니체와 그의 사유를 이어받아 해체의 사유를 실천한 데리다를 계승한다.
로넬의 성찰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첫째, 하이데거, 루소, 키르케고르, 슐레겔, 칸트, 프로이트, 그리고 폴 드 만에 이르는 어리석음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계보 및 그 한계에 대한 비판. 둘째, 횔덜린, 핀천, 무질, 도스토옙스키, 워즈워스를 통해 어리석음을 미학적 범주로 다루는 사유의 흐름에 대한 비판. 셋째, ‘여성’이자 ‘철학자’인 로넬 자신의 심리적이고 신체적인 어리석음에 대한 고백과 ‘타자’에 대한 어리석음의 윤리 모색.
『어리석음』이 추구하는 궁극적 입장은 어리석음을 무지의 표상으로 억압하며 성립한 서양철학의 사유 일반에 대한 정치적 비판인 동시에 철학적 논증의 타자로 배제되어온 문학적(여성적) 글쓰기의 가능성에 대한 옹호로 요약할 수 있다. 철학은 무지와 창조적 글쓰기를 어리석은 타자로 정립함으로써 자신의 근원적 어리석음을 망각해온 역사에 다름 아니다. 이 책 『어리석음』은 어리석음에 관한 왜곡된 사유를 해체하는 작업인 동시에 창조적 글쓰기를 통해 어리석음이라는 근원적 공백을 끌어안고 나아가려는 하나의 실천이다.
로넬이 말하는 어리석음은 마치 우리의 몸에 들어와 우리를 구성하고 있으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장 이질적 존재, 우리 삶을 구성하는 근원적 공백空白, 그러나 결핍缺乏은 아닌 일종의 휴지休止caesura를 지칭한다. 결핍이 아닌 이유는 이 공백이 결코 부정否定의 형태로 표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로넬은 어리석음이 결핍이 아니라 차라리 (라캉이 말하는) ‘그것Das Ding’에 가깝다고 말한다. 즉 그것 없이는 어떠한 앎도 사유도 삶도 가능하지 않은 그 무엇인 셈이다. 그녀에 따르면 서양철학은 이 근원의 어리석음을 공백으로 사유하지 못하고 특정한 표상으로 억압해온 역사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단호하게 해체의 대상이 된다. 이 책이 어리석음에 ‘관한’ 사유가 아니라 어리석음‘의’ 사유인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528쪽. ‘역자 해설’)
해체론과 페미니즘을 아우르고, 철학과 문학비평, 자전적 글쓰기를 넘나드는 파격과 유희의 사상가 아비탈 로넬. 자크 데리다와 폴 드 만을 잇는 해체론의 계승자이며 독특한 글쓰기로 현대 문화와 문명을 사유해온 학계의 이단아 로넬의 대표작이자 국내 첫 번역서 『어리석음』이 출간되었다. 번뜩이는 지성과 촌철살인의 풍자로 근대 이후를 수놓은 철학과 문학의 거인들을 거침없이 들었다 놓았다 하는 동시대 사유의 전위를 만난다. 이성의 세계에 백치미와 비웃음으로 치명적 균열을 내는 어리석음, 영리한 자들이 그리도 감추고 싶어하던 사유의 원점! 이 책은 "어리석음"이라는 특정한 주제에 관한 글쓰기인 동시에 글쓰기 자체의 의미를 묻는 글쓰기를 지향한다. 또한 어리석음은 무엇인가를 해명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돌아보게끔 하는 글쓰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