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전철 안, 영화관, 라면 가게 앞,
편의점 계산대 주변, 기타 등등
당신의 ‘뭉클’은 어디에 숨어 있나요?
여자 나이 사십. 재미있던 게 점점 재미없어지고, 그렇다고 새롭게 재미 붙일 곳도 딱히 없어지는 나이. 예전엔 별거 아닌 데서도 설레고 감동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대단한 걸 맞닥뜨려도 좀처럼 가슴이 뭉클해지는 일이 없다. 남자를 봐도 마찬가지. 다들 얘기한다. 요즘 “뭉클하고 와 닿는 남자”가 없다고. 사십대가 되면 달콤새콤한 설렘을 느낄 일이 더이상 없는 걸까? 이제 뭉클하면 안 되는 나이인 걸까?
천만에! 사십대가 된 마스다 미리가 또래 사십대 여자들에게 고한다. 실컷 뭉클해도 괜찮다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사라지는 설렘과 감동 대신에 더 많은 ‘뭉클’의 순간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무심히 지나칠 사소한 몸짓과 말에도 감동할 줄 아는 여자, 마스다 미리가 이번엔 ‘여자의 뭉클’이란 감정을 들고 찾아왔다. 이 책 『뭉클하면 안 되나요?』는 그녀가 일상 속 여러 남자들에게서 포착한 뭉클의 순간들을 모아 귀여운 일러스트와 함께 보여주는 책이다. 원제목에서 ‘뭉클’에 해당하는 일본말은 “큔(キュン).” 찡하고 짠하고 뭉클하다는 뜻이 전부 포함된 단어다. 한국에서는 종종 ‘심쿵’으로 번역되어 쓰이는데 마스다 미리의 “큔”은 좀더 ‘연륜 있는 심쿵’이라 할 수 있다.
멋있는 남자의 긴 손가락, 늠름한 팔뚝에만 뭉클한 게 아니다. 그런 순간적이고 피상적인 설렘보다 훨씬 달콤한 설렘을 주는 남자들이 있다. 길 가다가 얼음조각으로 드리블을 하는 중년 샐러리맨, 내가 밖으로 나올 때까지 문을 잡아주고 있던 친절한 남자아이, 연극을 보며 혼자 훌쩍훌쩍 울던 청년, 디저트 뷔페에서 케이크를 산처럼 쌓아놓고 먹고 있던 중학생 3인조까지…… 조금만 주위를 둘러봐도 뭉클하게 만드는 남자들이 사방에 넘쳐난다.
뭉클함은 뜻밖에 단순하다. 그 순간들은 당연히 우리의 일상에도 존재한다! 무료하고 건조하다고 생각해온 자신의 일상을 찬찬히 돌아보며 뭉클했던 기억을 하나둘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마스다 미리가 그랬던 것처럼, 누가 언제 뭉클한지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수다를 떨며 공유를 해도 좋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온 세상이 뭉클뭉클 감동 넘치는 세상처럼 느껴질 것이다.
다시 여자 나이 사십. 예전에 나를 설레게 했던 것들에서 감동받지 못하더라도 아쉬울 거 없다. “언젠가 죽어버릴 우리에게 주어진 사소한 포상”인 뭉클한 순간들이 우리에겐 넘쳐나도록 있으니까.
이번에는 돌멩이만 한 얼음조각을 차기 시작했다. 툭 차고, 얼른 쫓아가서 또 찬다. 힘이 넘쳐서 우체통 옆으로 미끄러져간 얼음을 발끝으로 다시 보도 쪽으로 돌려놓는 뒷모습은 하교하는 남자아이 그 자체. 내 입가는 반가움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_「눈에 뭉클」에서
“토이 기능까지 있어서…….” 청년은 정말로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카메라를 좋아하는구나. 귀여워라. 절전중인 가게 안은 찜통 상태. 그런 가운데, 나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골라주었구나. 뭉클. “그럼 그걸로 할게요.” 내가 말하자, 몹시 기뻐했다. 계산대까지 안내해준 그의 조끼 등에는 커다랗게 ‘캐논’이라는 글씨가. 캐논에서 출장 나와 있는 사람이었다. _「전자제품 가게의 점원에게 뭉클」
수납함을 다섯개 사서 가게 앞까지 좀 들어다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가게 앞이 아니라 택시 잡기 쉬운 곳까지 함께 들어다드리겠습니다.”
이러는 것이다. 그가 세 개, 내가 두 개. 나란히 수납함을 나르는 여정은 약 50미터.
“미안해서 어쩌나, 이런 부탁해서.”
아줌마 같은 말투에 후회했다. 이럴 때, 인기 있는 여자들은 어떤 말을 할까?
_「무인양품 점원에게 뭉클」
어떨 때 남성을 보고 뭉클하는지 에세이를 쓰고 있어요, 하는 내 말에 재미있게도 아는 남성들이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아, 남자가 차 운전할 때 후진하느라 돌아보는 모습 같은 거요? 여자들은 거기에 뭉클해하는 것 같던데요.”
따로따로 만난 남성 세 명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렇게 말해서 “호오~” 하고 신기해했다. _「그들의 믿음에 뭉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