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콜롬비아 용사들의 고백
생생한 육성이 만들어내는, 전쟁의 역사 속 인생의 파노라마
소설의 제목 ‘맘브루’는 〈맘브루는 전쟁에 갔다네〉라는 유명한 노래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기서 맘브루는 영국 ‘말버러’ 가문의 백작 존 처칠을 가리킨다. 그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중에 일어난 말플라케 전투에서 총사령관의 직무를 맡아 프랑스군을 대파했는데, 이에 프랑스 병사들이 그를 조롱하는 뜻에서 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 이 노래는 후에 스페인으로 건너가 거리에서 불리는 구전 동요가 됐다.
제목의 배경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맘브루』는 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소설이다. 장교로 한국전쟁에서 사망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역사학자 비나스코는 콜롬비아의 공식 역사에 의혹을 품고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콜롬비아 군인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한다. 공식 역사에 대한 역사학자의 의혹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참전용사들의 고백이 더해지며 이 소설은 뼈대를 갖춰간다.
총 6부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에 화자로 등장하는 참전군인은 모두 일곱 명이다. 소설의 시작 부분과 각 부의 마지막에는 역사가 비나스코의 목소리가 삽입되어 있고, 장이 바뀔 때마다 각기 다른 군인이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를 지나온 여러 사람의 시각이 교차되는 형식으로, 군함을 타고 부산까지 가는 여정과 전투 장면, 당시의 정치 ․ 사회상에서부터 병사들 사이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온갖 이야기들이 풍부하게 펼쳐진다. 화자가 여럿이다보니 같은 사건과 같은 인물에 대해 여러 목소리가 중첩되는 점도 흥미롭다. 개인의 경험과 사연은 조금씩 다르지만 각각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다보면 여러 개로 쪼개진 조각들이 맞물려 하나의 파노라마를 이룬다.
이야기는 여러 갈래로 흘러가고 각 이야기의 색깔은 다양하지만, 결국 그들이 토해내는 것은 전쟁의 고통이다. 고통스러운 역사와 자신들이 겪어야만 했던 지난한 세월. 참전병사 중 한 명인 갈린데스는 “우리는 딸랑이와 거울로 장식된 도살장으로 끌려간 총알받이에 불과했습니다. 마치 훈장의 쇠붙이처럼, 가짜로 약속한 유리구슬에 현혹당한 원주민 같았어요. 현실은 지옥이었습니다”라고 말하며 그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블랙 유머와 비꼬는 말들로 점철된 그들의 육성에는 전쟁터로 갈 수밖에 없었던 사연과 한국의 추운 고지에서 벌어졌던 전투의 처절함, 동료애, 고국에 대한 향수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미국의 사주를 받아 자신들을 전쟁터로 내몬 정부에 대한 불신 등이 공통적으로 배어 있다. 『맘브루』는 콜롬비아의 역사 속에서 망각되었던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소환하여 전쟁의 야만성이 안긴 붉은 상처를 다시금 드러낸다. 그들의 살아 있는 기억, 생생한 육성은 우리가 이제까지 ‘역사’라고 부르던 것의 진실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역사책에는 각주로도 등장하지 않는 사람들
소외된 이들의 가장 내밀한 사연들
공식 역사의 진실성에 대한 의혹이 소설의 프레임이라면, 그 프레임을 메우고 있는 것은 병사들 개개인의 사연과 전쟁터에서의 이야기다. 소설의 화자로 등장하는 일곱 명의 군인들은 자신들의 사연뿐만이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도 실감나게 전한다. 공식 역사의 허구를 증명하기 위해 등장한 목소리들은 그 허구를 밝히는 것을 넘어서 자신들의 내밀한 역사까지도 모두 게워낸다.
그들이 지나온 삶과 전쟁터까지 가게 된 사연은 저마다 기구하다. 권력자들의 공습 조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자에게 상해를 입힌 후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입대한 갈린데스, 학과 선택을 잘못한 것을 인정하기 싫어 미국이 준다는 장학금을 핑계로 도피한 ‘먹물’ 야녜스,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집을 뛰쳐나온 아르벨라에스, 아내가 자신을 속이고 사촌과 정을 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입대한 오르도녜스, 콜롬비아 폭력사태 당시 아버지와 두 형이 살해당하고 누이들은 강간당한 후 집안을 꾸려가다 병사로 자원한 페냐, 주인집 딸을 강간했다는 누명을 쓰고 도망나온 운전기사 출신 키뇨네스, 막내 고모와의 사랑에 상처받은 로차…… 그들은 거친 말투로 비아냥거리듯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는 자신들이 떠안아야 했던 삶의 고통이 알알이 박혀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고통은 전쟁을 맞닥뜨리며 더욱더 증폭된다. 고지에서의 치열한 전투에서 겪어야 했던 극심한 공포와 추위, 눈앞에서 목도해야 하는 동료들의 죽음 등 전쟁의 참혹함이 그들에게 주어진 몫이다. 한국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일종의 도피처럼, 혹은 어떠한 보상이나 운을 기대하고 전쟁터로 뛰어들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또다른 고통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파란만장한 사연들과 더불어 이야기의 주요한 소재가 되는 것은 전쟁터에서의 일상사와 병사들 간의 관계다. 근육 덩어리 병사 엘킨과 두 장교, ‘소돔 신부’ 카스트리욘 등의 인물들을 주축으로 벌어지는 동성애, “남자라는 것, 군인이라는 것, 발정기에 있다는 것은 참기 힘든 동의어의 반복”이라며 사창가를 찾아다니고 포르노 잡지를 돌려보는 병사들, 장교들 사이의 비밀스러운 신경전, 오르도녜스의 자살 사건, 소년 병사 에르메스를 골탕 먹이는 아르세시오, 동양 철학에 심취한 아벤다뇨 중령, 모두를 단결시키는 안드라데의 하모니카 소리 등등 작품 속 화자들은 자신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모든 이야기들을 샅샅이 전해준다. 처절한 고통을 묘사하면서도 때로는 유머러스함이, 또 때로는 우스꽝스러움이 섞여들어간 이야기들은 비록 역사책에는 각주로도 등장하지 않을지언정 그 어느 기록보다도 생생하다. 인터뷰를 마친 비나스코가 표현하듯 “장대한 기록이며, 큰 수정 없이 발표했다 해도 문제없을 합창곡”이 아닐 수 없다.
병사들 개개인의 사연들과 갖가지 에피소드는 앙금처럼 작품 속을 꽉 채우며 소설의 맛을 선사한다. 전지에서 병사들의 심금을 울렸던 안드라데의 하모니카 소리처럼, 그들의 목소리는 전쟁을 모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스며들어 파문을 이룬다.
의혹과 침묵은 그대로지만, 이 소설에서 중요하게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다. 모레노 두란은 기록으로 남겨진 공식 역사를 중심에서 배제한 채, 소외된 약자들의 시선에서 기억으로 쓰인 역사를 다시금 펼쳐냈다. 기록되지 않은 채 사라져가는 이야기와 사건들을 일깨움으로써 역사의 깊은 곳에 존재하는 또다른 층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문자화 ・ 숫자화된 피상적인 역사가 아니라 마음을 울리는 심층적 역사다. 작품 속 화자로 등장하는 군인들의 생생한 육성은‘기록’만 있을 뿐 ‘기억’이 없는 역사를 공격한다. 소외된 자들의 시선을 통해 역사는 확장되고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