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해룡의 동시에선 젖 냄새가 난다. 흔히 말하는 유아적 태도나 유치함의 은유로서가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층위에서 그렇다. 그의 동시에선 꽃씨 달린 민들레는 엄마가 아이에게 마지막 젖을 물리고 있는 모습으로, 무른 홍시는 잘 여문 씨들에게 온 힘을 다해 젖을 짜 먹이고 있는 모습으로 성화(聖化)된다. 시인의 웅숭깊은 모성적 상상력은 자연과 사람, 우주를 포용하며 한 덩어리로 호흡한다. 또한 그 세계에 자리한 진한 곰국 같은 득의의 웃음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서로 어깨 겯고 이 험난한 세상을 견디게 하는 힘을 선사한다.” _유강희(시인)
곽해룡 시인의 새 동시집 『축구공 속에는 호랑이가 산다』가 출간되었다. 2007년 눈높이아동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참신한 발상과 말법으로 빚은 시편들로 푸른문학상, 오늘의 동시문학상, 김장생문학상, 연필시문학상, 전태일문학상 등을 거머쥐며 역량을 인정받은 바 있다.『맛의 거리』(문학동네, 2008), 『입술 우표』(푸른책들, 2010), 『이 세상 절반은 나』(우리교육, 2011)에 이어 네 번째로 펴내는 이 동시집은 보다 웅숭깊은 모성적 사랑으로 세상을 껴안으며, 시인 특유의 포용과 웃음의 방식으로 직조된 동시세계에 독자들을 데려간다. 펴내는 동시집마다 기존 동시문법을 무색케 하며 진한 감동과 울림을 전해온 만큼, 총 51편의 작품이 실린 이 동시집 역시 독자와 동시문단의 큰 기대와 관심에 모자람 없이 부응할 것이다.
여린 존재를 보듬는 웅숭깊은 모성적 상상력
단단하고 깊게 무르익은 정신의 한 경지
민들레 꽃씨/ 후우 불지 마세요// 엄마가/ 마지막 젖을 물리고 있으니// 민들레 꽃씨/ 후우 불지 마세요// 동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으니// 민들레 꽃씨/ 후우 불지 마세요// 제각각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으니 _「민들레 꽃씨 후우 불지 마세요」 전문
곽해룡의 동시는 다정하고 따뜻하다. 애정 어린 눈으로 세계와 대상을 바라본 자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다. 그의 동시에선 해바라기가 “쪽쪽 햇살을 빨아 먹”(「해바라기」)고, 민들레 흰 꽃씨는 바람에 실려 떠나기 전에 “마지막 젖을 물”(「민들레 꽃씨 후우 불지 마세요」)고, 홍시가 “잘 여문 씨들에게/ 온 힘을 다해/ 젖을 짜 먹이”며 종내 “스스로 뭉개지고”(「홍시」) 만다. 젖 이미지를 거느린 이 모성적 상상력은 작품 전반에 온기와 생명력을 더하는 젖샘이자 원동력으로 이 동시집의 중핵에 자리하고 있다. 시인 유강희는 해설에서 한층 넓고 깊어진 곽해룡의 성찰과 발견에 대해 “단단하고 깊게 무르익은 정신의 한 경지”라고 평한다.
잎을 떨어뜨려/ 어린 나무들 발등을 덮어 주던 나무가/ 바람 불자/ 잎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더 센 바람이 불어오면/ 잎을 실어 보내기 위해서// 멀리/ 엄마 없이 자라는/ 어린 나무의 발등도 덮어 주고 싶어서 _「가을 나무」 전문
곽해룡의 동시는 삶의 곤고한 결핍들을 보듬는다. 이는 동시 쓰기를 통해 “상처를 안고 성장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여린 영혼을 어루만져 주고 싶다.”는 시인의 생각과 연결된다. 이를테면 아빠 없이 자란 아이가 지닌 그리움과 원망, 빈집에 혼자 남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심경,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순간 눈초리를 타고 흐르는 눈물 등이 이번 동시집에 섬세하게 묘사되는데, 시인은 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지켜봐주고 때론 가까이 다가가 아픈 구석을 도닥인다. 염소의 울음소리를 듣고 “매헤에는 젖도 떼기 전에 헤어진/ 누이 이름”(「나는 누구 이름을 부르며 살까」)일 거라고 생각한다거나, “뚜루루 뚜루루” 우는 귀뚜라미 소리를 빌려 “돌아가신 할머니 목소리”(「귀뚜라미」)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의 동시는 외롭고 아프고 울고 싶을 때 찾게 되는 엄마 품처럼 공감과 위안의 힘을 전한다.
삶의 속내를 헤아리는 포용과 웃음의 힘
자루 가득 공기를 훔친 도둑은/ 조심조심 나영이네 집을 빠져나왔으나/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이/ 컹컹 개 짖는 소리처럼 쫓아왔다// 도둑하고 한패인 하느님이/ 하얀 가루를 마구 뿌려/ 발자국을 덮어 주었다 _「메리 크리스마스」 부분
곽해룡은 이번 동시집에서 삶의 핍진한 풍경을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필치로 그려낸다. 특히 극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이야기동시나, 동물의 특성에 빗대 인간의 욕망과 세태를 꼬집은 우의적 기법의 동시는 주목할 만하다. 말하자면 시인은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가슴이 콱 막”(「메리 크리스마스」)히는 우리네 궁핍한 현실에 한 편의 동화처럼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이야기를 입혀 삶의 환부를 쓰다듬는다. 또한 “사람을 등에 업고 다니”는 낙타의 모습에 “제 자식은 한 번도 업어 주지”(「낙타」) 못하고 먹고사느라 바쁘기만 한 인간의 속내를 솜씨 좋게 겹쳐내는가 하면, 달팽이가 “자기 몸 하나 달랑 들어가는 집을 등에 지고 다니는” 까닭을 “집을 내려 땅을 차지하는 게 미안하기 때문”(「달팽이」)이라며 인간의 가없는 욕망과 견주어 보기도 한다. 시인 특유의 넉살과 해학이 담긴 그의 동시는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시 읽는 즐거움을 안겨 주며 통념에 길들여진 우리를 새로이 눈뜨게 한다.
한 명, 두 명, 세 명, 네 명……/ 아기가 개미를 셉니다// ‘명’이 아니라 ‘마리’라고/ 엄마가 일러 줍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아기가 사람을 셉니다// ‘마리’가 아니라 ‘명’이라고 엄마가 일러 줍니다// 한 명, 두 명, 세 명, 네 명……/ 아기가 또 개미를 셉니다// 아기의 눈엔/ 사람이나 개미나 똑같습니다 _「아기의 셈」 전문
무릇 시인은 사물과 사물, 생명과 생명 사이의 관계를 눈여겨보고 거기에서 새로운 발견을 끌어내는 존재다. 그런 점에서 곽해룡은 ‘아기의 눈’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세상 만물을 함부로 구분 짓거나 가치를 셈하지 않으며, 모든 존재를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한다. 그의 동시에서 자연과 인간, 사물은 경계를 허물어 서로에게 “팔뚝을 내주”(「눈꽃」)거나 “서로의 몸에서 티끌을 떼어”(「파도와 모래」) 준다. 이 세계의 주인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세 들어 사는” 존재인 셈이다. 축구공 속에는 호랑이가 살고, 곽해룡의 동시에는 세상 모든 존재가 공명하고 공존하며 산다.
봄날 풍경을 떼어 옮긴 듯 파안(破顔)을 선사하는 그림
화가 강태연은 처음 곽해룡의 시를 읽고 맑고 투명한 수채화 한 폭을 떠올렸다. 대상을 따숩게 보는 시인의 눈길과 마음 한편을 먹먹하게 만드는 슬픔에 맞춤해 그는 시의 정서와 분위기에 걸맞은 그림을 그려냈다. 마치 봄날 풍경을 떼어 옮긴 듯한 그림은 시와 한 몸으로 어우러진다. 꿈틀꿈틀 날아가는 나비와, 솨아솨아 내리는 빗줄기와, 씰룩씰룩 궁둥이 흔들며 걷는 아이들의 모습은 읽는 이의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를 선사한다. 시와 그림이 전하는 감동과 여운은 가슴에 오래 남아 이 책을 다 읽고 덮은 후에도 계속해서 다독다독하게 만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