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동시문학상, 그 의미 깊은 두 번째 성취_ 김륭 『엄마의 법칙』
문학동네가 지난 2012년 새로이 제정한 ‘문학동네동시문학상’이 우리 동시 문단에 신선한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1회 대상 수상작인 김개미의 『어이없는 놈』은 “상대의 의표를 단방에 찌르며 독자를 매번 무장해제시키는” 새로운 캐릭터를 앞세워 “기존 동시와는 다른 지점에서 새로운 동시의 맛을 보여 준다”(이안,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 중에서)는 평을 받으며 동시의 독자층 자체를 한껏 넓혔다.
제2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도 1회에 이어 권오삼, 이재복, 안도현 심사위원이 예심과 본심을 진행하였다. 109편의 응모작을 나누어 읽고 함께 읽을 만한 작품 7편을 골랐고, 편차가 컸던 전년에 비해 고루 뛰어난 작품들이었기에 수상작을 선정하기 위한 열띤 토론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2회의 대상은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 『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등을 통해 관습적인 상상력에서 벗어나 독자적이고도 인상 깊은 동시 세계를 펼쳐 온 시인 김륭에게로 돌아갔다. 수상작 『엄마의 법칙』에서는 한층 무르익은 시인 특유의 기발한 상상은 물론, 공감을 기반으로 그린 여러 존재의 내면들이 자연스럽게 깃들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심사위원 권오삼은 동화적 서사가 있는 작품, 일상을 동심적인 익살로 풀어낸 작품, 대상을 개성적인 관점으로 표현한 작품 등 시적 묘사의 범주가 넓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고, 이재복은 날개를 단 듯 여기 현실의 세계와 저기 상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언어적 형식에 주목했다. 안도현은 수상작을 두고 “앞으로 우리 동시가 나아가야 할 어떤 지점을 예고하는 것 같아 반가웠다.”는 뜻 깊은 소감을 밝혔다.
날개를 달고 존재와 존재의 숨겨진 내면을 연결하는 언어
시인 김륭은 지금 동시단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작가 중 하나이다. 시인은 전작들에서 ‘시골 할머니가 입고 있던 빨강내복처럼 몸에 착 달라붙어 있는 관습적인(?) 상상력에서 조금이라도 멀리 달아나 보고 싶었다. 울퉁불퉁 이야기가 있는 동시를 쓰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시인은 그 바람을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2009, 문학동네) 『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2012, 문학동네)『별에 다녀오겠습니다』(2014, 창비) 등을 펴내며 꾸준히 그리고 분명히, 스스로 증명해 왔다. 그리고 그 발걸음은 『엄마의 법칙』에 이르러 마침내 괄목할 만한 지점에 도달하였다. 이번 동시집을 통해 드러나는 그의 시 세계를 받치는 두 축은 평론가 이재복의 표현대로 ‘경계를 넘나드는 날개 달린 언어’의 반짝거림과, 공동체가 사라진 시대의 아픔을 시인만의 방식으로 그러모아 구축한, 단단한 서사가 주는 울림이다.
사자에게 엄마가 곁에 있었다면
살찐 너구리는 통통 무사했을지 몰라.
엄마, 저거 먹는 거야?
—먹을 순 있지만 너구리 엄마가 얼마나 슬프겠니.
악어에게 엄마가 곁에 있었다면
어린 누는 무사히 강을 건넜을지 몰라.
엄마, 저거 먹는 거야?
—먹을 순 있지만 누 엄마가 얼마나 울겠니.
_「엄마의 법칙」 전문
간결한 문답 형식의 시편에서 가장 먼저 읽히는 기분은 귀여운 유머다. 아이의 천진한 질문에 짐짓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러나 한 호흡을 두고 시를 음미해 보면 이내 역시다 싶은 감탄이 몰려온다. 통통한 너구리를 두고 너구리 엄마의 심정을 헤아리게만 되는, 새끼 둔 엄마 사자로서의 웃지 못할 사연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이다.
나는 지렁이가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꽥꽥거리는 오리보다 더 큰 목소리로, 흙을 뚫고 나오지 못한 씨앗의 아픔을 전하기 위해 나는 지렁이가 구둣발 소리를 낸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잠든 밤에야 퇴근하고 돌아오는 옆집 아저씨처럼 뚜벅뚜벅,
꽃으로 피어나지 못한 씨앗들의 슬픔을 전하기 위해 지렁이는 꾸불꾸불 온몸으로 편지를 썼지만 아무도 읽어 주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눈물겨운 그 마음을 모두에게 거절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아팠을까요?
나는 울먹울먹 지렁이가 할 수 없이 개미들을 불러 모았다고 생각합니다. 햇빛 한 번 보지 못한 씨앗들의 무덤을 만들어 주기 위해 개미들에게 온몸을 바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지렁이가 하늘에 잠자리들의 길을 낸다고 생각합니다.
깜깜한 땅속에 웅크린 씨앗들의 말을 여의주처럼 물고, 지렁이는 나비들의 꿈속에도 잠시 들렀다 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징그럽다며 얼굴을 찌푸리겠지만 나는 지렁이에게 우산을 빌려 줍니다. 저만치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지렁이가 보입니다.
노란 우산이 참 잘 어울립니다.
_「지렁이는 우산을 쓰고」 전문
랩이라고 할까, 독경이라고 할까, 글자들이 만들어 내는 독특한 리듬은 무중력의 공간을 유영하는 듯도 하다. 시인은 이렇게 외로운 존재의 내면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입이 없지만 간절히 전하고픈 사연이 지렁이에게는 많다. 땅속에 웅크린 수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화자는 꾸불꾸불 온몸으로 편지를 쓰고, 울먹울먹 할 수 없이 개미들을 불러모으는 지렁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에게 노란 우산을 빌려 준다. 마침내 나비의 꿈속에도 잠시 들렀다 갈 수 있게 된 지렁이의 짧은 생은, 탄생에서부터 소멸까지 온 우주를 아우르는 하나의 서사이다.
공동체가 해체되고 연대가 사라진 시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시스템 아래 모든 의무와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되고, 인간은 마침내 자신의 존재마저도 스스로 증명해 내야만 하는 처지에 처했다. 공동체의 역할은 구성원 모두를 있는 그대로 긍정해 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사라진 시대의 심각한 현실과 아픔은 아이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시가 이 시대 아이들에게 증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공감의 힘으로만 가능한 기적이다.
안경을 쓰고 똥구멍까지 들여다보는 고양이의 눈
시인은 책머리에, 같이 사는 고양이 ‘무티’의 이야기를 슬그머니 들려준다. 무티는 벽에 붙은 날벌레와 무려 참치를 주는 인간을 차별하지 않는다. 시인은 한낱 날벌레와 자신을 똑같은 눈빛으로 응시하는 무티에게 약이 올랐다가 이내 진짜를 꿰뚫어보는 무티의 심안을 깨닫는다. 그리고 무티의 안경을 빌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밤새 하늘로 머리를 밀어 올리다 꽁, 달에 머리를 찧은 해바라기, 깜빡 늦잠을 자는 바람에 기차 꼬리에 매달려 새털구름이 된 오리, 팥이나 좁쌀은 생각도 못 할 질문을 세상 바깥으로 던져야만 하는 콩, 신발 가게에서는 팔지 않는 신발.
무티의 눈으로 발견하여 『엄마의 법칙』 안에 담아 놓은 ‘존재’들의 면면이다. 죽은 비유를 벗고 날개 달린 언어로 다시 태어난 이야기들은 빠르거나 느리거나, 작거나 크거나, 각자의 모습 각자의 속도 그대로 책장 사이를 날아다니며 노래한다.
화가 노인경의 풍부한 감성이 담긴 그림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동시집에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즐겁다는 노인경의 그림은 그 노래의 정점을 그대로 붙잡아 종이 위에 올려놓은 듯 시와 조응한다. 2012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선정에 이어 2013년 브라티슬라바 국제원화전시회 그랑프리 수상까지, 세계적 쾌거를 올리고 있는 화가는 유머러스한 캐릭터와 색연필, 수채를 사용한 맑은 표현을 절묘하게 버무려 냈다. 섬세하고 예민한 화가의 성정이 그대로 담긴 세련된 표현이 시의 품격을 한 차원 돋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