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십 년, 여전히 당대성의 한 중심에 서 있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1996년 제1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김영하’라는 비범하고 충격적인 신예의 탄생을 알린, 그야말로 ‘문제작’이었다. 매혹적인 죽음의 미학을 탁월하게 형상화한 이 작품이 출간 이후 쇄를 거듭하여 독자를 만나는 동안 한국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리라 기대했던 신예작가 김영하는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대형 작가로, 펴내는 작품마다 독자들의 사랑과 관심을 한몸에 받는 인기 작가로 떠올랐다. 독자들과 평단의 기대를 모두 충족시키며 제 자리를 넓혀간 것이다.
햇수로 십 년 만에 새 장정으로 선보이게 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는 문학평론가 류보선의 새로운 해설이 수록되어 있다. 이 글에서 류보선은 왜 우리가 이 작품을 새롭게 읽어야 하는지를 간단하고 명료하게 들려준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다시 읽는 일은 대단히 흥미진진한 일이다. 그것은 곧 뛰어난 명편의 미적 구조를 밝히는 일이자 한 문제적인 작가의 기원을 읽어내는 일이며 동시에 한국문학사에 등재된 새로운 계보의 발생론적 기원을 탐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그 동안 한국문학이라는 규범성에 의해 가려져 있던 끓어넘치는 수많은 실재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집중적으로 텍스트화하고 있다. 해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와 더불어 비로소 한국문학의 현대의 우울한 실존에 대한 깊고 냉정한 응시를 하게 되었다고.(해설 「자살의 윤리학」에서)실제로, 십 년 전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일종의 ‘판타지’였고 ‘허구’였지만 오늘의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아직 죽음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할 듯한 초등학생부터, 굳이 자살을 선택하지 않아도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될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죽고 싶어 안달’하는 많은 사람들을 안내하는 자살 사이트들이 손만 뻗으면, 검색키 하나만 누르면 곳곳에서 튀어나와 우리를 ‘도와주고’ 있지 않은가.
이 글을 보는 사람들 모두 일생에 한 번쯤은 유디트와 미미처럼 마로니에 공원이나 한적한 길모퉁이에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아무 예고 없이 다가가 물어볼 것이다. 멀리 왔는데도 아무것도 변한 게 없지 않느냐고. 또는, 휴식을 원하지 않느냐고. 그때 내 손을 잡고 따라오라. 그럴 자신이 없는 자들은 절대 뒤돌아보지 말 일이다. 고통스럽고 무료하더라도 그대들 갈 길을 가라.(본문 161쪽)* 1판 1쇄 | 1996년 8월 20일 / 1판 21쇄 | 2004년 12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