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하고 기발한 만화적 상상력
이 작가의 재능은 탁월한 미끄러지기에 있는 듯하다. 판타지인가 싶으면 풍자로 가고, 풍자인가 싶으면 다시 냉소로 간다. 냉소인가 하면 냉소의 건너편에 가서 블랙코미디가 된다. 그 블랙코미디는 또 그리 코미디가 아니다. 이 작가의 탁월한 질주와 미끄럼 타기가 어떤 새로운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줄지 한번 기대해보고자 한다. 도정일(문학평론가, 경희대 영문과 교수)
지진아 초등학생인 ‘나’는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나머지공부를 하던 중, 도색잡지를 보다가 선생님에게 들킨다. 부모를 모셔오라는 엄명이 떨어지자, 나는 절망에 빠져 투신자살을 결심한다. 그래도 ‘도색잡지를 보다가 들켜서 죽었다’는 손가락질은 받기 싫으니까. (당시 간간이 벌어졌던 사건들에서처럼) 슈퍼맨을 흉내내다 죽은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나는 목에 망토를 두르고, 가지고 있던 검은색 사인펜으로 가슴에 ‘S’자를 그려넣은 뒤 옥상에서 뛰어내린다. 그때 거짓말처럼 슈퍼맨이 나타나 그를 구해낸다. 그리고…… 소년은 ‘정의의 본부’가 있는 미국으로 날아간다.
예측불허의 전복적 상상력,
발랄하고 패기 있는 주제의식,
종횡무진 질주하는 입담,
당돌하고 뛰어난 문학적 개성의 탄생!
슈퍼맨의 친구(라고 주장하는)인 내가 이끌어가는 만화 같은 이 소설은 세계 유일의 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을 향해 냉소적이고도 유쾌한 방식으로 비판을 칼날을 들이민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무역기구(WTO)를 앞세운 경제통제, 세계경찰을 자임하며 미국식 정의를 강요하는 독선 등이 그 비판의 대상이 된다. 기존의 소설에서 보기 드문 이러한 묵직한 주제를, 작가는 만화영화의 주인공들을 차용하고 현실과 공상세계의 구분이 모호한 무대를 설정한 뒤, 그 회색지대를 배경으로 독특한 상상력을 발휘하며 소설양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워싱턴, 정의의 본부에 도착한 소년은 배트맨과 로빈, 원더우먼, 아쿠아맨을 만난다. 이들은 모두 ‘슈퍼특공대’의 일원들. 소년은 로빈의 두통약 심부름, 원더우먼의 생리대 심부름 등 이들의 잔심부름이나 하면서도 영웅들과 함께 지구의 정의를 지키게 된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바나나맨이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정식 대원이 된다. 하지만 ‘겉은 노랗지만 정신은 하얀’ 바나나맨은 결코 백인사회에 편입되지 못한다. 슈퍼특공대의 들러리가 되어 폼이나 재는 것이 바나나맨의 운명인 것이다. ……어느 날 눈을 뜨니 ‘나’는 정신병원에 누워 있다. 미국시민권은 있지만 지문 조회상 미국인이 아닌 나는 그곳에서 짧지 않은 치료를 받은 후 한국으로 돌려보내진다. 그리고, 정의의 본부 시절 배운 영어 덕분에 잘나가는 학원강사가 된다. 물론 아내도 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슈퍼특공대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과연, 우리의 상상력은 어디까지가 온전히 우리의 것인가!
내 이름은 바나나맨.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아쿠아맨과 함께
이 지구를 지키는 슈퍼특공대의 일원이다.
정의를 모르는 나쁜 무리들, 싸워 무찌른다.
슈퍼특공대! - - 본문에서
발상의 참신함과 그 발상을 독특한 서사구조로 풀어내는 능력은, 작가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게 한다. 이 뛰어난 상상력의 소유자가 다음엔 또 어떤 이야기로 독자들을 놀라게 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지구영웅전설』은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가, 라는 매우 묵직한 주제를 만화라는 대단히 가벼운 양식을 차용해 천착한 작품이다.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아쿠아맨 등 미국이 창조한 지구적 영웅들의 활약상을 뒤집어 봄으로써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가속화되고 있는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의 실체를 폭로하고 그 문제점을 고발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자칫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도 있는 이러한 내용을 참을 수 없는 만화의 가벼움에 실어 전달함으로써 한 편의 유쾌한 소설로 만드는 데 성공하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종횡무진 계속되는 작가의 입담도 어지간하고 현실을 비틀어보는 시선도 예리함을 잃지 않고 있다. 남진우(시인, 문학평론가)
이 소설 『지구영웅전설』은 일단 재미있다. 그 재미는 우선 경쾌한 입심과 다양한 지식, 그리고 세상을 뒤집어 보는 시선으로부터 나온다. 단선적인 전개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단숨에 읽을 수 있는 것은 그 재미의 무기들을 잘 활용하는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더구나 그 재미를 가지고 겨냥하는 문제의식도 단순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향유하는 문화의 배후에 어떤 음모가 도사리고 있지는 않은가, 세계문화를 조정하려는 자본주의는 어떤 속성을 지니고 있는가, 인종적 열등의식은 미국식 제국주의에 의해 어떻게 조성되는가 등등, 흥미로운 질문들이 던져지고 있는 것이다. 이인성(소설가, 서울대 불문과 교수)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내 이름은 바나나맨.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아쿠아맨과 함께
이 지구를 지키는 슈퍼특공대의 일원이다.
정의를 모르는 나쁜 무리들, 싸워 무찌른다.
슈퍼특공대! - - 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