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이 강한 소설을 만나면 금방 마음이 무너지게 마련이다.
읽고 나를 매료시키는 소설. 그거면 된다._윤성희(소설가)
섬세하고 정확한 문장 구사력, 높은 완성도, 따뜻함과 구체성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극단과 혐오, 세대와 성별 간 갈등이 극에 치닫고 있는 이 시대에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따뜻함과 진정성의 힘은 타자를 이해하고 시대의 어둠을 걷어내는 데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을 거라 의심치 않는다._심사평(김진경, 유영진, 윤성희, 이금이)
제7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타자에 대한 이해를 날실로 삼고, 대중문화를 씨실로 삼은 유쾌한 드라마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이 7회를 맞았다. 첫 수상작인 『불량 가족 레시피』부터 지난해 『테오도루 24번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 읽을거리를 제공해온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공모전이 이번 수상작으로 선정한 작품은 『나의 슈퍼히어로 뽑기맨』.
허리를 다쳐 실직한 뒤 뽑기왕을 꿈꾸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웃픈’ 뽑기 역정을 함께하는 중학생 딸의 이야기가 중심축이다. 가족 문제와 노인과 같은 타자에 대한 이해를 날실로 삼고, 뽑기 기계, 힙합, 일본 만화 『원피스』와 같은 대중문화를 씨실로 삼아 한 편의 유쾌한 드라마를 그려 냈다는 평을 받았다.
환영합니다. 당신은 이제 뽑기 월드의 일원이 되셨습니다!
“갖고 싶은 거 없어? 말만 해. 다 뽑아 줄 테니까.”
예상치 못한 허리 질병과 실직으로 한껏 위축되어 지내는 아빠. 앉아서 채 30분도 버티지 못하는 허리 통증 때문에 일상조차 맘껏 누릴 수 없게 되자 유통기한 지난 채소처럼 시들시들해진다. 일과는 오로지 집안일과 재활운동. 그 고단한 시간을 견디게 하는 힘은 만화 『원피스』와 힙합 음악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딸 진서와 함께 동네 편의점 앞에서 운명처럼 뽑기 기계를 만나게 된다. 기계 안에는 진서가 흠모해 마지않는 원피스 캐릭터 피겨가 있었다. 한 판 한 판이 아슬아슬하지만, 목표물을 뽑아낼 때의 짜릿함은 청량음료 버금가는 맛. 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재미 삼아 해본 것이지만, 급기야 아빠는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불태우게 된다.
“난 뽑기왕이 될 거야!”
나는 뽑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정확한 설계, 극강의 손기술, 무적파워 뽑기맨의 등장!
꿈틀대는 패왕의 의지 덕에, 진서의 책상은 책 대신 뽑기 기계에서 뽑은 피겨들의 진열장이 되어 가고, 식탁 역시 엄마의 묵인하에 뽑기에서 얻은 소형가전제품들이 점령한다. 그러나 뽑기 기계에 진열된 모든 상품이 아빠의 공략 앞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빠와 진서가 고전하고 있을 때, 은둔 고수의 포스를 풍기는 노인이 등장해 ‘숄더어택’이라는 비기를 전수해 준다. 이들은 곧 의기투합, 3인조 완전체로 거듭나며 뽑기 원정도 마다않는다.
“내가 목표물을 정하면 아빠는 봉을 날리고 영감은 어깨로 기계를 마구 친다…….”
_본문 중에서
고산자 김정호가 된 양 곳곳을 돌아다니며 뽑기 기계 지도를 제작하고, 뽑기 기술과 기계의 특성을 연구하고, 아프리카TV에 뽑기 방송을 개설하는 등 아빠에게 뽑기는 더 이상 취미가 아닌 삶 그 자체가 된다. 진서의 친구들도 아빠를 스승으로 받들고 싶어 하고, 행인들은 국민MC 유재석 바라보듯 아빠의 아프리카TV 촬영을 즐긴다. 열광과 환호의 한가운데에로 난관은 눈치 없이 찾아드는 법. 뽑기왕이 되리라 공언했던 초짜 히어로 앞에, 온몸을 뽑기로 뽑은 옷과 액세서리로 휘두른 한 수 위의 강자가 나타나는데.
다들 유리귀신이라고 불렀어요. 뽑기 기계 사장님들에겐 공공의 적이자, 우리들에겐 거의 영웅이셨죠. 그분의 손길이 닿은 기계는 거의 다 털린다고 봐야 해요. 게임을 끝낸 후, 텅 빈 기계를 뒤로하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의 옆모습은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여느 슈퍼히어로 못지않았어요._본문 중에서
설마 이 사람이 ‘뽑기머’들 사이에서 전설로 통하는 유리귀신일까? 그러나 난관을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뽑기 정신이라 여기는 아빠는, 이 한 수 위 강자와 결전을 펼치기로 하는데.
아빠가 무슨 슈퍼맨이야? 엄마도 지키고, 나도 지키고, 다 지키게.
난 내가 지킬 거야.
『나의 슈퍼히어로 뽑기맨』은 열다섯 살 화자의 눈으로 본 아빠와 절망의 한판 배틀이다. 슈퍼히어로를 꿈꾸는 아빠는 슈퍼하게 평범한, 결코 완벽하지 않은 보통 사람이다. 그러나 실의 속에서 자기 자신을 회복해 가며 반짝임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마블 코믹스 히어로 못지않다. 뭐든 대충대충 하지만 뽑기에 있어서만큼은 죽을힘을 다하는 황달수 영감, 삶과 분투하는 아빠를 묵묵히 지켜보는 엄마와, 황달수 영감의 첫사랑인 분식집 할머니 역시 그렇다. 진서로 하여금 점점 이성의 감정을 품게 만드는 남자사람친구 시원이나 뽑기로 하나 되는 생면부지의 사람들과의 인연은 덤.
뽑기, 피겨, 힙합, 아프리카 TV, 일본 만화 『원피스』 등의 서브컬처와 대중문화 요소가 본격적으로 녹아 있고 가족과 이웃의 연대가 나란히 달리고 있다. 무엇보다 활극처럼 펼쳐지는 뽑기의 세계가 흥미롭다.
아빠는 실직한 뒤 힙합을 듣고, 만화책과 드라마를 보고, 중2인 딸 진서와 소통하며 그동안 누릴 수 없었던 여유를 즐기기 시작한다. 뽑기에 탐닉하며 그 세계를 평정해가는 것도 진서가 아니라 아빠다. 그 모습을 제대로 그린 덕에 아빠는 단순히 무책임하고 철없는 가장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으로 회복돼 가는 한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또한 여느 아빠들과는 다른 아빠와의 동행을 통해 진서는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일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을 겪으며 삶의 폭을 한 뼘 넓힌다.
_이금이(아동청소년문학가)
뽑기맨 작가의 순수 리얼 스토리
우광훈 작가는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로 등단한 뒤, 『플리머스에서의 즐거운 건맨 생활』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고, 201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로 당선된 이력의 작가다. 그런 그가 오랜 침묵을 깨고 독자들을 찾아왔다. 그것도 ‘뽑기’라는 소재로. 2013년 발병한 원인 모를 허리 통증으로, 앉아서 20분 이상 버틸 수 없었던 그에게 새로운 활력을 찾아준 것은 뽑기였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그려낼 수 없는 뽑기의 세계가 그가 살고 있는 대구라는 공간과 그가 만난 사람들과 어우러져 생동감 있게 드러난 것은 그 덕분이다. ‘통증을 줄일 수 있는 의자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었지만’ 행복하게 자기 고백하듯 소설을 써내려 간 작가의 마지막 당부는 이것.
여러분은 나처럼 뽑기에 빠지지 마시기를. 그렇게 아프지 마시기를……._작가 후기
• 심사평
이 소설에서 그 어느 것도 자기 이름이 없는 것은 없다. 머리가 아니라 두 눈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을 투명하게 관찰한 결과물로서의 세계와 인물이 여기 있다. 가족 문제와 노인과 같은 타자에 대한 이해를 날실로 삼고, 뽑기 기계, 힙합, 일본 만화 ‘원피스’와 같은 대중문화를 씨실로 삼아 한 편의 유쾌한 드라마를 그려 냈다. 극단적 언어와 타자에 대한 혐오로 범벅이 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를 짚어 주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_유영진(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마치 대구 어디에 가면 인형을 뽑는 부녀를 곧 만날 것처럼 대구라는 지리적 공간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안정적인 문장과 디테일 때문에 이 소설에 신뢰가 갔다. 디테일이 강한 소설을 만나면 금방 마음이 무너지게 마련이다. 읽고 나를 매료시키는 소설. 그거면 된다._윤성희(소설가)
아빠의 실직으로 인해 변모되거나 해체에까지 이르는 가족의 이야기는 문학뿐 아니라 도처에 널려 있다. 실직한 가장은 대부분 그 사실을 가족에게 숨긴 채, 다른 일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그 과정에서 처절한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 소설의 아빠는 그동안 보아온 가장들과 많이 다르다. 그 점이 이 작품에서 빛나는 부분이다. 어른이 주인공임에도 청소년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요소와 장치들을 적절히 배치해 청소년 독자와의 거리를 좁힌 점이 돋보이며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묘사가 강점이다._이금이(아동청소년문학가)
문학은 본질적으로 증여관계를 중심에 두기 때문에 남녀 간의 사랑이나 가족 문제를 많이 다룬다. 청소년소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문학상 심사를 할 때마다 기대하게 되는 것은 현대 가족 담론의 심도에 걸맞은 언어의 심도이다. 『나의 슈퍼히어로 뽑기맨』의 섬세하게 파고드는 언어는 공식적 담론을 넘어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촉수를 가지고 있었다._김진경(시인,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