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외침 속에 담긴 너와 나의 진짜 마음
그동안 시와 동시, 청소년시는 물론 『황소바람』 『똥방패』 등의 유아 대상 그림책을 통해서 폭넓은 연령의 독자와 만나 온 이정록 시인의 새 그림책이다. 단호한 한마디를 제목으로 삼은 이 그림책은 ‘아니야’기期를 지나는 무작정 귀여운 꼬마, 혹은 ‘미운 네 살’로 뭉뚱그려져 속상한 오해를 자꾸만 받는 아이들의 진짜 마음을 공감해 준다.
『덩쿵따 소리 씨앗』 『우리 집에 사는 신들』 등의 그림책을 통해 힘 있는 필력을 보여 주었던 화가는, 자유분방한 콜라주로 등장인물들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표현하면서도 구석구석 재미있는 요소를 빼놓지 않고 차려 시원하게 펼친다. 글과 그림이 유쾌하게 주제를 주고받으며, 단전에 힘을 모아 외치는 『아니야!』에 담긴 사연으로 들어가 보자.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무렇게나 말하지 마!
알밤같이 땡글땡글 야무진 아이가 책장을 열고 등장해 선언한다. “아니야. 진짜 진짜 아니야.” 열두 띠 동물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도 같은 마음이다. 옛날부터 무심결에 그냥 해 온 말들, 겉모습만 보고 했던 짐작, 칭찬을 가장한 평가 뒤에서 얼마나 괴로웠던가. 쥐구멍에 볕 드는 날이란 쥐네 집 무너진 날이고,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뛰어내리고 싶은 날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소나기도 타넘지 못하는 우람한 소의 등줄기, 귀를 붙들려 마술사 모자에서 끌어올려지고 있는 토끼의 심통 난 표정, 바람을 느끼며 맘껏 달리는 말의 행복한 콧김, 페이지마다 다양한 볼거리와 생각거리가 독자의 눈과 손을 멈추게 한다. 저마다의 높낮이로 퍼져 나가는 “아니야!”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울퉁불퉁한 고집이 아니라 막 발아하기 시작하는 자기 긍정이다. 안쪽과 바깥쪽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기 시작하는 작은 마음들의 존재감은 씨앗에서 여린 싹이 터져나오는 순간처럼 뭉클하고 선명하다.
동그란 사과 속에 단단하게 여물고 있는 뾰족한 씨앗
『아니야!』는 화가가 ‘오리’라는 새 이름으로 선보이는 첫 번째 그림책이다. 이번에 그가 창조한 유일무이한 캐릭터는 “아니야!”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열두 동물 각자의 이야기에 숨겨져 있는 자아를 낱낱이 발견해 재기발랄한 화면으로 구성한 그림은 한 장 한 장이 한 세계를 이룬다. 너무 억울해서 왕 고함을 지르고 싶다는 얼굴도, 딱 정말 그렇구나 싶어서 웃음이 팡 터지게 하는 모습도,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아름다운 마음도 모두 고스란히 아이들의 그것이다. 색채를 제한해 많은 요소를 부드럽게 묶어 낸 능숙한 솜씨와 모두의 마음을 조금씩 쌓아 마침내 화면을 뚫고 나가는 힘으로 폭발시키는 장면은 오해받던 답답한 존재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 줄 것이다.
‘아니야’라는 뿔난 말이 ‘그래’라는 둥근 세상을 낳는다.
동그란 사과 속에는, 뾰족한 씨앗이 단단하게 여물고 있다. _이정록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나의 세계가 시작됩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한, 넘어져도 다시 두 발로 딛고 일어날 거예요. _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