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출간한 '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은 기존에 출간된 '고우영 삼국지'에
저자의 둘째 아들인 고성언님이 채색을 입혀 재탄생되었다.
또한 주독자층인 중장년층을 위해 판형을 대폭 키우고
손글씨 대사와 내레이션을 서체로 대체하여 읽기 편하게 만들었다.
고성언님은 대학시절 미술을 전공해 저자 생전에 원고 작업시 어시스턴트로도 활약한
숨은 조력자였고 저자 사후에는 수많은 판권을 관리해오고 있다.
이번 출간은 예술계에서 보기 드문, 아버지와 아들 2대에 걸친 작업이라는 점에서도 출간 의의가 크다.
본작의 신문 연재가 1978년에 시작되었으니 장장 반세기의 세월이 흐른 셈인데,
한 작품이 이토록 꾸준한 사랑을 받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소설은 글을 현대적인 단어와 문법에 맞춰 재구성하면 되지만 그림은 수정이 불가하다.
그래서 그림에 의해 1차적으로 표현되는 만화는 그 특성상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작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시대를 초월하는 저자만의 강력한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나라에 '삼국지'의 여러 버전이 존재하지만 그 많고 많은 '삼국지' 중에
가장 독특하면서 지금의 여러 '삼국지'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이 만화 '고우영 삼국지'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고우영 삼국지'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비틀기의 원조'라고 정의하고 싶다.
굳이 만화 장르로 한정 짓지 않더라도 본작은 '삼국지'의 현대적 재해석을 이룬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고전의 위력 앞에서 그것을 자기만의 작품으로 재탄생시키려면 얼마나 깊은 소양과 재능이 필요한지 감히 상상되지 않는데,
그런 데에는 저자가 나고자란 환경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저자는 1938년 만주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해방 후 구사일생으로 월남해 한국에서 여생을 보냈다(2005년 별세).
중국, 일본, 한국이라는 국제적 환경을 두루 거치며 문학적 토양을 범아시아적인 것으로 흡수하지 않았을까.
중국도, 일본도, 한국의 것도 아닌 경계선에 있는 그 무엇을 자신의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것으로 새롭게 탄생시킨 것이리라.
그동안 '삼국지'에서는 조조만 간웅으로 표현되었는데 저자는 유비마저 음흉하고 능글 맞은 '쬬다'로 묘사했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욕망을 가감없이 드러내며 기존의 유비 대 조조의 전통적 선악구도를 완전히 해제해버린 것이다.
당시 원작이라 할 수 있는 '삼국지연의'의 제대로 된 번역본이 국내에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대를 멀찍이 앞서간
실로 놀라운 재해석이 아닐 수 없다. 그 밖에도 저자 특유의 감각과 기발한 해석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제갈량이 여자 같은 외모를 하고 있어 제갈양으로 바꿔버리는가 하면, 초선과 왕윤의 관계를 사모의 관계로 발전시키고,
유비가 아두를 내던져 모자라게 되었다는 설정, 제갈양이 관우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껴 제거했다는 등의 설정은 모두 저자가 만들어낸 픽션이다.
이렇듯 기본적으로 '고우영 삼국지'는 원작이라 할 수 있는 '삼국지연의'와 다른 부분이 많으니
'고우영 삼국지'를 '삼국지연의'와 같은 내용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물론 '삼국지연의' 자체가 역사적 사실이라는 뼈대에 허구라는 살을 붙여 만들어진
작품인 만큼 이미 사실과 다른 부분이 수두룩하지만, 수많은 세대와 세월을 거치며
서민들의 욕망과 애환이 덧붙여지고 벗기워져 현재에 이르렀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의 시점에 맞게 얼마든지 변주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본작을 120%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원작인 '삼국지연의'의 내용을 안 다음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그래야 어떤 부분을 다르게 해석했는지 제대로 알고 즐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