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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나온 책 Book

절박한 삶 탈북 여성 다섯 명이 말하는 도망쳐온 생, 다시 꾸려가는 생

저자
전주람, 곽상인
출판사
글항아리
발행일
2021-01-18
사양
408쪽 | 140*200 | 무선
ISBN
978-89-6735-853-2 03900
분야
역사
정가
19,000원
탈북한 여성들의 생애사를 기록한다
그들이 남한으로 오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인가
도망쳐온 삶을 지탱하는 힘은 무엇인가

이름을 바꿔가며 국경을 건너고
가족과 생이별하며 남한에 정착한 다섯 여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마음속 힘을 묻다


북한에 관한 이야기는 학계 연구와 미디어 기사 속에 가득하지만, 북한에서 건너온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는 과연 어디까지 다루어졌을까. 분단 75주년을 넘긴 지금 북한이라는 주제는 이미 피로감을 줄 만큼 소진된 듯 보이지만 아직도 우리는 모르는 것이 많다. 특히 점점 늘어나고 있는 북한 이주민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작업은 충분히 진척되지 못했다. 북한과 관련된 담론은 하나같이 우리의 일상과는 멀리 떨어져 정치 영역이나 학문 영역에 국한되어 있었다.
이 책은 다섯 명의 탈북 여성을 만나 그들의 삶을 묻는 인터뷰집이다. 두 저자는 북한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연구자들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공유되기를 원한다면서, “대중과 담론을 형성해서 이들의 삶을 좀더 가까이에서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이 책을 펴냈다. 연구자 대 연구 대상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그들을 만나고, 날것의 목소리를 우리에게 전하는 것이다.
현재 보험 외판원인 북한 여성이 저자에게 보험을 들라기도 하고, 어떤 인터뷰이는 딸아이에게 주고 싶어 저자의 크레파스를 탐내기도 하며, 너무 외로워서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을 털어놓는 이도 있다. 이렇게 이 책에서는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게다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각보다는 그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사람으로서의 시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덕에, 이 책은 마치 단편소설처럼 한 편의 긴 대화가 되었다. 그 대화에서 우리는 이들이 어떤 힘을 바탕으로 국경을 넘어 이 땅에 정착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징어를 머리에 이고 두만강을 건너다

“그 당시 장마철이라 강이 불어서 그런 상태에서 발을 헛디뎠단 말이에요. 그다음에는 물을 꼴딱꼴딱 먹거나 넘어지면 죽어요. 옷은 머리 위에 이고, 오징어, 마른오징어 머리에 이고. 내가 오징어를 좋아하거든요. 중국에 나가면 오징어가 비싸다는 생각에 내가 오징어를 달라고 했지.”(이수린)

이수린씨는 1998년에 중국으로 건너가 2004년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오징어를 이고 두만강을 건넌 이야기를 읽으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기어코 마른 오징어를 챙겨야만 했던 건 어리석음보다는 타고난 생활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탈북 도중 발각되어 14개월 동안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환상과 환청을 겪을 만큼 혹독했던 시간을 버티게 해준 건 얼음을 팔아 쌀을 넣어준 자식들의 정성이었다.
백장원씨는 탈북 도중 딸과 생이별했다. 중국에서 공안에 잡혀 노동단련대에 들어가기도 했던 그는 남한에서 받은 신분증을 남달리 소중하게 여긴다. 그에게 있어 신분증은 자유와 안전의 상징인 것이다. 북한에서 여군으로 복무했던 원민형씨는 스물넷의 나이로 중국 국경을 넘었다. 그는 브로커 인신매매를 당해 현지에서 결혼했고, 이름을 바꿔가며 살다가 십수 년 만에 남한 땅을 밟았다.
각자 다른 경험과 경로를 거쳤지만,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생사를 넘나들며 얻은 강인함이다. 나라는 존재가 먼저 있고서야 가족 등 타인을 도울 수 있다는 백장원씨,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이상 세상의 행복함은 없다는 원민형씨, 내가 소중하기 때문에 가족도 있다고 말하는 마현미씨의 이야기는, 이들이 새 터전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발견했다는 걸 보여준다. 이들에게 탈북의 경험은 체제든 가족이든 온전히 나를 위한 삶을 살지 못하게 했던 것들에서 벗어나 굳은 자아를 찾는 여정이었던 것이다.


참대처럼 굳세게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기에 대해서, 내가 내 자신에 대해서 자존심이 없다면 누가 나를 좋게 보겠나, 남들이 나를 좋게 생각 안 한다. 내가 내 자신을 항상 자존심 있게 생각해야지. 내가 나한테 정말 자존심이라는 거까지 없으면 내 몸에서 남는 게 뭐겠냐.”(원민형)

특히 여군 출신인 원민형씨는 그 강인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중국에 있던 시절 그는 메신저 프로필에 ‘쯔신더워’라는 말을 적어뒀다. 한국말로 하면 ‘자존심이 넘치는 나’라는 뜻이다. 단순히 원민형씨의 성격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린 딸아이를 데리고 이름을 바꿔가며 국경을 넘어온 그의 삶에는 단단해지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가득했다.
이런 면모는 다른 탈북 여성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마현미씨는 2005년 남한에 온 뒤로 10년 동안 식당과 웨딩홀에서 일했다. 5년 차 되던 해에는 ‘나는 이제야 다섯 살’이라는 마음으로 살았다고 한다. 지금 버티지 못한다면 앞으로 남은 날들을 버틸 수 없을 거라는, 악착같은 자세였다. 이수린씨는 ‘내가 상상하는 것을 실천으로 옮기면 꼭 현실이 된다’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나가고 있다. 탈북 도중 수감되었던 구치소에서 매일같이 자유를 상상하다가 실제로 새 삶을 얻었다는 경험이, 그에게 있어 강한 추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남한 사회의 편견 어린 시선 탓도 크다. 다섯 명 모두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북한 억양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또한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신뢰를 받지 못하거나 얕보이고 적대감을 느낀 경우도 많았다. 우호적이라고 할 수 없는 이런 환경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되었고, 살아남기 위해서 악착같이 강해져야만 했을 것이다. 이들의 강인함은 이주민들을 환대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비치는 거울이다.


엄마라는 정체성

“삶 자체? 에너지죠. 나한테는 우리 딸이 에너지다 생각해요. 그 에너지 중에서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이유라고 봤거든요.”(김미숙)

함께 탈북한 자식들에 대한 애정은 당연히 각별하다. 이수린씨는 자기 새끼를 위해 몸의 모든 것을 뿜어내고 말라 죽는 거미에 자신을 빗댄다. 원민형씨는 자신이 참대처럼 곧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바로 딸에게서 나온다고 말한다. 백장원씨는 생이별한 딸 때문에 절을 찾아가 불상 앞에서 펑펑 울곤 했고, 마현미씨는 지금도 북한에 있는 아들을 위해 꼬박꼬박 돈을 벌어 부쳐주고 있다.
특히 김미숙씨는 딸이야말로 자신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에너지라고 말한다. 그는 어린 딸을 남한으로 데려와 함께 성장했다. 딸이 해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공부를 했고, 이제는 그 딸이 대학생이 되어 엄마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런 기반 없이 정착해야 했던 이 땅에서 모녀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자라났고, 지금도 계속 그렇게 자라는 중일 것이다.
‘엄마로서의 정체성’은 이들을 한정짓는다기보다 굳게 지탱해주고 있다. 이들에게 자식은 단순한 돌봄, 부양의 대상이 아니라 동료이자 동력이며 희망이다. 이 정도 키웠으면 저들 알아서 살아야 한다며 자립심을 요구하는 대목도 있지만, 그렇게 자식들이 자라기까지 겪었을 희로애락이야말로 이들의 생애를 채우는 커다란 부분일 것이다.


3인칭이 아니라 1인칭, 연구가 아니라 대화

“우리는 여기서 관객을 정면으로 향한 인터뷰이의 얼굴뿐 아니라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저자의 옆모습을 볼 수 있다. (…)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의 전환이라고 할 만한 이런 선택을 통해 저자는 인터뷰이 한 명 한 명을 소설의 주인공처럼 생생하게 부각시키는 데 성공한다.”(김현경 추천사)

인류학자 김현경의 추천사는 이 책을 정확하게 묘사한다. 저자는 자기에게 보험을 영업하는 이수린씨 때문에 적잖이 당황하기도 하고, 자전거도 잘 못 타면서 어떻게 교수가 되었냐는 원민형씨의 농담을 얄미워하기도 한다. 탈북 여성들의 이야기 구석구석에 자신만의 주석을 달기도 하며, 혹은 여러 차례 인터뷰를 진행했음에도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거리 감각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요소들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인터뷰이들을 바라보는 인터뷰어 자신의 모습이다.
드러나지 않는 관찰자, 중립적인 연구자라는 환상은 인터뷰이들을 대상화하기 쉽다. 어떤 시선도 완전히 중립적이고 객관적일 수는 없다. 이 책은 김현경의 말마따나,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터뷰이들의 모습뿐 아니라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저자의 옆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그래서 책은 조사나 연구가 아니라 대화가 될 수 있었다. 저자는 인터뷰이들을 바라보는 스스로의 모습 또한 숨기지 않고 드러내놓음으로써, 이전에는 없었던 방식으로 그들에게 말을 건다.
이는 ‘대중과 담론을 형성해서 이들의 삶을 좀더 가까이에서 살펴보는’ 것, 즉 이 책의 애초 목적과도 상통한다. 여기서 탈북 여성들은 하나하나의 생생한 인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들은 외따로 떨어져 있는 특별한 타인이 아니다. 탈북민이라는 평평한 정체성이 아니라, 우리를 놀리기도 하고 아픈 이야기로 끌어들이기도 하는 입체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책을 덮고 나면 희미한 실루엣에 불과했던 이들의 모습에서 선명하고 구체적인 얼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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