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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나온 책 Book

억척의 기원 나주 여성농민 생애사

저자
최현숙
출판사
글항아리
발행일
2021-01-15
사양
352쪽 | 153*225 | 무선
ISBN
978-89-6735-856-3 03900
분야
역사
정가
18,000원
여자가 집에만 있기를 바라잖아요 다들.
근디 나는 집이 제일 싫었던 거야.
집을 나가서 내 돈을 벌어서 독립하고, 내 하고 싶은 활동을 하고
그걸 나는 더 좋아하고 더 신이 나는 거예요.

억척스런 농촌 언니들의 얽히고설킨 생애사
가난과 갈등 사이에서 피어난 주체성을 발견하다


10여 년째 노년, 중장년 여성들과 만나며 밀도 높은 구술생애사 작업을 보여온 최현숙 작가가 이번에는 나주의 두 여성농민을 찾아갔다. 이들은 작가의 전작 <할매의 탄생>의 우록리 할매들보다 한 세대 아래로, 무학無學과 시집살이, 남편의 외도 혹은 폭력과 자식들 뒤치다꺼리 등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혼 선택, 경제적 자립의 경험, 농민회 활동 등으로 좀더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 60년 남짓의 생애를 가득 채운 역경과 애증과 열정을 듣다 보면 그들이 ‘억척’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이유들은 개인사를 넘어 한국 사회가 아직 청산하지 못한 문제들과도 맞닿아 있다.
개별적 삶에 관한 심도 있는 이야기는 보편으로 통하곤 한다. 그게 구술생애사가 갖는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특히 가정 폭력, 돌봄 노동,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 등이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이 책의 내용을 ‘농촌 이야기’로만 한정할 수 없게 된다. 나주의 여성농민 김순애와 정금순은 세상과 싸워 살아남기 위해 억척스러워져야 했으며, 이 억척스러움은 그게 어떤 세상이었는지에 관한 생생한 증언이다. 그리고 그들의 세상은,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평생 억척을 떨고 살았지요

“나는 시골서 반듯한 집에, 배 안 곯는 집에 사는 게 꿈이었어요. 엄마도 그래서 나를 그런 집에 시집보낸 거고, 나도 좋았던 건데…… 뒤주 큰 집 찾았더니만 하나도 안 틀리게 그대로 된 건데, 그 집에서 종살이만 한 거지.”(김순애)

1959년생 김순애의 삶은 반은 좋고 반은 안 좋았다. 아내와 자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서 큰딸로 자랐으며, 아홉 살 때부터는 가난한 살림까지 도맡았다. 그는 아버지 때문에 자기가 독한 사람이 된 것 같다고 회고한다. 집에서 벗어나고서는 서울에서 1년간 배곯는 식모살이를 거쳐 양말 공장에서 7년간 일했다. 그 공장 시절이 평생 제일로 신나고 즐거운 때였다고 한다. 길가에서 하꼬방(판잣집) 생활을 하던 엄마에게 동네 가운데 집도 사주고, 자기 손으로 돈 벌어서 자기를 위해 썼기 때문이다.
고향에 돌아와 시집살이를 하면서부터는 다시 고생이 시작됐다. 드센 시어머니를 만나 험한 욕을 말끝마다 듣고 두드려맞기도 하는 등 구박을 받으면서도 시집 식구를 위해 농사짓고 가사노동을 했다. 남편의 외도는 서럽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한두 번이 아니었고, 심지어 시어머니가 와병 중일 때도 남편은 다른 여자를 찾곤 했다. 마음을 가누기 힘든 일이었지만, 김순애는 남편의 외도를 계기로 장사를 시작해 자립하게 된다. ‘이혼해줄래, 장사를 하게 해줄래’라고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이후 그는 순두부 백반집을 차리고 버섯장을 짓고 두부 공장을 하는 등 자기 손으로 농촌에서의 삶을 일구게 된다.
그러면서 김순애는 복잡한 마음을 가지게 됐다. 남편과 일찍 이혼하지 못한 게 한이라고 하면서도 친정 남매들의 이혼은 인정하지 못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 시어머니와 그렇게 갈등을 겪었는데도 마지막에는 정성스럽게 병수발을 들었다. 그 덕에 자신이 좋은 며느리로 기억되고 사람들 입에도 오르내린다는 사실에 고마워하기도 한다. 남편 때문에 속을 그렇게 앓았는데도 ‘잘 해봐야지’라는 생각을 남겨두고 있다. 어릴 적의 가난이 서러워 남들이 보기에도 좋은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온갖 아픔과 서러움에서 그의 열정이 나왔고, 그 힘으로 김순애의 삶 나머지 반쪽을 채울 수 있었다.


이혼과 재혼을 선택하다

“저는 어려서는 아주 순했는데, 나이 들면서 풍파에 부딪히다보니 세진 거예요. 근데도 내면에는 아직 순함이 있겠죠. 어려서 부모님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너무 갇혀서 화초처럼 약하게 자란 거지요. 그러니까 첫 남자의 사람됨도 잘 구별하지 못했고, 남자랑 잠자리만 해도 꼭 결혼해야 되는 걸로 알았고, 너무 어리석었던 거예요.”(정금순)

정금순의 어려움은 결혼 때부터 시작됐다.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회사를 다니던 그는 남편과 함께한 첫 외출부터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 무서운 마음에 누군가에게 털어놓지도 못했고, 임신해서 가족들에게 밝힌 뒤에도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되려 한 번 관계를 가졌으면 같이 살아야 한다는 당시의 시선 때문에 결혼까지 해야 했다. 남편은 임신 3개월부터 외도를 시작했고 생활과 양육에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도 않았다. 자식들에게 이혼 가정을 만들어주지 않으려는 마음에 오랫동안 이혼할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그런 결혼생활을 16년이나 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혼할 수 있었던 그는 ‘일찍 끝내지 않고 그 꼴을 당하게 해서’ 자식들에게 제일로 미안하다고 한다.
이혼하고 나서는 화장품 외판원, 피부 관리사, 세신사 등의 일을 거치며 혼자 힘으로 자식들을 부양했다. 특히 세신사 일을 하면서는 불면증에 피부 발진, 허리디스크까지 얻어 몸에 안 아픈 데가 없었다. 그래도 정금순은 그 시절이 좋았다고 회상한다. 잘못 만난 남편에 묶여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했던 때보다는, 몸이 고단하더라도 자기 힘으로 돈을 벌어 스스로와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일이 보람차고 신났다는 것이다.
자식들이 다 자라고 건강 문제로 일을 계속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재혼해 나주로 들어갔다. 새로 만난 남편은 청각장애 3급이고, 정금순과 마찬가지로 재혼이어서 전처의 딸이 한 명 있었다. 딸의 분리불안 때문에 갈등을 종종 겪는 등, 새엄마 역할은 만만찮았다. 더군다나 해본 적 없던 농사일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전남편과 살 때를 생각하면 즐거운 일이 훨씬 더 많다고 한다. 특히 친자식들에게 미안한 게 많은 그에게는 새로 생긴 딸의 의미가 각별하다.


농민회 안 했으면 이렇게 강단 있겠어요?

“동강면 여농에서 시작해서 전여농까지, 생각해보면 너무너무 즐겁고 행복했어요.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농민회 아니었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지…… 그저 식구들이랑 집에 묶여서 바글바글대다 말았을 거잖아요.”(김순애)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지금의 농촌 여성들은 자기 손으로 삶을 일구고 있는 주체다. 쌓인 한만큼 많은 열정으로 살아온 터라, 여성농민회 활동을 통해 농촌의 변혁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놀랍지 않은 일일 것이다. 특히 김순애는 제대로 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여성농민회 회장을 맡아 특유의 강단으로 한동안 농민운동을 이끈 바 있다. 정금순도 마찬가지로 여성농민회 총무로 활동하며 농촌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늦게서야 농촌에 들어왔지만, 농촌에 대한 그의 진지함과 애정은 각별하다.
농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 책이 기존의 농민운동사와 궤를 달리하는 것은, 농촌이나 농민회의 족적을 쫓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분투한 이의 사연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김순애에게 농민회 활동은 결국 사람과의 일이었다. 그는 농민회의 활동 내용보다는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 겪은 갈등을 가슴 치며 이야기로 풀어놓는다. 더군다나 그에게 농민회 활동은 열정을 분출할 수 있는 자아실현의 장이기도 했다.


열정의 소용돌이를 넘어

“한 치 앞도 모르는 삶과 스스로 선택하여 살아가는 삶 사이의 길항 속에서, 무엇을 추구하며 수긍하고 저항하는지에 따라 정체성이 형성되고 계속 변태하며 나아가는 게 인생이다.”

저자는 작업 내내 두 여성농민의 삶에 공감하기도 하고 거리를 두기도 하면서 나름의 주석을 붙인다. 김순애와의 인터뷰 후기에서는 ‘주인공의 힘과 열정, 상처와 분노가 나를 붙들기도 하고 안타깝게도 했다’고 고백한다. 가족과의 관계, 가난의 설움, 남들의 시선 속에서 자기 삶을 피워낸 치열함은 주변 사람들을 찌르기도 하고 그들 스스로를 소모시키기도 했다. 김순애가 친남매들의 이혼을 비난하는 것이 그렇고, 정금순이 친자식들에게 갖는 죄책감이 그렇다.
이들이 보여주는 한과 열정 속에는 돌봄 노동, 여성에 대한 사회적 관념, 가부장제에 갇힌 욕망 등 좀더 눈여겨보아야 할 문제들이 얽혀 있다. 저자의 말대로 ‘억척이고 열정이고는 많은 경우 아픔 때문’이며, 그 아픔은 결국 세상과 직결되어 있다. 타인을 돌본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김순애와 정금순이 겪은 돌봄 노동은 사회가 여성에게 떠맡겨버린 일종의 족쇄이기도 하다. 혹은 정금순의 첫 결혼 이야기나 남들 시선이 두려워 이혼을 꾹꾹 참는 모습은 여성억압적인 사회 구조와 떼놓고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의 두 여성농민은 끝끝내 자기 삶을 일구는 데 성공했다. 그들의 회고는 단지 지난날을 기술하는 데서 멈추는 게 아니라, 그 날들을 돌아보고 다음 농사를 준비하는 거리두기의 과정일 것이다. 저자는 각 인터뷰의 후기에서 그들의 삶에 지지와 존경을 보내며, 계속해서 흔들리지 않고 걸어나가기를 응원한다. 김순애와 정금순은 앞으로도 억척스럽게 스스로를 지키고 피워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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