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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나온 책 Book

밥을 기억하는 책

저자
윤혜선
출판사
글항아리
발행일
2020-12-21
사양
216쪽 | 128*188 | 무선
ISBN
978-89-6735-849-5 03800
분야
교양
정가
12,000원
‘밥’에는 우리 모두를 불러 세우는 힘이 있다
살아온 시간을 밥을 나눈 시간으로 펼쳐 보인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를 서른두 편의 에세이


내게 두부는 그런 이미지다.
뙤약볕 아래서 견디며 여무는 콩. 그 딱딱한 것이
액체로 흐물흐물 갈아졌다가 다시 팔팔 끓어 고체가 되는 과정,
수건을 쓴 뽀얗고 붉은 할머니 그리고 땀을 닦는 수건,
그것으로 깊이 각인되어 있다.
아들을 사랑하는 내 일이 심장을 눈물에 담가 불려 천천히 갈아서
그것을 더 큰 사랑과 지혜와 노력이라는 연료로 다시 가열하고 가열해
눈처럼 하얀 형태로 다시 모양을 잡아가야 하는 일은
아니었는지 생각에 잠긴다. _ ‘두부요리’(p.65)


책 소개

돼지 불고기, 달래 된장찌개, 미나리 전, 가지올리브유절임……
인생극장을 공연 중인 ‘심야식당’

일본 후쿠오카에서 두 시간 남짓 달려, 다시 택시를 타고 10여 분 들어가면 오카와치야마라는 자그마한 마을이 나온다. 임진왜란 이후 끌려온 조선 도공들이 터를 잡은 이곳은 기술을 전수받은 이 지역 장인들이 대를 이어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장인촌이다. 이색적이면서도 친근감이 가는 소박한 자기들 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오래 붙잡은 것이 있었으니 청색 기운이 도는 투명한 백자 밥공기였다. 저기에 따뜻한 쌀밥을 담아 명란을 얹어 먹고 싶은 마음에 냉큼 구입했다. 햇살을 받아 투명해진 도자기 속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밥. 그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은 따뜻해진다.

한 편 한 편 특별한 레시피, 특별한 사연

『밥을 기억하는 책』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 같은 책이다. 저자가 특별히 아끼는 음식 서른두 가지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삶을 돌아보고 다시 따뜻하게 보듬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눈을 감게 되고, 눈을 감고 가만히 글쓴이의 마음을 짐작해보게 된다. 음식만큼 전염력이 강한 글감이 있을까. 어떤 글에서든 마음은 이미 현을 튕겨 소리 낼 준비를 하고 있다.
누구의 인생이 평범하랴만, 이 책의 저자 또한 평범함과는 거리가 있는 인생 경력의 소유자다. 이혼 후 홀로 남자아이 셋을 키우며 학원을 경영해왔다는 사실 하나로도 소금 1톤을 삼킨 것 같은 기분이지 않은가. 그간 있었던 남편과의 전쟁, 아들들과의 지지고 볶음, 결연한 삶의 재건, 여러 가지 것들과의 피할 수 없는 투쟁이 강퍅하게 감아들어 온다. 만약 이 책이 하나의 요리라면 짠맛을 내는 기본 조미료가 이런 부분들이다. 사람에 지친 저자는 음식을 통해 많은 치유를 받았기 때문에 여기엔 여러 가지 달콤하고, 구수하고, 쫄깃하고, 슴벅슴벅한 맛도 스며든다. 외할머니와의 추억, 엄마와의 해후를 장식하는 양미리 조림, 친한 언니가 비결을 찔러준 주먹밥, 고교 시화전 에피소드의 끝을 장식한 순대볶음 등이 그러하다.
타인의 삶을 단풍잎처럼 꽂아둔 자서전

읽다보면 음식으로 읽는 한 개인의 파란만장한 자서전인데, 단풍잎처럼 접혀 있는 타인들의 삶을 꺼내 읽는 맛이 아주 옹골차게 좋다. 권위 있는 셰프가 알려주는 공식같은 레시피는 이 책에 없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평생 존재했는지도 몰랐을 사람들, 저자를 키워낸 사람들로부터 자연스럽게 후대로 전이되어온 실시간 음식 조리법 전수의 역사를 목도하는 재미도 좋다.
아무리 좋은 식재료라도 정성과 손맛이 없다면 평범해진다. 자신만의 방식과 도전이 없다면 내놓을 만하다고 할 수 없다. 이 두 가지 철학이 믹싱되어서 이 책의 음식들이 탄생했고, 그와 어울리는 배경의 삶이 펼쳐진다는 게 매력이기도 하다. 특히 식재료에 대한 독특한 해석과 의미 부여는 이 책의 커다란 특징 중 하나다. 앞에도 인용했지만 저자에게 두부는 “뙤약볕 아래서 견디며 여무는 콩. 그 딱딱한 것이 액체로 흐물흐물 갈아졌다가 다시 팔팔 끓어 고체가 되는 과정, 수건을 쓴 뽀얗고 붉은 할머니 그리고 땀을 닦는 수건, 그것으로 깊이 각인되어 있다.”
저자에게 김치는 안개꽃과 같다. 어디에나 잘 어울리고 홀로 접시에 담겨 있어도 단아하고 그윽하다. 아침에 밥솥을 열었더니 “생쌀들이 팅팅 부은 얼굴로 메롱”했던 날이 있었다. 취사 버튼을 누르지 않고 잔 것이다. 김치볶음밥은 그럴 때 구원투수처럼 등장한다. 김치볶음밥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 김치볶음밥은 저자에게 음식을 할 때 중요한 것이 “적당한 시간과 온도”라는 걸 알려줬다.

요리는 삶을 되새김질하는 시간

만날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다. 음식도 그렇다. 저자에게 요리할 때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식재료가 있다면 단연 버섯이다. 그중에서도 느타리버섯! 탱글거리면서도 아삭하고 아삭하면서도 쫄깃하다. 어떻게 요리할까? 저자는 기름을 두르지 않고 달군 팬에 노릇노릇 구워 기름장에 찍어먹는 걸 선호한다.
음식이 치유라는 걸, 이 책을 통해 우린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꼭 알아야 하는 건 아니겠지만 ‘닭백숙’(p.52)과 ‘굴국밥’(p.114)과 ‘고추잡채’(p.128) 챕터를 보면 어렴풋이 그 작용의 섭리가 그려진다. 저자의 삶에 아직도 많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전남편은 이 책 전반에 걸쳐 등장한다. 가령 “전남편은 군인이었다” “전남편이 외도를 해서 내 신뢰를 깬 것은 아니었다”는 식으로 서두를 열고 사연이 펼쳐진다. 그와의 관계를 되씹고 따져보는 시간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되새김질은 고통을 소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고추잡채는 “결혼시절 살던 감옥 같았던 군인아파트에서 배운 것”이다.

“나라는 나무를 땅에서 억지로 파내 뿌리를 싹뚝 잘라 외딴 곳에 갖다 박아둔 듯 쓸쓸하고 외롭던 시절 배운 요리가 지금은 여러 사람에게 맛나다는 인사를 듣는 요리가 되었다. 고추잡채를 먹을 땐 그러니 항상 웃는다. 오늘 울었다고 내일도 울라는 법이 없다는 것은 이것만 봐도 확실하다.”(p.132)

만두전골은 “외손주가 너무 이뻐서 나까지 이뻐하신” 전남편의 외할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요리다. 절에 다니시던 그 분은 어느 날 성경책을 꺼내 읽으셨는데 빵 터진 가족들이 이유를 묻자 “천국 갈라고 그런다!”고 외치듯 대답하신 분이었다. 집에 가면 텃밭에서 따준 생강잎에 쌈을 싸주신 할머니가 저자에게 어느 날 건네주신 것이 전골냄비다. 뙤약볕을 걸어 마을회관을 지나 버스를 탈탈탈 타고 장에 나가 사왔을 이 냄비를 저자는 버릴 수 없었다. 저자는 백숙을 할 때 만두전골을 따라붙인다. 그 닭육수를 사용하는 게 가장 좋기 때문이란다.

모든 좋은 영양분은 아이들에게 간다

팝콘처럼 톡톡 튀는 세 아들과의 이야기는 이 책 구석구석에 떨어져 있는데 저자가 하는 음식의 팔할이 저 아이들을 먹이기 위한 것이다. 귀갓길에 큰아들이 문자를 보내 주문한 ‘참치비빔밥’(p.133), 1000밀리리터 우유곽을 통째로 얼려뒀다가 깍둑썰기로 만드는 여름간식 ‘팥빙수’(p.138), “뜨거운데 시원하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라고 아이들이 외치게 만든 ‘어묵탕’(p.146), 다 큰 성인인 척 하는 아이가 아이다움을 드러낼 때 그런 아이가 사랑스러워지는 엄마가 살이 통통 오른 하지감자를 써서 만든 ‘닭볶음탕’(p.157) 등 누군가를 먹이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공감할 내용이 많다.
이 책을 읽다보면 어딘가의 물줄기들이 한 곳으로 모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마음에 깊은 수원지를 가진 사람은 퍼내서 베푸는 데 익숙하지만 그 수원지는 말라 사라지지 않는다. 엄마와 아내로서, 자식으로서, 친구와 선후배로서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나’는 비록 세상을 향해 도드라지진 않았지만 자신만의 깊고 아늑한 세계를 만들어 타인을 초대할 수 있는 품을 갖게 되었다. 이런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소중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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