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의 책소개
엄마, 엄마, 엄마,
부서진 세발자전거는
내가 고칠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다시 타고 다닐게 그러니
죽는다고 하지 마, 나 다신
안 죽을게 _「비유할 수밖에 없어」 부분
저렇게 노래 잘하는 건 내 거북이 아냐 내 거북은 염산을 타 마시고 목구멍이 타버려서 점자처럼 안 들리는 노래를 부르지 내가 너를 네가 나를 껴안고 뒹굴어야 온몸에 새겨지는 바로 그 쓰라린 노래 _「거북 속의 내 거북이」 부분
한 아이가 울고 있었다
아가 너 왜 우니?
뼈가 막 아프대요
뼈가?
네, 뼈가요 뼈는 눈물이 없잖아요 그래서 뼈가 나한테 언니가 대신 눈물 좀 흘려줘 그랬어요 _「잠들어 거울 속에서 눈뜬 검은 나나」 부분
어서 말해. ……싫어요, 말 못해요. (……) 죽어도 말 안 할 거야. _「안 보이는 나들의 부화」 부분
1999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한 김민정 시인의 첫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를 문학동네포에지 17번으로 새롭게 복간한다. 2005년 5월 열림원에서 첫 시집을 묶었으니 그로부터 16년 만이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스물에서 서른까지 10년의 시들을 담았다. 복간본에서는 초판의 3부 54편의 시를 4부 70편으로 재구성하고 처음 발표했던 장시 형식을 되살렸으며 첫 시집에 묶이지 않은 시들의 제자리를 찾아주었다. 말 많은 네 시는 시가 아니라고 이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자인 ‘나’만의 이야기라는(「詩, 雜이라는 이름의 폴더」) 적극적인 현실의 오독 속에서 ‘격리대상 1호, 까만색 피가 흐르는 미친년’(「완전한 격리」)은 2021년 더 두툼해진 살집으로 우리 앞에 도착했다. 끝끝내 가시지 않을 금간 얼굴의 탄내를 언제까지나 기억하면서(「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갈가리 살집이 찢겨나간 실핏줄 타래들/대체 어떻게 꿰매야 하죠?”(「따뜻한 날 젤로 차가운 나의 체온」) 내 안에 들끓는 ‘아니야’는 컹컹 짖는 ‘개 소리’가 되어 두개골이 뻐개지고 걸레 빠는 양동이 속 끓는 물에(「들개 브라보 들깨」) 처박힌다. “우리는 집집마다 유리창 위에 눌려 있는 여자들의 얼굴이 반짝반짝 손톱에 칠한 투명 매니큐어처럼 빛나고 있는 걸//본다. 눈물인데 그냥 가는 비로 흐르게끔 내버려두는 사람들과 더불어”(「하지 마요, 해도 하는 손들과 더불어」). 우당탕 입 밖으로 굴러나오는 나를 닮은 제각각의 공 하나하나. 너 여기 있었구나 나도 여기 있었는데……(「잠들어 거울 속에서 눈뜬 검은 나나」) “얘들아 이것 좀 봐, 여태껏 너희들의 아가미가 이렇게 꼴딱꼴딱 숨쉬고 있었나봐.”(「검은 나나의 제8요일자 일기」)
김민정 시의 문장들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비명이자 광기 어린 중얼거림인 말의 괴로움을 보여주려 존재한다(이장욱). 김민정은 어른의 현실 세계를 유희의 형태로 고발하려는 시적 전략으로 ‘어린아이 같음’을 택하지만 동시에 시인은 현실 세계의 폭력성에 그 같은 ‘아이다움’이 얼마나 무력한지 보여준다. 죽음과 같은 폭력을 겪으면서도 ‘매일매일 학교에 가야’ 하는 현실의 질서를(강계숙). 그러나 황량한 내면 풍경을 당차게 횡단하는 그녀의 발성법은 “우리들 잠든 심장의 세탁기를 찔러대며” 새로운 세대의 시적 징후와 정신적 근종을 보여주었다(박정대). 황현산은 묻는다. 김민정의 첫 시집이 너무 일찍 발간되었던 것은 아닌가. 남혐 전사들이 사용했다는 실탄의 원형이 모두 여기 있는데(@septuor1 2015년 6월 3일). “고작 한 방울의 바다, 눈물”(「박치기하면서 빛나는 문어」). 이 고통의 무늬로 짜인, 언어가 곧 상처인 그녀의 시는 타락한 동화 같은 현실을 매만지고 캄캄한 골목길을 조금이나마 밝히게 되리라(김미정).
내게 절실하지 않은 건 엄살에 불과했으므로 나는 그 기막힌 풍경들은 달력그림으로 벽에 걸어놓은 채 오로지 내 온몸의 통점을 통과해가는 만물의 심박동에만 귀기울였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네 시는 시가 아니야. 그럼 내 시가 소설이냐. 그렇게 말 많은 네 시는 시가 아니라고. 그럼 네 시는 말줄임표냐.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데 여자인 ‘나’만의 이야기라니, 이해가 아닌 해석으로 마음이 아닌 콘택트렌즈로 시를 보는 사람들의 오독을 독 삼아 나는 그들의 ‘말씀 그 가르침’을 반사하는 놀이에 늘 시를 초대했다. 시는 그렇게 내게 왔다. _「詩, 雜이라는 이름의 폴더」 『서정시학』 2005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