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는 자신의 집을 어떻게 지을까?
부모님, 아내, 두 아이가 꿈꾸는 집은 어떤 모습일까?
처음 땅을 고를 때부터 여러 해 계절과 날씨를 품기까지,
집이 속삭이는 사적이고 은밀한 대화의 기록을 담다
하루 중 집에 머무는 ‘시간’이 얼마나 되세요?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나만의 공간’이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요즘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외출을 자제하기도 하고, 재택근무의 비중도 높아져 예전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부쩍 늘었습니다. 이렇게 ‘집콕’하는 사람들이 늘다보니 자연스레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은 물론 타인의 공간에도 관심이 쏠립니다. TV에서는 주거 환경을 주제로 다각도로 접근하기도 하고, 바쁜 의뢰인을 대신해 좋은 매물을 찾아나서기도 합니다. 심지어 ‘랜선 집들이’나 남의 집을 들여다보며 타인의 생활을 살펴보기도 하죠.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듭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내게 어떤 의미인지, 집이 나와 가족의 생활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요.
규격화된 아파트에 살면 생활도 그에 맞춰지게 됩니다. 사는 사람은 서로 달라도 거실에는 TV를 두는 자리, 몸을 뉠 소파의 위치가 대체로 비슷한 것처럼요. 어느새 나의 생활도 전형적인 ‘틀’에 맞춰져 ‘표준화’되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아파트 생활이 편리한 것은 분명하지만 집이 곧 나의 취향과 생활을 담는 그릇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남의 집 짓는 건축가, 이번엔 우리 집이다!
“내 생활에서 중요한 것들을 순위 매겨 재배치해봤다. 그랬더니 실은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내 삶의 중심에서 자리한 채 피로감만 주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씩 무심하게 그것들을 지워나갔다. 아마, 그날부터였을 거다. 내 인생이 어떤 형태인지, 어떤 방향으로, 어디쯤 흘러가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씩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한 날이. 아마 그날부터였을 거다. 더 늦기 전에 내 집을 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날이.”
2016년 가을, 처음 집 지을 땅을 만나고 집짓기 첫 삽을 뜬 2017년 봄을 거쳐 그해 12월에 3대가 함께 사는 집이 완공되었습니다. 집의 이름은 ‘미생헌(未生軒)’, 완생을 준비하는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3대가 오랜 아파트 생활을 마치고 함께할 첫 단독주택이죠. 이 집의 건축가이자 건축주는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아내의 남편 그리고 노부부의 아들로, 이 책의 지은이입니다. 갑갑한 아파트 생활과 이 집 저 집 옮겨다니는 아파트 유목민 생활을 청산하고, 가족이 정착할 단독주택을 짓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야말로 ‘집짓기’는 가족 모두에게 생의 전환점이자 하나의 사건이 되었습니다.
처음 내 집을 지으며 생각한 것들
『집의 귓속말』은 처음 땅을 만난 그때부터 집을 짓고 살며 남겨진 날것 그대로의 단상과 이해, 공감의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한 조각, 한 조각의 풍경이 더해져 집의 형태를 완성하듯, 집짓기 과정의 단상들이 모여 삶의 모양을 그렸습니다.
지은이는 집의 중심에 가족을 두고 가족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렴하며 지난한 설계 과정을 거쳐 집을 지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가족은 ‘그냥’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주의 깊게’ 이해하고 공감해야 함을 몸소 깨닫게 됩니다. 가족 이외에도 목수, 인부, 업자, 파트너, 구청 직원, 현장을 지나치는 행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종 이해관계와 부딪히고 갈등을 해결하며 직접 겪어봐야 알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은이의 집짓기 과정은 삶의 자세와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끔 하죠.
또 건축가가 짓는 집이기에 주변에서 하는 이야기(혹은 훈수)에 휘둘리지 않고 어떻게 중심을 잡는지, 창문, 문, 계단, 치수 등 전문가이자 단독주택 거주자로서 이야기하는 실생활 정보는 미래의 집짓기를 꿈꾸는 데 있어 따져보고 참고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집짓기, 삶의 본질을 찾는 여정
이 책은 집의 구석구석을 해부하는 이론서도, ‘이렇게 집을 지어보세요’ 하는 실용서도 아닙니다. 집짓기 과정을 비롯해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갈등(비용, 시공, 업자와의 관계 등)은 물론 ‘집’에서부터 뻗어나가는 다양한 이야기와 건축가라는 직업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 곧 삶의 본질을 찾는 여정임을 속삭이듯이 들려줍니다.
건축가로서 또 건축주로서 이토록 현실적으로 허심탄회하게 집 짓는 이야기를 하는 책이 또 있었나 싶습니다. 그러니 『집의 귓속말』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기에 도움이 되는 집짓기에 대한 ‘마음가짐 편’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또 집 짓는 사람의 마음이 궁금한 분들이거나 사람, 가족, 삶, 일,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이라면 집이 속삭이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이 책이 힌트가 될 수도 있을 거예요.
“대략 일 년 전 ‘내 가족이 원하는 집은 어떤 집인가’라는 막연한 질문에서 출발한 여정은 이제 걸어온 길보다 남은 길이 더 짧은 시점이 되었다. 거푸집을 꼼꼼하게 대고 콘크리트를 붓는다. 굳는 시간 동안의 기다림이 지나면 집의 뼈대가 조금씩 드러날 것이다. 종이에 그려져 있는 상세한 도면은 현장 바닥에 먹선이 되고, 그 선은 다시 높이와 두께가 있는 살아 있는 벽이 되어 생활을 담는 공간으로 변해갈 것이다. 현장을 오가다보면 집이 속삭인다. 당신이 원하던 그 삶이 만들어지고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