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사라지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은 별 생각
지구 별 생각
누구나 하는
별의별 생각
누구나 해 보는
별의별 일
누구나 만나는
별의별 사람
나는
별별 생각을 하는
별별 일을 벌이는
별별 사람을 만나는
지구 별 사람
_「별의 별」 전문
저마다의 운율로 살아가는 별별, 별의 별, 별 같은 존재들을 담은 동시집
“세상에 널리고 널린 마음, 내 안에 널리고 널린 마음, 그중에 오늘은 어떤 마음을 먹지?”
달이 사라지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 “우리 내일 학교 안 가.”라는 말을 따라가다 보면 닿는 곳은 어디일까? 『별의 별』이라는 지구 안에는 별별 생각을 하는 별별 일을 벌이는 별별 존재들이 있다. 새장 안 알에서 깨어난 새, 다섯 조각으로 깨진 찻잔, 그네 타고 나비처럼 바람을 일으키고 싶은 아이……. 저마다 다른 꿈과 용기를 품은 이들. 시인은 밝은 눈으로 도처에 있는 별을 발견하고, 편안하고 욕심 없는 언어로 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별의 별』은 2013년 여름부터 2020년 여름까지, 시인 주위의 사람과 사물, 자연이 품은 ‘시’를 고르고 기르고 얻어낸 것으로, 시인이 만난 ‘시적인 순간’을 함께할 수 있다. ‘시적인 순간’은 곳곳에 널려 있다. 그래서 시인은 오늘도 여기저기에서 재밌는 냄새를 맡고 맛있는 마음을 먹으려 구석구석을 탐험한다.
난 맛있는 마음을 먹어
진이 보고 싶은, 참새들 따라 단풍나무에서 모과나무로 날고 싶은, 그네 타면서 나비처럼 바람을 일으키고 싶은, 그래서 마주 달려오는 바람과 껴안고 싶은, 바람이 넘겨 주는 그림책을 보고 햇살이랑 짹째잭짹 짹잭 말하고 싶은,
여기저기 재밌는 냄새 솔솔 나
세상에 널리고 널린 마음
아니,
내 안에 널리고 널린 마음
그중에 오늘은 어떤 마음을 먹지?
_「나는 미식가」 전문
재미나고 맛있는 순간들은, 밤하늘 별자리처럼 방향을 가늠하는 나침반이 되어, 명랑한 무늬가 되어, 풍성한 이야기로 변주되어 우리 안으로 흘러든다.
다정한 말, 제멋대로 신나서 리듬 타는 말, 실팍한 근육을 씰룩이는 말 들을 풀어놓은
김경진 시인의 첫 번째 동시집
김경진 시인은 2014년 『동시마중』에 동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별의 별』에 실은 시들로 “기교에 기대지 않고 담백한 어조로 시적 형상화를 이루어 낸 점이 특징이었다. 자신의 경험을 적절히 끌어들여 공감을 이끌어 내는 능력도 탁월하였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춤한 관찰, 사색, 재치 등이 재미를 주면서도 난해하지 않았다.”는 평을 받으며 대산창작기금을 받았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권태응어린이시인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한 한편 지금까지도 아이들과 글쓰기 수업을 이어 가고 있는 시인은, ‘어린이’라는 존재를 새롭게 만나면서 ‘저 나이의 나는 어땠을까? 어떤 말을 했을까’ 궁금해졌고 그 아이를 만나는 방법이 동시를 쓰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 아이는 가위로 사과 모양을 오릴 때 한 입 크게 싹뚝 잘라 먹고, 민들레잎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한번 걸어가 보는 아이다.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이 가진 말들을 조금씩 보여 주면서,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는 시인. 이 동시집은 시인의 주위를 밝히는 존재뿐 아니라 시인의 내면을 밝힌 말의 기록이기도 하다.
“내가 가진 그대로가 괜찮고 어여쁘다고 위로하고 힘을 얻는 과정에서 얻은 시들이에요. 그러니 이 시집은 한 사람이 자기라는 한 사람을 알아 가는 과정인 동시에 한 아이가 자기라는 존재를 사랑해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어요. 시가, 제 말이 읽는 사람의 말을 데려오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요.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자기 말을, 자기를 사랑하면 좋겠어요.”_김경진
그러하기에 시인은 말 앞에서 골똘해진다. 다정한 말, 제멋대로 신나서 리듬 타는 말, 실팍한 근육을 씰룩이는 말…… 시인이 고른 말은 보고 싶은 친구에게, 젤리슈즈를 신고 우쭐우쭐 걷는 아이에게, 몇 년 몆십 년 몇천 년 싹트길 기다리는 씨앗에게 닿는다. 그리고 이 모두를 싣고 우리에게로 향한다.
무얼 하냐면 말이야,
말을 고르고 있어
앞에는 키 작은 말
왼쪽에는 다정한 말
오른쪽에는 윤기 나는 말
뒤에는 귀를 쫑긋대는 말
나는 그 가운데서 생각한단 말이야,
(중략)
많고 많은 말 중에서
네가 좋아하는 말이 무얼까 하고 말이야,
_「옴짝옴짝」 부분
땅속 46미터까지 뿌리 내리는 아카시아도 5센티미터 화분 흙 속에 뿌리를 뻗는 호야도 같은 밀도로 같은 무게로
동화작가 송미경은 김경진의 소통법이자 시작법이 깊은 관찰과 부드러운 기다림이라고 말한다. 시인은 존재의 말을 듣기 위해 관찰하고 기다린다. 그래서 우리는 김경진 시인의 귀를 빌려서, 셋이 함께 쓰고 가는 우산에 빗방울이 부딪칠 때 빗방울 부딪는 소리 너머 타닥타닥 모닥불 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서로의 마음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온기를 느낄 수도 있다. 열세 살의 나도 마흔 살의 나도, 땅속 46미터까지 뿌리 내리는 아카시아도 5센티미터 화분 흙 속에 뿌리를 뻗는 호야도 휘황한 수사를 덧붙이지 않아도 다 그 자체로 별이라는 걸, 그렇게 서로 안겨 세상을 살아간다는 걸, 하나의 우주를 이룬다는 걸 알게 된다.
내가 돌이를 안고
엄마가 나를 안고
침대가 엄마를 안고
우리 집이 침대를 안고
우리나라가 우리 집을 안고
지구가 우리나라를 안고
우주가 지구를 안고
우리가 그렇게
안겨 있는 거야?
_「처음 우주를 알게 된 날」 전문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방법은 너와 내가 같은 모습으로 변하거나 섞이는 것이 아니라 너는 너인 상태로 나는 나인 상태로 그렇게 가만히 끌어안는 것이다. 시인은 연두색을 만들기 위해 노랑과 파랑을 섞는 방식으로 감산 혼합하지 않고 노랑은 노랑대로 파랑은 파랑대로 두고 병치 혼합하여 연두색을 만든다. 밝기가 변하거나 탁해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 색이 함께함으로 원하는 색을 내는 것이다. 시인은 존재와 존재를 있는 그대로 고요하게 두되 날줄과 씨줄이 엮이듯 관계를 배치하여 새로운 색을 직조해 시적 풍경을 완성한다. 그래서 김경진의 시엔 모두가 따로, 그리고 함께 존재한다._송미경(동화작가)
일상에 숨은 환상성을 품고 시 읽는 반경을 넓혀 주는 그림
만화와 일러스트를 그리는 안유진 화가가 그림을 그렸다. 작은 순간에 관심 두기를 좋아하는 그다움으로, 사소함에 깃든 시적 순간을 일상에 숨은 환상성을 드러냈다. 노란 불빛을 밝힌 듯 따듯한 그림이 시의 온기를 전하며 시 읽는 반경을 넓혀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