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이라도 평범하다면 그녀의 소설이 아니다!
지금 일본 문단이 가장 주목하는 작가, 가네하라 히토미의 신작 장편소설
여자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치열함, 작가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순수함. 2004년 첫 소설 『뱀에게 피어싱』으로 일본 문단의 최고 권위라 불리는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가네하라 히토미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은 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데뷔 당시부터 끊임없는 화제를 불러일으킨 그녀는 매해 한 편 이상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며 유미리, 야마다 에이미의 뒤를 이어 일본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 자리를 굳혔다. 세번째 장편소설 『아미빅』은, 전작들에 비해 한층 심화된 묘사와 생생한 표현력으로 “사르트르 『구토』의 팝적인 현대판(요미우리 신문)”이라는 평을 받으며 작가로서 가네하라 히토미의 가능성을 재확인해준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마른 몸매에 화려한 외모를 지녔으며 글 쓰는 일만으로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성공을 거둔 젊은 여성 작가. 약혼녀가 있는 잡지 편집자를 사랑하고, 파티시에인 그의 약혼녀를 흉내내어 홈 베이킹에 열중하지만, 정작 자신이 입에 대는 건 영양제와 진토닉, 그리고 약간의 야채뿐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영양분 이외의 음식을 섭취하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주인공은 몸무게가 32킬로그램으로 떨어질 때까지 이런 비정상적인 식생활을 계속한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불안정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그녀는 컴퓨터에 수상쩍은 제목의 문서파일이 저장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곧 그것이 자신이 정신 착란상태에 빠져 있을 때 남긴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 안에 있는 또다른 존재가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이 가져다주는 공포와 쾌감, 주인공은 자신을 둘러싼 좁은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분열’과 보이지 않는 싸움을 시작한다.
치명적인 잔혹과 순수를 동시에 지닌 세계
사랑과 관계에 대한 가장 이기적인 상상
책장을 펼치자마자 공격적으로 달려드는 ‘착문’. 읽는 사람이 고문당하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혼란스럽고 말 그대로 키보드로 ‘휘갈긴’ 듯한 이 문장들에서는 온몸으로 자신의 불안정함을 호소하는 절박함이 느껴진다. 주인공의 설정과 환경은 작가의 실제 모습과 여러 면에서 겹쳐지는데, 실제로 이 소설은 가네하라 히토미 자신이 컴퓨터에 남긴 의문의 문서파일에서 착안해 쓰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날짜, 시각 같은 필요 없는 정보는 쓰고 싶지 않았다. 아무런 설정이 없는 상태에서 읽는 사람도 맨몸으로 이 소설에 부딪혀주길 바랐기 때문이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아미빅』은 이전 작품들에 비해 훨씬 심화된 심리묘사를 보여준다.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 지니는 강렬한 흡인력과 거침없이 쏟아붓는 도발적인 독설도 여전하다.
이 세상에 필요한 일은 없다. 있다고 한다면 농업 정도다. 글 쓰는 일 따위는 불필요하기로 말하자면 톱클래스다. 밭을 간다. 야채를 거둔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물론 만드는 것은 오이와 무만으로 충분하다. 뭐, 나는 흙투성이가 되어 야채를 재배하는 것 따위 죽어도 사양이지만. 오이와 무의 씨앗과 밭을 제공받고 이것밖에 먹을 게 없는 상황에 놓인다 해도, 나는 절대로 흙 같은 건 만지지 않을 것이다. 흙은 만지는 게 아니다. 만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불필요한 문장을 쓰면서, 밭 한가운데에서 죽어가겠지. _본문에서
가네하라 히토미의 소설에 열광하는 이들은 이런 ‘정면돌파’를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다. 극단적인 상상력은 예리한 칼끝이 되어 가슴을 후벼파고, 인간의 내면 가장 밑바닥에 있는 감정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묘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설득력을 지닌다. 자신의 안에 또다른 의식이 존재한다는 공포, 사소한 추억조차도 다른 누군가와 공유할 수 없다는 고독,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라 믿고 싶어하는 본능적인 심리, 사랑을 갈구하는 상대에 대한 기묘할 정도의 집착 등, 작품 속에는 내내 가공되지 않은 솔직한 감정이 날것으로 살아 숨쉰다. 읽는 이에게까지 자신의 고통과 혼란을 여과 없이 전해주는 문장들. 그것이 바로 ‘작가’로서의 숙명을 지니고 쓴 소설이라는 것일 터이다.
‘자신’이란 대체 무엇일까. ‘살아간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요즘 시대에서는 그런 고민을 할 일이 별로 없을지도 모르지만, 주인공은 싫어도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 있어요. 그런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얼마나 절실하고, 얼마나 괴로운가. 언제까지 계속 못 본 척 외면할 수 있는가…… 나 자신도 이 작품을 어느 정도까지 독해하고 있는지 아직 모르겠어요. 채 파악하지 못한 부분도 있고요. 읽는 사람이 이 세계를 느끼고 나름대로 분석해주면 물컹물컹한 아메바에 색이 입혀지고 형태가 주어지겠죠. 독자들의 사고로 인해 형성되어가는, 그런 소설이 아닐까 생각해요. _<에스우먼> 인터뷰에서
피부로 생각하고, 뇌로 느끼는 소설
혀를 가르는 피어스, 이상성애 등 논란거리를 소재로 다루어왔지만, 실제로 그녀가 쓰는 것은 전통적인 현대소설이자 강렬한 청춘소설이다. 절박하고, 더할나위없이 위태롭고, 그러면서도 표표한 가련함. 가네하라 히토미의 세계가 드디어 진화를 시작했다.
_요미우리 신문
칼로리메이트를 친구로 삼는 소녀들이여, 한손에 담배를 들고 곁눈질로라도 이 책을 읽길 바란다.
이 작품은 당신들을 위해 꼼꼼하고 정중하게 씌어진 ‘진짜 소설’이니까.
_일본 아마존 독자평
『아미빅』은 사실 어떤 말로도 정의를 내리기 힘든 소설이다.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 어떤 장면에서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고, 공감하기 시작하면 문장 하나하나가 바늘 끝처럼 가슴을 후벼판다. 모든 것이 불명확하고, 혼란스럽고, 공격적이지만, 동시에 무서울 정도로 선명한 현실감각을 읽는 사람의 눈앞에 들이댄다. 인간이 연명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음식물 섭취를 의식적으로 거부하며 스스로의 몸을 학대하고, 동시에 롯폰기의 쇼핑가를 활보하며 거울 안의 자신에게 매료되는 주인공의 모습은, 방식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현대사회를 사는 누구나가 갖고 있는 자기혐오와 심리적 자위의 일면이 아닐까? 그것이 『아미빅』의 세계를 단순히 비정상적이라고 외면할 수 없는 이유이다.
_옮긴이의 말에서
가네하라 히토미(金原ひとみ)
1983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학교에 가지 않았다. 호세이 대학 사회학부 교수이자 번역문학가인 아버지가 사다준 책들을 읽다가 열두 살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2003년 주변의 권유를 받아 처음으로 응모한 작품 「뱀에게 피어싱」으로 스바루 문학상을 수상하고, 2004년 같은 작품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다. ‘최근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중에서도 단연 두드러지는 문장’이라는 평을 받은 이 작품은 문신과 피어싱 등 자극적인 소재와 적나라한 성적 묘사로 찬반양론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후 장편소설 『애시 베이비』 『AMEBIC』 『오토 픽션』 『하이드라』, 단편집 『별에 떨어지다』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주로 동세대의 여성 화자를 일인칭으로 내세워 인간 심리의 이면을 세부까지 치밀하게 파고드는 묘사가 돋보이며, 최근 일본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젊은 작가 중 한 명이다.
옮긴이 양수현
동아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효고현립대학에서 수학했다. 현재 출판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프레젠트』 등이 있다.
* 2008년 5월 9일 발행
* ISBN 978-89-546-0568-7 03830
* 124*184 | 192쪽 | 9,500원
* 담당편집 : 양수현(031-955-8863 shu@munh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