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바뀐 사람들』은 1978년 일지사에서 간행되었던 감태준 시인의 첫 시집이다. 70년대, 도시화의 변방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불안과 상처를 개인적이고 내밀한 시선으로 그려낸 그의 시는, 관념적이고 선동적인 수사가 아닌 정교하고 침착한 목소리를 통해 한 시기를 뛰어넘어 오늘 여기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깊은 울림을 전한다.
내밀한 생의 감각으로 들여다본 당대의 변방
감태준의 시에 담긴 인물 군상들은 대개 부랑자, 넝마주이, 전과자, 철거민, 포장술집의 ‘꾼’들, “셋방에서도 밀려다니는” “허기진 사나이들”, “더는 절 구석이 없는 사람들”, 곧 “뿌리뽑힌” 사람들이다. 그들은 서울이라는 낯선 도시 “종로 5가에서 밥을 벌”고, “냄새나는 바람에 시달리는 밤을 맞”고, “넝마진(塵)에서 품 팔아 별을 헤”고, “빈 술병에도 얽히며 술집 밖으로 사라진다”. 근대화라는 대명제하에 시대의 귀퉁이로 밀려나버린 이들을 시인은 잔혹한 생존의 논리와 생을 ‘교환’하는 ‘몸 바뀐 사람들’로 애잔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들의 뒤에는 물론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유신체제라는 어두운 시대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지만, 시인은 역사와 이념과 논리를 추상적으로 구축하는 대신 힘겨운 생존의 싸움에서 지치고 상처받은 이들의 모습을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산업화시대의 이면을 비판적이고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시집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서울이라는 대도시와, 그와 대비되어 고향의 이미지를 내포하는 바다라는 두 공간이다. 시의 화자는 근대화의 파도를 타고 바다를 떠나 도시로 밀려왔지만, 도시의 차가운 바람과 덧없는 방황 끝에 다시 고향 바다를 찾는다. 그러나 바다는 고향이나 낙원이 아니라 오히려 그 결손과 부재를 의미하는 공간일 뿐이다. 그의 시는 도시와 바다, 인공과 자연 사이를 떠돌며 현실에 대한 추상도 신화도 아닌 당대의 이미지를 개인적인 감성과 세미한 의식을 통해 강력하게 부조해낸다. 결국 그는 “보이지 않는 연대(年代)의/한 끝으로부터/무변(無邊)을 날고 있는/한 마리 심약한 새의 방황”(「내력」)과도 같은 삶의 내력을 통해 당대인의 서정을 치밀하게 건져올리며, 이는 뿌리뽑힌 채 공허한 도시를 조감하는 새의 이미지로 이어진다.
요란스럽지 않으면서도 힘을 지닌 리듬
시인은 1978년 판 자서에서 ‘시는 무엇보다도 먼저 소리이어야 한다’ ‘시가 생의 기록이라면 그 기록 속에는 인간의 소리가 들려야 한다’는 미학적 원칙을 분명하게 밝혀놓고 있다. 시인 자신의 말처럼, 그의 시에서는 독특한 반복과 구어체 등의 청각적 요소를 통해 감정적 이입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황동규 시인은 초판 시집의 해설에서 이를 일러 ‘요란스럽지 않으면서도 힘을 지닌 리듬’이라 평했지만, 그의 말대로 감태준 시에 고유한 운율은 선동적인 음향이 아니라 내향적인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러한 ‘소리’로써 전해지는 ‘생의 기록’, 즉 당대에서 추방당한 삶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모습은 언어적인 의미와 메시지 이전에 먼저 어떤 정서적인 울림으로 독자로 하여금 담담하고 애잔하게 삶의 현장을 바라보게 하고, 그들과 함께 번민하고 슬퍼하게 한다. 이러한 구체적인 생의 기록과 고유한 리듬, 이것이 그의 시가 관념적이고 이념적인 재현에 몰두했던 당대 시의 중요한 공백을 보충할 뿐 아니라, 오늘 여기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고 절실한 호소력을 갖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시대의 가장 깊은 곳과 부딪치는 진정한 시인
한 시대의 가장 깊은 곳을 알면서도 또 더 깊은 곳과 부딪치는 존재가 바로 진정한 혹은 큰 시인일 것이다. 감태준의 첫 시집 『몸 바뀐 사람들』은 일단 추세적인 힘과의 타협을 거부하며 동시에 그 거부를 예술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황동규(시인, 서울대 명예교수), 1978년 판 해설 중에서
감태준의 첫 시집 『몸 바뀐 사람들』을 읽어보면, 그가 시를 쓰기 시작했던 육십년대의 시적 분위기 속에서, 그가 얼마나 어렵게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며 싸웠는가를 알 수 있게 된다. ―김현(문학평론가)
그의 시를 전체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인간적인 공감력과 냉엄한 관찰력은, 영웅적으로 극화된 어떤 선동적인 시보다 오늘날까지 강한 친화력과 호소력을 불러일으킨다. ―허혜정(문학평론가)
* 초판발행 | 2005년 5월 20일
* ISBN | 89-8281-985-1 02810
* 121×186 | 112쪽 | 값 7,500원
* 책임편집 | 이상술(031-955-88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