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하고 섬세한 언어, 세계의 아픔 감싸안는 모성적 상상력
2002년 동서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이래 꾸준히 시작활동을 해온 강문정. 프랑스 희곡을 공부하고 파리에서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가 첫 시집 『양철 가슴』을 선보인다. 부조리한 현실과 그 안에서 고통받는 삶에 대한 따뜻한 관심, 그리고 순간이라 더 아름다운 생의 한때를 예민하고 섬세한 언어로 묘사한 이 시집은 모성적 상상력으로 세계의 아픔을 감싸안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총 4부로 이루어진 시집의 1부에는 “태양이 깨져버린” (「프롤로그」) 듯 세계의 조화가 파괴되어 있다는 시인의 현실 인식이 드러난다. 그 세계는 비극의 여신 “멜포메네의 슬픈 노래”(「양철 가슴」)가 창백한 양철 가슴을 두드려대고, 날마다 “크고 작은 가시가 몸 속 깊이” 박혀 영혼은 “무중력 공간을 떠도”(「선인장」)는 곳이다. 2부에는 가을에서 겨울에 이르는 파리의 정취가 담겨 있다. 손에 잡힐 듯한 거리와 사람들과 건물들 등 풍경의 묘사는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그 안에는 또한 “도도한 시간의 물결에 휩쓸려 이내 질식해버”리는 삶의 일회성에 대한 애절함이 드러난다. 3부에는 전쟁의 참상이 보도되는 TV 앞에서 느끼는 죄책감(「위기의 순간 그들이 바로 우리다」), 사회복지를 자랑하는 나라에서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보조금도, 의료 혜택도 받지 못하는 에스파냐 출신의 한 사내에 대한 연민(「푸른 연기로 날아오를 청심촉 되다」) 등 현실 앞에서 분노하지만 어찌할 수 없어 좌절하는 시인의 감정이 절절이 드러나 있다. 4부에는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유럽의 풍경과 서울 광화문 네거리, 석모도 등 한국의 그리운 풍경들이 그림엽서처럼 예쁘게 연결되어 있다.
시인의 예민한 촉수는 오히려 자신에겐 형벌일 수 있다. 부조리한 현실을 예민하게 감지하지만, 세상에 뛰어들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정치가도, 또 무감하게 눈감아버릴 수 있는 범인(凡人)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시인은 고통을 숙명인 양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강문정의 시에는 조화로웠던 세계에 대한 그리움과, 잔혹한 현실에 대한 응시, 분노, 좌절감이 오롯이 담겨 있다. 역동적인 현실 한복판을 그리워하면서도 거기에 이를 수 없는 한계로 인해 시인은 종종, 잠 속으로, 신화 속으로 도피한다. 그러나 곧 제자리로 돌아와 현실과 자신을 가로막는 ‘유리벽’을 뛰어넘으려 끊임없이 시도하는 시인의 모습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는 강문정의 시들에는 거리, 건물, 사람들 등 다양한 파리의 풍경이 등장한다. 에펠 탑이 내려보는 파리 거리를 함께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은 덤이다.
강문정에게 현실은 종종 ‘먼지바람 가득한’ 사막의 세계이거나, ‘깨진 태양의 파편’이 가득한 혼돈의 세계이다. 현실이 그렇게 비인간적으로 느껴질수록 시인은 절망과 두려움 속에 움츠러들지 않고 적극적인 사랑과 희망의 눈빛으로 보다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시인의 꿈은 극도로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의 자장 위에서도 모나기보다 둥글고, 날카롭기보다 부드럽다. 그런 점에서 강문정의 상상력은 시의 한 제목처럼 ‘새들이 떠나도 둥지는 알을 품는 꿈을 꾼다’의 ‘둥지’와 같은 모성적 상상력을 연상시킨다. 그러한 모성적 상상력의 풍경화에서 모든 외롭고 우울한 영혼들은 그립고 따뜻한 쉼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생근(문학평론가)
‘잠’은 강문정의 시 곳곳을 마치 소리없이 퍼지는 는개처럼 지배한다. 역동적인 현실 한복판을 그리워하면서도 거기에 이를 수 없는 현실로 인해 시인은 잠 속에서 희랍으로 날아간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유리벽과 같은 것. 보이지만 넘을 수 없는 안타까움만 확인될 뿐이다. 결국 시인은 “무중력 공간을 떠도는 빈 혼”으로서 자기 스스로와 조우한다. 그러나 이 시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 「우주새」에서 보여주는 ‘무중력 공간’에서 ‘우주새’로의 이동과 탄생은 정적 정체성에 안주하지 않고 일어서려는 역동적인 상상력을 감지시키기에 충분하다. “내 꿈에 날아든 우주새”가 이제 현실 곳곳에서 그 부드러운 위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김주연(문학평론가)
* 2005년 3월 29일 발행
* 121*186 / 136쪽 / 7,500원
* ISBN 89-8281-960-6 02810
* 책임편집 김송은(031-955-8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