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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심사평 11-12-29 16:32



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예심평

 

총 91편의 투고 작품을 살펴보았다. 무엇보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치열하게 글을 쓰고 있다는 점에 감동했다. 글자 너머로 전해오는 열정이 대단했고 글쓰기가 그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글을 썼을 때 가장 먼저 마음의 위안을 받는 것은 글을 쓴 사람이다. 다만 그 글이 자신만이 아니라 독자의 마음까지 어루만질 수 있어야 세상에 펴내는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한 사회가 어린이의 미래를 염려할 때 가장 먼저 묻고 의지하게 되는 것은 그들이 읽는 책이다. 따라서 정확하면서도 사려 깊고 풍부해야 한다. 우리 어린이가 겪는 오늘의 현실은 얼마나 거칠고 팽팽한가. 어린이문학도 그 현실의 예리한 단면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어린이문학은 현장 르포와 다르다. 현실을 들여다보되 그 예리한 단면을 딛고 도약하는 서사의 독창적인 힘도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응모한 작품 중에는 환상적 장치나 구조를 설정하여 현실의 단면에 접근하려 한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판타지의 옷을 입은 작품 대부분은 동화도, 소설도 아닌 문체로 앙상한 소재를 다루고 있어 아쉬움이 컸다. 주인공이 환상계로 떠나게 된 이유는 현실에 있다. 그런데 현실 속 고립된 주인공의 고통을 설득해 내지 못하면서 복잡한 환상계의 묘사에만 공을 들이는 작품이 여러 편 있었다. 작품에 설정된 환상계의 구조를 머릿속에 그리느라 주인공의 처지에 공감할 틈이 없어진다거나 그 설정을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주인공에게서 인간적 매력을 느낄 수 없다거나 하는 경우였다. 인물은 능동적이지 않았는데 그저 환상계를 다녀왔다는 이유로 성큼 성장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판타지의 동력이 인물의 치열하고 주체적인 갈등에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면 아무리 시공간이 화려하더라도 그 이야기는 기본 틀에 기계 부품을 꿰어 맞추는 것과 다름없다.

역사적 소재를 다룬 작품 중에는 소재 자체를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데 치중한 나머지 이야기의 재미를 놓친 경우가 많아 안타까웠다. 사건 자체의 역사적 의미를 해설하는 것은 이야기의 목표가 아니다. 우리가 픽션을 읽는 이유는 역사적 사건보다는 ‘그 사건 안의 삶에 대한 궁금증’에 있다.

예심 위원들은 모두 여섯 편의 작품을 본심에 추천하였다. 문학적 기본이 탄탄하면서도 새로운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작품을 선정하고자 하였다.

첫 번째 추천작인 『미카』는 요정의 저주로 시작하는 판타지 형식의 작품이다. 편견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가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보여 주는 이야기다. 불행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용서와 사랑이라는 것이 작품의 주된 메시지다. 구석구석 흥미를 놓지 않게 만드는 힘이 있지만 사건 전개 방식이 새롭지 않다는 큰 한계를 가지고 있다. 서양 요정담류와 차별성을 줄 수 있는 독창적인 서사가 부족하다.

두 번째 추천작은 저학년 연작 동화집 『한발 뛰기 가나다』였다.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뛰놀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이 생동감 넘치는 문체로 그려진다. ‘종이 연필 지우개’라든가 ‘눈사람 운전사가 모는 날아다니는 버스’ 등은 발랄하면서도 내적 설득력을 가진 장치다. 평범한 일상도 얼마든지 즐거운 상상의 세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작품 다섯 편이 실려 있다. 그러나 이야기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설명이 늘어난다거나 잘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이 읽기에 거슬리는 문제가 두드러졌다.

세 번째 추천작인 『판토피아』는 서사가 풍부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 있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다. 부모가 아이들의 머릿속에 접속할 수 있다는 설정은 SF 영화에서 비슷하게 엿볼 수 있는 것이지만 이 작품이 특별하게 여겨진 까닭은 주인공 얼이를 비롯한 인물들의 생명력이었다. 얼이와 조히, 엄마와 판토피아의 대립은 조히의 정체가 드러나는 반전에 이를 때까지 매력적인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러나 조히와 얼이 사이의 비밀이 풀리면서 설득력이 빠르게 떨어진다. 특히 조히가 다시 얼이에게 접근하는 마무리 부분은 대단히 성급하여 독자를 납득시키기에 부족하다. ‘조히의 접근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주제에 대한 해석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뛰어난 설계를 꿈꾼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아직 완성이 덜 된 느낌이다.

네 번째 추천작은 『아빠와의 맛있는 시간』이다.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빠와 주인공 대로의 동굴 생활기를 다뤘다. 어딘가 어색했던 부자 관계가 서서히 회복되면서 느끼는 감정과 죽음을 앞둔 아빠에 대한 연민이 아릿하게 그려졌다. 재치가 넘치는 대사, 따뜻한 문장이 글을 읽는 내내 편안한 느낌을 준다. 맛과 냄새의 묘사도 뛰어나다. 그러나 인물이 처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주인공 대로의 태도는 비현실적일 만큼 유쾌하다. 주인공이 반드시 고뇌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절박한 처지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해 가는 부자의 사정은 가벼운 것이 아니다. 독자는 대로의 유쾌함 뒤에 감춰진 마음을 알고 싶을 텐데 그 부분이 몇 개의 낱말과 문장으로만 밋밋하게 나타난 점이 아쉽다. 작가는 결코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않고 ‘인물’을 통해서 독자를 설득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다.

다섯 번째 추천작은 『열두 살의 모나리자』였다. 씨름 선수 여학생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보기 드물게 건강한 작가의 시선이 돋보였다. 어지러운 성장기의 고민을 운동과 함께 떨어내고 자라나는 어린이의 당당한 모습이 작품 전편에서 느껴졌다. 동적인 장면을 다루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 있는 문장과 여유 있는 사건 진행은 느긋하고 씩씩한 주인공의 캐릭터와 겹쳐지면서 독자에게 밝고 활달한 에너지를 전해 준다. 동화가 지녀 온 오랜 미덕인 ‘따뜻함’을 충분히 발휘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죽음까지 고민했던 인물의 태도가 변하는 과정에서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는 점, 칠순 잔치에서 할아버지와 씨름을 벌이는 장면 등에서 부담스러운 설정이 보이는 점 등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또한 주인공 인물의 독창성도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여섯 번째 추천작은 시간을 파는 가게였다. 초등학교까지 입시 경쟁의 광풍이 밀려오고 아이들의 생활이 메말라 가는 현실에서 이 작품은 독창적인 방식으로 시의적절한 문제 제기를 던진다.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이 돈을 지불하고 사는 마지막 상품은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고속열차를 탈 수 있는 사람, 용역을 부릴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의 질에는 큰 차이가 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평등한 존재 조건이라고 믿었던 시간이 매매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시간을 파는 가게를 발견하여 시간을 산다. 하지만 현재의 시간을 얻기 위해 그 값으로 지불해야 하는 것은 과거의 행복했던 시간이다. 경쟁 사회에서 어린이들이라고 예외가 아닌 욕망의 딜레마를 파고든 이야기 구조가 탄탄하다. 특히 주인공의 갈등을 이면까지 치밀하게 다루려고 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주변 인물들의 매력이 주인공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이다. 세태를 반영하는 과정에서 자극적이거나 과도한 묘사가 튀어나오는 점도 걸렸다.

어린이문학의 어려움을 말할 때 ‘동화다움’이라는 낱말을 떼어 놓을 수 없다. ‘무엇이 문학인가’와 ‘무엇이 동화다운 것인가’의 교점에 작가들의 고민이 놓여 있을 것이다. 이는 내 작품의 존재 이유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뼈를 깎는 고통으로 작품의 존재 이유를 표현하고자 외로운 노력을 기울였던 모든 응모자 여러분께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언젠가 그 선명한 교점을 발견하는 작가로 우뚝 자리하시기를 기원한다.

 

예심 심사위원 : 김지은(동화작가, 어린이문학평론가), 김리리(동화작가), 고재은(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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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본심평

 

우리는 모두 상징계라는, 닫혀 있다고 가정된 세계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언어와 상징에 근거해서 말하고 듣고 읽고 쓰고 사유한다. 존재하지만 인식되지 않는 실재는 9.11 사태처럼, 2009년 용산 참사처럼 번쩍하는 순간 자기 모습을 드러내며 우리가 행복하다고 여기며 살고 있는 삶이 얼마나 황폐하고 거짓된 삶인지를, 우리의 상징계가 어떤 심각한 증상을 안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어떤 것의 보편화는 그 보편화를 부정하는 새로운 특질을 동시에 산출한다. 최근 나꼼수의 열풍처럼, 조중동과 방송3사의 장악으로 언론을 정권의 나팔수화하더라도 이 보편화를 부정하는 나꼼수와 같은 새로운 특질이 동시에 산출된다는 것이다. (한 번쯤 질문해 보라.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집단 따돌림이라는 증상은 왜 보편화되고 있으며 이 보편화를 부정하는 새로운 특질은 무엇인지를.)

우리는 이처럼 우리 상징계가 갖고 있는 병리적 증상을 날카롭게 간파하고, 이 보편화를 부정하는 새롭게 산출된 특질을 포착한 작품을 원한다. 상징계를 훌쩍 뛰어넘은, 우리 사회의 무의식이 분출되는, 포기되지 않은 욕망으로 활활 타오르는, 번개처럼 우리 삶을 비추는 실재의 흔적이 담긴 작품을 간절히 원한다.

문예창작과나 작가 학교 시스템이나 합평 모임 등의 형태에만 갇혀서는 이 벽을 쉽게 허물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모두 상징계에 갇혀 살고 있고, 이런 모임은 상징계의 흔적을 더 많이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과제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결국 외롭고도 고통스러운 자기와의 대면이 필연적일 것이다.

자기와의 대면이란 면벽수도가 아니다. ‘자기’는 거울에 비친 자신만이 아니다. 이 사회에 여기저기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지나온 아동기와, 우리의 미래의 모습과 우리 아이들의 모습 속에 ‘자기’가 있다.

 

올해에는 90여 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세분의 심사위원을 위촉하여 한 달에 걸쳐 예심이 진행되었다. 예심을 통과하여 본심에 오른 작품은 모두 6편이었다. 본심 위원 세 명은 지난 12월 17일 한자리에 모여 작품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예심평에서 꼼꼼히 공과를 다뤄 주었기에 본심평에서는 중복 서술되지 않도록 짧게 다루겠다.

 

『미카』는 겉모습을 중시하고 집착하는 요즘 사람들의 풍토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속도감 있는 서사와 서사 구성 능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인물들의 내면세계에 대한 좀 더 깊이 있고 세밀한 탐색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장편의 서사로서 무게감이 많이 가볍다. 따뜻한 마음씨로 예쁘게 그림을 그려 내는 것만으로 한 편의 문학작품이 탄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모든 심사자들이 동의한 바를 한 가지 더 짚자면, 한국 작가가 별다른 필연성 없이 서구적 모티프와 외국인 이름을 사용하여 서구적 느낌의 판타지 세계를 그리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아빠와의 맛있는 시간』은 간암에 걸린 아버지와 아들이 한 달간 산속에서 지낸다는 설정만큼은 독특했다. 그러나 인물과 서사가 모두 평이하고 특별한 것이 없었다. 특히 작가가 개성적으로 설정한 공간에 그만큼의 서사가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자기 주인공에 대한 탐구가 좀 더 깊어져야겠다. 아빠의 병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을 끝까지 회피함으로써 결국 싱거운 맛이 되고 말았다는 한 심사자의 지적도 새겨 두었으면 좋겠다.

 

「한발 뛰기 가나다」외 4편의 저학년 동화는 발상이나 상상력이 재미있고 친근한 단편동화들이었다. 오랜만에 본심에 오른 저학년 동화, 게다가 그토록 기다리던 단편이었기에 심사자들은 모두 반갑게 이 글을 맞이했다. 심사자들에 따라 이견이 있기는 했으나 「사탕은행」같은 작품은 아주 흥미로웠다. 서사의 자연스러움이나 제시하고 있는 작품의 주제의식이 매우 훌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학년 동화를 서술할 때 필요한 동화 언어 감각을 좀 더 익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유년기 아이들의 유희세계가 좀 더 다양하고 폭넓게 구축되길 바란다. 유년기 아이들의 심리적 흐름에 맞게 한 이야기에서는 한 가지 사건과 이야기에 집중하면 좋을 듯하다.

능청스러운 재미를 주는 글쓴이의 재능은 매우 훌륭해서, 앞으로 많은 글을 쓰다 보면 앞으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된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작위적으로 만들어 낸 듯한 구성들을 걷어 내고 이야기의 흐름상 가장 필요한 열쇠들이 빠진 것은 무엇이 있나도 스스로 헤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세 작품이 남았다. 앞서 세 작품은 논의가 쉽게 끝났지만 나머지 작품에 대해서는 이야기 거리가 많은 작품이었던지라 심도 있는 논의가 펼쳐졌다.

 

『열두 살의 모나리자』는 뚱뚱한 여자 아이가 씨름을 하게 되면서 자신감을 얻고 당당하게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어 가는 모습이 좋았다. 또 서사가 자연스럽고 속도감 있게 읽히는 장점을 가진 작품이었다. 우리 어린이문학에 ‘운동선수’를 주제로 장편화한 글도 많지 않아 이 또한 눈여겨보았으며, 인간에 대한 넉넉한 애정을 갖고 있는 작가의 시선도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다.

그러나 인물들은 전형적이고,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에피소드들은 새로움을 느낄 수 없었다. 이야기가 시종일관 예정된 수순으로 진행되고 독자가 쉽게 눈치챌 수 있는 결말로 이어진 것 때문에 전체적으로 평이한 느낌을 준 것 또한 아쉬웠다. 작품에 커다란 반전이나 독자의 가슴을 울려 줄 장치가 없다면, 글 전편에 잔잔한 재미와 더불어 사람과 삶에 대하여 한 번 더 눈길을 멈추게 하는 부분들이 곳곳에 빛나고 있어야 한다.

왕따의 처지로 몰려갈 주인공에게 애정을 가지고 그만의 힘을 찾아내는 따스한 작가의 시선으로 인해 심사자들을 잠시 멈칫거리게 했으나 너무나 무난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고민 끝에 수상에서 제외되었다.

덧붙여 이 아이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만큼 작품 속에서 심각한 사건이 연속되거나 심리적 갈등이 없었음에도 너무 쉽게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장면을 그린 것은 이 작품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했다는 점도 짚고 싶다. 물론 아이들 또한 심리적 고통의 깊이가 헤아릴 수 없을 경우 극단적 선택을 하고자 하며, 작품에서도 이를 형상화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 정도의 통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동화에서 다루기 힘든 극단적 사건을 그릴 때에는 그 배 이상의 설득력이 제시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꼭 잊지 말기 바란다.

작가는 경계에 서서 세상의 통념에 작은 균열을 내며 나아가는 존재이다. 상식 수준의 서사와 상식 수준의 인물과 깨달음으로는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작가로서 갖고 있는 자신의 통념이 무엇인지를 아프게 물어가며 더 정진하기를 바란다.

 

『판토피아』는 작가가 얼마나 공들여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 냈는지가 잘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가상 세계 판토피아는 정교하게 구축되어 있었고, 판토피아와 현실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야 하는 아이가 갖는 의문과 고민을 중심으로 한 서사에도 충분히 공감했다. 작가가 그려 낸 세계처럼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어쩌면 거대한 매트릭스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겪는 통과의례적인 일련의 일조차도. 그러나 작가가 이 세상에 던진 질문과 그러한 질문을 위해 그려 낸 세계가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어렵지 않을까 하는 점과 가상 세계에 비해 현실 세계를 그려 내는 데에는 치밀함이 부족하여 작품을 읽는 데 방해가 되었다.

미래를 배경으로 한 현실계와 현실계 속의 환상계인 판토피아, 그리고 또 다른 장치인 유토피아를 연결하는 논리는 꼼꼼하게 제시되었지만 이 작품의 가장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은 환상계가 아니라 이를 움켜쥐고 있는 현실이어야 한다. 작가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현실을 어떻게 장악할 것인가에 대하여 자기 입론을 좀 더 세워야 할 것이다.

정교하게 구성된 환상 세계에 비해 이 작품을 쥐고 있는 현실 인식의 아쉬움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수상에서 제외되었다. 물론 우리는 이것이 작가가 가진 인식의 힘이 부족해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좀 더 다듬고 세공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이 가지고 있는 매력으로 인해 결정 직전까지 가장 많은 고민을 했다는 점을 꼭 알아주기 바란다. 작가의 건투를 빈다.

 

『시간을 파는 가게』는 미래를 위하여 현재를 희생하거나, 다른 사람(대부분 부모)의 만족을 위하여 내가 원하지 않는 공부를 해야만 하는 요즘 우리나라 청소년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다.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탐색은 작가가 지녀야 할 의무라고 할 때, 이 작가의 태도는 참으로 귀하다고 하겠다.

하루 10분의 시간을 사기 위해 자신의 행복한 기억을 지불하는 것은 순전히 1등을 위해서이고, 이는 자기 내부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엄마의 욕망, 사회의 시스템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는 이 작품은 작가의 문제의식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보여 준다. 그 문제의식에 걸맞게 구성도 문장도 자연스럽고 술술 읽힌다. 지금을 살아야 한다고 조용히 속삭이는 작가의 목소리도 이 장편을 장악하는 주제로 손색이 없었다. 현실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의 아픔에 접속하여 그들의 소망을 자연스러운 서사로 그려 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참으로 소망스러웠다. 그래서 우리 심사위원 전원은 이견 없이 전원 일치로 『시간을 파는 가게』를 수상작으로 쉽게 결정하였다.

하지만 이 작품을 대상으로 할 것인지 우수상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긴 시간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이 작년에 응모하여 본심에서 탈락한 작품이었음에도 작년에 지적된 한계를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뛰어넘고 있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두 번 연거푸 응모하게 되면 핸디캡을 안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에 비해 환골탈태의 수준이라 할 만큼 작품이 달라지지 않으면 더 까다로워진 심사자의 입맛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논의된 것처럼, 시간을 사고판다는 설정이 대중문화에서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라는 점과 인물의 내면 심리와 캐릭터의 형상화가 약하다는 점이 여전하다고 지적되었다.

그래서 우리 심사자 전원은 이 작품이 갖고 있는 풍부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작가에게 좀 더 긴장감을 주고 싶다는 의미로써 우수상을 주어 격려하기로 결정하였다.

한번 응모하여 탈락한 공모제에는 다시 응모하기 어렵다는 점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해 본심 탈락이라는 아픔을 딛고 그 문제점을 스스로 극복하여 다시 응모한 수상자의 용기와 작가의 역량에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에 응모한 모든 이들에게도 감사의 말씀과 노고에 대한 박수를 보낸다. 세상은 질문하는 자에게만 응답을 한다. 나에게, 세상에 거듭 질문하라. 우리는 당신들의 질문과 응답을 받아 안을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다.

 

 

본심 심사위원 : 장주식(동화작가), 임정자(동화작가), 유영진(어린이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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