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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학
朱子學
기노시타 데쓰야
조영렬
교유서가
2019년 1월 28일 발행
324쪽 | 135*205 | 양장
978-89-546-5482-1
정상
20,000원

"理"야말로 주자학의 최종적 핵심개념이다
주희가 말하는 "理"란 무엇인가?
주희의 텍스트를 현대의 언어로 해석하고 말한다

"주자학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주자를 선각으로 삼아 사람의 진리,
인간의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배움"이라 이해하고 싶습니다."


주희는 공자를 비롯한 선각先覺을 어떻게 읽고 무엇을 생각했는가? 이 책은 "學, 性, 理, 心, 善"이라는 주희 텍스트의 핵심 키워드를 규명하면서 주자학의 근본으로 안내한다. 저자는 주자학의 근본 테마는 "사람의 성性은 모두 선善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 사실에 대해서 진심으로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 사실에 입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제1장에서 썼고, 제2장에서는 "사람의 성은 모두 선하다"고 할 때 "성性"이란 무엇인가, 이어서 제3, 4장에서는 그 "성"에 대해서 "성은 곧 리"라고 할 때 그 "리"란 무엇인가, 제5장에서는 "성"에 포함되고 갖추어진 "인의예지라는 리"는 "심心"에서 드러나는 "감응"의 작용으로 발효되는 것인데, 그렇다면 "심心"이란 무엇인가, "인심"과 "도심"이란 무엇인가를 다룬다. 저자는 "주자학"이라는 "배움"의 목적은 "주희가 행하고 보여준 학문"을 과거에 완결된 역사적 대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고, 해설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주희를 선각으로 삼고, 주희의 텍스트에서 계시를 받아, 지금 현재 살아 있는 "나"의 사람으로서의 진리, 인간으로서의 진실에 눈떠가는 것이야말로 "주자학"이라는 작업의 실질이자 목적이라고 강조한다.

주희가 말하는 "학學"이란?
저자는 『논어』 첫머리에 등장하는 "학"에 대한 주희의 주석도 ""학學"은 굳이 말하자면 "본받는다"라는 뜻"이라며 "학"의 근원적 의미를 밝힌 뒤, "본받는다"라는 근원적인 의미에서 본 "학"이라는 작업의 전모를 해설하고, "사람의 성性은 모두 선하다"라는 인간의 진실을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제시한다. 그리고 그 진실에 사람이 눈뜨는, 깨닫는 데는 선후가 있다고 말한다. 먼저 깨달은 이가 "선각"이고, 나중에 깨달은 이가 "후각"이다. 이같은 "학"에 대한 주희의 주석은 공자가 개척한 "학"이라는 작업을 계승한 주희 자신의 "학"의 전모를 간결하게 밝히는 것이기도 하다. 주희의 "학"에서 "본받을" 대상은 우선 공자이고, 다음으로 공자의 정전正傳을 전한 안연(안회)과 증삼(증자)이고, 다음으로 증자에게서 전傳을 얻은 자사이며, 다시 자사에게서 전을 얻은 맹자다. 주희의 텍스트로는 흔히 『사서집주』라 부르는 네 가지 주석서를 들 수 있는데, 공자가 말한 "학"에 대해 주희가 행한 해설이, 공자에게서 유래한 "학"을 "본받은" 주희 자신의 "학"의 전모에 대한 해설이기도 하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리理"라는 말의 역사
"리理"라는 말은 주자 혹은 주자학의 독자적 언어는 물론 아니었다. 저자는 "리"를 "옥을 다듬는 것"이라 풀이했던 허신의 『설문해자』나 그것에 대한 청조고증학의 태두 단옥재의 주석을 참조하여 중국에서의 "리"의 역사를 추적한다. 저자는 "리"란 어떤 일이 문자 그대로 무리 없이 진행되려면 맞추어야 하는, 따라가야 하는, 그 일의 "결" 혹은 "절차", 현대어로 하자면 "프로그램"을 의미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을 이어간다. 당나라 제3대 황제 고종高宗 "이치李治"의 휘諱가 "치治"였기 때문에, 이후 150년 넘게 "치治"라는 문자의 사용이 금지되었고, 그것을 대신하는 자로 "리理"를 일반적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당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의 휘諱 "세민世民", 즉 "세世"와 "민民" 두 글자가 당나라가 존속하는 동안 사용이 금지되었다. "세世"는 "대代", "민民"은 "인人"으로 바꾸어 썼다. 따라서 그전에는 보통 "치민治民"이라 말하고 썼던 것을 "리인理人"이라 말하고 쓰도록 강제했다. ""치治"가 타동사로 쓰이는 "치민治民" "치천하治天下" 같은 어구도 중국고전에 흔히 나타나지만, 그 경우의 "치"의 의미도 적극적으로 "민民"이나 "천하天下"에 개입하여 질서를 세운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무 일 없이 평온하게 "안정되어 있는" 상태를 교란하는(亂) 요인에 주의하면서 그 본래의 "안정되어 있는 상태"에 맡겨둔다는 감각이 기본에 깔려 있습니다. 이러한 감각에서 "치治"는 중국사상사의 핵심부분을 이루는 기본단어였습니다. 그 말이 말하자면 사고事故와 같은 형태로 사용이 금지되었던 것입니다. 대체어로 "리理"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리理"를 "치治"의 대체어로 의식하며 사용했을지도 모르지만, 150년간이나 그런 상태가 이어지자, 당연히 혼란이 빚어졌습니다. 중국사상사의 기본단어였던 "치治"의 자리를 "리理"가 본래의 어감을 지닌 채 대신 차지해버린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이어받아, 송대宋代에 "리理"라는 말이 사람들이 사상적 작업을 할 때 쓰는 기본단어가 되었습니다. 주자학의 "리", 주희의 "학學"의 핵심개념인 "리"도 이러한 역사적 경위를 바탕으로 성립된 것이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251쪽)

주자학 연구자가 "리"를 오해하는 원인
"리"야말로 주자학의 최종적인 핵심개념이다. 그렇다면 주희가 말하는 "리"란 무엇일까? 저자는 "성"에 포함되고 갖추어진 만리萬理의 대강大綱인 "인의예지"를 "심리 메커니즘" 혹은 "심리 프로그램"으로 간주하는 해석, 그러니까 "리"를 "메커니즘"이나 "프로그램", "구조" 등으로 파악한다. 그런데 "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한 것으로 생각되는 주희의 텍스트에서 "리"와 관련된 것으로서 표준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물物"이라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일본의 학교교육을 받은 이들은 "物" 자를 "모노"라 읽고 "어떤 형태를 갖춘 것, 물건"으로 이해하고, "事" 자를 "고토"라 읽고 "일, 사태"로 이해합니다. 이것은 어릴 적에 주입받은, 거의 무자각적·반사적으로 작동하는 지식이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학교교육을 받은 일본인이 주희의 "리理"와 관련된 한문 텍스트를 뜻으로 새겨 읽으면(訓讀), 거기에 등장하는 "物" 자를 무자각적·반사적으로 "모노"라 읽고 "어떤 형태를 갖춘 것, 물건"으로 이해해버립니다. 저는 예전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일본의 주자학자, 주자학 연구자가 "리"에 대해 오해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리"는 "물건(物)"과 관련된 것이라는 오해입니다. 그리고 이 오해가 주자학에 대한 이해를 크게 그르치고 있습니다."(137-138쪽)

1950년 생. 2014년 졸. 교토 대학 문학부 졸업. 동 대학원 문학연구과 박사과정 수료. 오카야마 대학 문학부 교수. 교토 대학 총합지구환경학연구소 교수. 교토 대학 총합지구환경학연구소 특별객원교수. 저서로 청나라 고증학과 그 시대: 청대의 사상』 『주희를 다시 읽는다』 『주희 철학의 시축視軸: 주희를 다시 읽는다()』 『주자학의 위치』 『주자: ‘할일힘씀의 철학』 『청대淸代 학술과 언어학: 고음학古音學의 사상과 계보등이 있다.

머리말

제1장 "학學"에 대하여
제2장 "성性"에 대하여
제3장 "리理"에 대하여
제4장 "리理"에 대하여―이어서
제5장 "심心"에 대하여
제6장 "선善"에 대하여

칼럼
1 주희라는 사람
2 주자학 텍스트
3 "리理"라는 말의 역사

후기
역자 후기
 ‘理’야말로 주자학의 최종적 핵심개념이다
주희가 말하는 ‘理’란 무엇인가?
주희의 텍스트를 현대의 언어로 해석하고 말한다
 
“주자학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주자를 선각으로 삼아 사람의 진리, 
인간의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배움’이라 이해하고 싶습니다.”
 
 
주희는 공자를 비롯한 선각先覺을 어떻게 읽고 무엇을 생각했는가? 이 책은 ‘學, 性, 理, 心, 善’이라는 주희 텍스트의 핵심 키워드를 규명하면서 주자학의 근본으로 안내한다. 저자는 주자학의 근본 테마는 ‘사람의 성性은 모두 선善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 사실에 대해서 진심으로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 사실에 입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제1장에서 썼고, 제2장에서는 ‘사람의 성은 모두 선하다’고 할 때 ‘성性’이란 무엇인가, 이어서 제3, 4장에서는 그 ‘성’에 대해서 ‘성은 곧 리’라고 할 때 그 ‘리’란 무엇인가, 제5장에서는 ‘성’에 포함되고 갖추어진 ‘인의예지라는 리’는 ‘심心’에서 드러나는 ‘감응’의 작용으로 발효되는 것인데, 그렇다면 ‘심心’이란 무엇인가, ‘인심’과 ‘도심’이란 무엇인가를 다룬다. 저자는 ‘주자학’이라는 ‘배움’의 목적은 ‘주희가 행하고 보여준 학문’을 과거에 완결된 역사적 대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고, 해설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주희를 선각으로 삼고, 주희의 텍스트에서 계시를 받아, 지금 현재 살아 있는 ‘나’의 사람으로서의 진리, 인간으로서의 진실에 눈떠가는 것이야말로 ‘주자학’이라는 작업의 실질이자 목적이라고 강조한다.
 
주희가 말하는 ‘학學’이란?
저자는 『논어』 첫머리에 등장하는 ‘학’에 대한 주희의 주석도 “‘학學’은 굳이 말하자면 ‘본받는다’라는 뜻”이라며 ‘학’의 근원적 의미를 밝힌 뒤, ‘본받는다’라는 근원적인 의미에서 본 ‘학’이라는 작업의 전모를 해설하고, ‘사람의 성性은 모두 선하다’라는 인간의 진실을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제시한다. 그리고 그 진실에 사람이 눈뜨는, 깨닫는 데는 선후가 있다고 말한다. 먼저 깨달은 이가 ‘선각’이고, 나중에 깨달은 이가 ‘후각’이다. 이같은 ‘학’에 대한 주희의 주석은 공자가 개척한 ‘학’이라는 작업을 계승한 주희 자신의 ‘학’의 전모를 간결하게 밝히는 것이기도 하다. 주희의 ‘학’에서 ‘본받을’ 대상은 우선 공자이고, 다음으로 공자의 정전正傳을 전한 안연(안회)과 증삼(증자)이고, 다음으로 증자에게서 전傳을 얻은 자사이며, 다시 자사에게서 전을 얻은 맹자다. 주희의 텍스트로는 흔히 『사서집주』라 부르는 네 가지 주석서를 들 수 있는데, 공자가 말한 ‘학’에 대해 주희가 행한 해설이, 공자에게서 유래한 ‘학’을 ‘본받은’ 주희 자신의 ‘학’의 전모에 대한 해설이기도 하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리理’라는 말의 역사
‘리理’라는 말은 주자 혹은 주자학의 독자적 언어는 물론 아니었다. 저자는 ‘리’를 ‘옥을 다듬는 것’이라 풀이했던 허신의 『설문해자』나 그것에 대한 청조고증학의 태두 단옥재의 주석을 참조하여 중국에서의 ‘리’의 역사를 추적한다. 저자는 ‘리’란 어떤 일이 문자 그대로 무리 없이 진행되려면 맞추어야 하는, 따라가야 하는, 그 일의 ‘결’ 혹은 ‘절차’, 현대어로 하자면 ‘프로그램’을 의미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을 이어간다. 당나라 제3대 황제 고종高宗 ‘이치李治’의 휘諱가 ‘치治’였기 때문에, 이후 150년 넘게 ‘치治’라는 문자의 사용이 금지되었고, 그것을 대신하는 자로 ‘리理’를 일반적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당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의 휘諱 ‘세민世民’, 즉 ‘세世’와 ‘민民’ 두 글자가 당나라가 존속하는 동안 사용이 금지되었다. ‘세世’는 ‘대代’, ‘민民’은 ‘인人’으로 바꾸어 썼다. 따라서 그전에는 보통 ‘치민治民’이라 말하고 썼던 것을 ‘리인理人’이라 말하고 쓰도록 강제했다. “‘치治’가 타동사로 쓰이는 ‘치민治民’ ‘치천하治天下’ 같은 어구도 중국고전에 흔히 나타나지만, 그 경우의 ‘치’의 의미도 적극적으로 ‘민民’이나 ‘천하天下’에 개입하여 질서를 세운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무 일 없이 평온하게 ‘안정되어 있는’ 상태를 교란하는(亂) 요인에 주의하면서 그 본래의 ‘안정되어 있는 상태’에 맡겨둔다는 감각이 기본에 깔려 있습니다. 이러한 감각에서 ‘치治’는 중국사상사의 핵심부분을 이루는 기본단어였습니다. 그 말이 말하자면 사고事故와 같은 형태로 사용이 금지되었던 것입니다. 대체어로 ‘리理’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리理’를 ‘치治’의 대체어로 의식하며 사용했을지도 모르지만, 150년간이나 그런 상태가 이어지자, 당연히 혼란이 빚어졌습니다. 중국사상사의 기본단어였던 ‘치治’의 자리를 ‘리理’가 본래의 어감을 지닌 채 대신 차지해버린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이어받아, 송대宋代에 ‘리理’라는 말이 사람들이 사상적 작업을 할 때 쓰는 기본단어가 되었습니다. 주자학의 ‘리’, 주희의 ‘학學’의 핵심개념인 ‘리’도 이러한 역사적 경위를 바탕으로 성립된 것이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251쪽)
 
주자학 연구자가 ‘리’를 오해하는 원인
‘리’야말로 주자학의 최종적인 핵심개념이다. 그렇다면 주희가 말하는 ‘리’란 무엇일까? 저자는 ‘성’에 포함되고 갖추어진 만리萬理의 대강大綱인 ‘인의예지’를 ‘심리 메커니즘’ 혹은 ‘심리 프로그램’으로 간주하는 해석, 그러니까 ‘리’를 ‘메커니즘’이나 ‘프로그램’, ‘구조’ 등으로 파악한다. 그런데 ‘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한 것으로 생각되는 주희의 텍스트에서 ‘리’와 관련된 것으로서 표준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물物’이라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일본의 학교교육을 받은 이들은 ‘物’ 자를 ‘모노’라 읽고 ‘어떤 형태를 갖춘 것, 물건’으로 이해하고, ‘事’ 자를 ‘고토’라 읽고 ‘일, 사태’로 이해합니다. 이것은 어릴 적에 주입받은, 거의 무자각적·반사적으로 작동하는 지식이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학교교육을 받은 일본인이 주희의 ‘리理’와 관련된 한문 텍스트를 뜻으로 새겨 읽으면(訓讀), 거기에 등장하는 ‘物’ 자를 무자각적·반사적으로 ‘모노’라 읽고 ‘어떤 형태를 갖춘 것, 물건’으로 이해해버립니다. 저는 예전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일본의 주자학자, 주자학 연구자가 ‘리’에 대해 오해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리’는 ‘물건(物)’과 관련된 것이라는 오해입니다. 그리고 이 오해가 주자학에 대한 이해를 크게 그르치고 있습니다.”(137-138쪽)
 
 
♣ 책 속으로
 
말년에 주희의 ‘학’은 중앙조정을 좌지우지하던 한탁주韓侂冑에 의해 ‘위학僞學’이라는 낙인이 찍혀 탄압당했습니다. 이른바 ‘경원위학의 금(慶元僞學之禁)’입니다. 생각해보면 주희의 ‘학’의 본체는 사상탄압 아래에서 은밀히 지켜지고 전해진 정이의 ‘학’에 있으므로, 당연히 강압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체제를 날카롭고 심도 있게 비판하는 성질을 뿌리에 간직하고 있었을 터이고, 주희 자신도 그것에 대해 정확하게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70쪽)
 
개미를 모아볼 셈으로 설탕을 가져와서 개미가 다니는 길 한가운데에 작은 언덕을 만들어주었지만, 개미는 본 체도 않고, 즉 아무런 변화도 없이 설탕 언덕을 넘어서 오갔습니다. 금방 달려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의외였지요. 그래서 문득 생각이 나서 컵에 물을 담아와 몇 방울 설탕 언덕 위에 떨구어주자마자 개미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 설탕이 그 작용의 ‘뿌리’입니다. 그렇지만 물이 없으면 그 ‘뿌리’는 싹을 틔우지 않는다. 그 작용의 성능은 발휘되지 않는다. ‘리’와 ‘기’도 그러한 관계라고 저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110-111쪽)
 
이들 주해·해설, 특히 중심을 이루는 ‘사서四書’에 대한 주해·해설은 정이가 주해한 담론에서 결정적인 계발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주희의 ‘학’은 ‘사서’의 텍스트, 『역경』이나 『서경』 『시경』의 텍스트, 그것들에 대한 역대 주석자들의 텍스트, 특히 정호·정이가 주해한 텍스트를 대조하여, 일관되고 정치한 해석을 발견하려는, 순수하게 학문적인, 정밀靜謐하고 격리된 지적 작업을 통한 ‘학’이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128-129쪽)
 
여기에 나오는 ‘사시행四時行, 백물생百物生’과 ‘성인일동일정聖人一動一靜’을 나란히 두고, 그것들을 모두 ‘천리유행天理流行’ 자체로 여기며, ‘성인일동일정’을 ‘역천이이亦天而已’라고 단정하는 통찰의 호흡은, 제1장에서 인용했던 「몽전기」가 전하는 주희의 마지막 강의의 언어 말미에 “성인응만사聖人應萬事, 천지생만물天地生萬物, 직이이의直而已矣”(성인은 만사에 응하고, 천지는 만물을 낳는다. 그 작용은 모두 곧음이라는 한 마디로 다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통찰의 호흡과 동일합니다. 말하자면 주희의 가장 깊은 통찰이 여기에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164쪽)
 
‘인욕지사人欲之私’와 ‘천리지공天理之公’이 서로 맞서고 있습니다. ‘인욕지사’와 관련된 ‘사욕私欲’이라는 말도 흔히 나옵니다. 이것은 따로 예를 들 것까지도 없겠습니다. 주희의 머릿속에서 ‘사私’와 ‘욕欲’이 강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말이겠습니다. ‘욕欲’의 대표로 거론되는 것은 ‘음식飮食·남녀男女의 욕欲’입니다. 『예기』 「예운禮運」 편의 “음식飮食·남녀男女, 사람의 가장 큰 욕망이 여기에 있다”(飮食男女, 人之大欲存焉)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입니다. (283쪽)
 
이것이야말로 주희가 말하는, 혹은 주희가 이해한 ‘학學’의 진정한 목표이자 동기였습니다. 성인이 되는 것 자체가 동기가 아니었습니다.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천지의 화육 작용,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을 낳고 기르는 천지의 작용, 그것의 힘이 넘치고 질리는 법 없이, 생명이 있는 타자, 즉 만물을 계속 낳고 그 타자(생명)를 계속 지켜 ‘성선善性’을 〈나〉도 〈내〉 ‘성性’으로 이어받고 있다. 즉 〈내〉 ‘성’은 ‘선하다’. 그 사실에 눈뜨고, 〈내〉 ‘성’의 ‘선성’을 〈내〉가 태어난 처음 그대로 실현하는 것, 그리하여 천지의 ‘화육’ 작용을 돕는 것, 즉 ‘화육’ 작용에 참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주희의 ‘학’의 진정한 목표이자 동기였다, 그런 말이겠습니다. (3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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