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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
정민
글항아리
2018년 11월 19일 발행
436쪽 | 135*200 | 무선
978-89-6735-556-2 03
정상
22,000원

어둠 속에서 걸어나온 실학자 이덕리
『동다기』와 『상두지』의 행간 속에서
몸집 큰 거인의 면모가 점점 윤곽을 갖춘다

이덕리를 추적한 지 10여 년……
역사에서 흔적이 모조리 지워진 한 패망한 가문의 후손
그의 저술은 다산의 이름으로 바뀌어 후대에 전해졌고
그의 자취를 쫓던 이들은 제때 이름을 돌려주지 못했다
무려 200여 년 만에 밝혀진 저간의 사정과 실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숨 가쁜 고증 추적기!


10여 년간의 발굴담, 이덕리를 추적하다

『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는 한 학자의 고문서 발굴에 얽힌 10여 년간의 추적담이자 고문서 저자 이덕리李德履(1725~1797)의 파란만장한 인생사와 학자적 면모를 밝히는 책이다. 문서 발굴의 기회는 우연과 운명이라는 외투를 걸친 채 저자에게 찾아온다. 그건 뜻밖의 횡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 어리석은 실수를 일으키고 다시 만회할 기회까지 안겨주는 스펙터클의 현장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발굴에서 집필까지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고, 이로써 조선 후기 실학의 한 귀퉁이를 새롭게 복원해내는 실적도 이뤘다. 부수적인 것이지만, 그 안에 얽힌 감정을 들여다보자면 흥분과 죄책감, 의무감, 감탄, 미안함과 고마움이 서려 있었다.
때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 정민 교수는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탈고하는 과정에서 다산의 기운을 전해 받고자 강진에 내려간다. 내심 떡차에 관한 다산 간찰의 실물도 봤으면 하는 소망을 품고. 이처럼 공부하는 학자의 의욕을 헤아려주면 참 좋겠지만, 간찰 소장자는 뜻밖에도 자료 일체를 공개하려들지 않았다. 여러 시간을 달려 간 길이라 그대로 접을 순 없었다. 중간에 다리를 놔줄 인물이 마침 강진에 있어 저자는 어렵사리 소장자 노인의 방안에 몇 뼘 간격을 두고 마주앉게 된다. 그리고 이 첫 만남은 두 사람이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실학 저술의 발굴로 이어진다. 바로 『동다기東茶記』와 『상두지桑土志』다.
그동안 연구자들은 하나같이 두 저술의 집필자는 "다산 정약용"이라고 말해왔다. 그 오인의 역사는 길다. 글 맨 끝에 약간의 힌트만 남긴 채 거의 익명으로 전해진 데다 저술의 중량감과 존재감이 커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까지도 다산의 저술이라는 것에 한 치의 의심도 제기되지 않았다. 이에 저자 정민 교수는 이 책의 주인공을 무덤 속에서 불러내 그 이름값을 되찾아주자고 결심하게 된다. 220년간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원저자의 한도 달래주리라 생각하며.
자료를 접하고, 수소문하고, 해독하고, 글쓴이에 관한 정보를 뒤적거리면서 들뜨긴 했으나 신중히 접근하려 했다. 그럼에도 저자는 중간에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애초에 "전의리全義李"라고 적힌 책의 집필자가 "이덕리"라는 것까지는 여러 터널을 통과하면서 밝혀냈지만, 『동다기』와 『상두지』를 쓴 이덕리보다 세 살 연하인, 1728년생의 동명이인 이덕리가 저술의 주인공이라며 논문으로 발표했던 것이다. 이 일은 1725년생인 이덕리 입장에서 보면 통탄할 만한 것이었다. 지난 220년간 세상의 빛을 한 번도 받지 못했고 후손들 역시 자기 선조의 발자취를 전혀 모르던 와중인데, 논문에서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죄스런 마음을 감추기 힘들었다.(전의 이씨 23세 청강공파 "덕德"자 항렬 계보에는 비슷한 시기에 세 명의 서로 다른 이덕리가 존재했다. 게다가 어찌된 셈인지 세 사람 모두 족보상에서 이덕리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기재되었다.)
하지만 발굴자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도 없었던 게, 이덕리는 그 형이 대역죄인인 까닭에 연좌되어 유배지에서 20여 년을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그 자신 세상에 절대 드러나지 않는 방법으로 글을 썼고, 책 말미에 희미한 흔적만 남겼다. 집안 후손들도 미처 몰랐던 사실인 데다, 후대 학자들 역시 그 덫에 걸려 헤매고, 오해하고, 다시 바로잡는 해프닝까지 벌어진 것이다.
길디긴 발굴 과정이었지만, 이덕리는 뛰어난 실학자적 면모로 인해 충분히 양지에 드러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상두지』가 국방 관련 제안서라면 『동다기』는 차 전문서로서의 차에 관한 세부 내용은 물론이고 국방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재원이 될 만한 방책을 내놓기도 한다. 이 두 저술로 인해 이덕리는 18세기 지성사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
박지원의 산문을 꼼꼼히 읽어 『비슷한 것은 가짜다』와 『고전 문장론과 연암 박지원』을 펴냈다. 18세기 지식인에 관한 연구로는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다산의 제자 교육법』 『다산 증언첩』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미쳐야 미친다』 『삶을 바꾼 만남』 등이 있다. 또 청언소품淸言小品에 관심을 가져 『일침』 『조심』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 『마음을 비우는 지혜』 『내가 사랑하는 삶』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돌 위에 새긴 생각』 『다산어록청상』 『성대중 처세어록』 『죽비소리』 등을 펴냈다. 이 밖에 옛글 속 선인들의 내면을 그린 『책 읽는 소리』 『스승의 옥편』 등의 수필집과 한시 속 신선 세계의 환상을 분석한 『초월의 상상』, 문학과 회화 속에 표상된 새의 의미를 찾은 『새 문화사전』, 조선 후기 차 문화의 모든 것을 담아낸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 백운동 별서정원의 문화적 잠재 가치를 담아낸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 등을 썼다. 아울러 한시의 아름다움을 탐구한 『한시 미학 산책』과 『우리 한시 삼백수』, 사계절에 담긴 한시의 시정을 정리한 『꽃들의 웃음판』, 어린이들을 위한 한시 입문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도 펴냈다.
서문: 알 수 없는 일
프롤로그: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 실학자, 이덕리

제1부 이덕리를 찾아서
1. 세 명의 이덕리와 만나다
2. 나를 돌려다오, 제기 하나로 남은 무덤
3. 이덕사와 이덕리 형제
4. 끔찍했던 날의 기억
5. 유배지의 나날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

제2부 이덕리의 저작과 실학 정신
1. 국방의 경륜을 담은 대표 저술, 『상두지』
2. 이덕리의 시문집 『강심』과 『강심만록』
3. 강력한 금연책 시행을 건의한 「기연다」

제3부 이덕리, 차와 만나다
1. 이덕리와 차에 얽힌 인연
2. 표류선이 깨운 미각

제4부 『동다기』(「기다」) 이본 검토
1. 명칭 논란과 3종 이본 -『동다기』인가 「기다」인가?
2. 법진본 『다경(합)』에 대하여
3. 법진본 「기다」의 내용과 구성
4. 백운동본 「기다」의 내용과 구성
5. 의암본 「기다」의 내용과 구성

제5부 『동다기』(「기다」) 원전 교감 및 주해

「다설茶說」 5조
1. 황량한 들판의 평범한 초목
2. 중국차의 역사와 북방 오랑캐
3. 차에 무지한 조선과 차 무역 제안
4. 제물을 버는 방법
5. 차 무역 정책 건의

「다사茶事」 14조
1. 우전차와 우후차
2. 일창일기
3. 고구사와 만감후
4. 떡차와 엽차
5. 차 맛과 가미
6. 우리 차의 효능
7. 차의 여러 효능
8. 냉차의 해독
9. 차는 잠을 적게 한다
10. 대숲차의 효험
11. 8말의 작설을 달여 고약을 만든 동복 현감
12. 차를 따는 시기
13. 차의 이익
14. 황차와 아차
소결

「다조茶條」 7조
1. 보고와 준비
2. 인력 동원과 채취 및 보상 방법
3. 차의 가격과 예상 수익
4. 차 무역이 기회가 되는 이유
5. 차시의 운영 방법
6. 수익금의 활용 방안
7. 잠을 적게 하는 차의 효능
백운동본 필사자 후기

에필로그_끝나지 않은 이야기
부록
어둠 속에서 걸어나온 실학자 이덕리 
『동다기』와 『상두지』의 행간 속에서
몸집 큰 거인의 면모가 점점 윤곽을 갖춘다

이덕리를 추적한 지 10여 년…… 
역사에서 흔적이 모조리 지워진 한 패망한 가문의 후손 
그의 저술은 다산의 이름으로 바뀌어 후대에 전해졌고
그의 자취를 쫓던 이들은 제때 이름을 돌려주지 못했다  
무려 200여 년 만에 밝혀진 저간의 사정과 실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숨 가쁜 고증 추적기! 
 
 
10여 년간의 발굴담, 이덕리를 추적하다 
 
『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는 한 학자의 고문서 발굴에 얽힌 10여 년간의 추적담이자 고문서 저자 이덕리李德履(1725~1797)의 파란만장한 인생사와 학자적 면모를 밝히는 책이다. 문서 발굴의 기회는 우연과 운명이라는 외투를 걸친 채 저자에게 찾아온다. 그건 뜻밖의 횡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 어리석은 실수를 일으키고 다시 만회할 기회까지 안겨주는 스펙터클의 현장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발굴에서 집필까지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고, 이로써 조선 후기 실학의 한 귀퉁이를 새롭게 복원해내는 실적도 이뤘다. 부수적인 것이지만, 그 안에 얽힌 감정을 들여다보자면 흥분과 죄책감, 의무감, 감탄, 미안함과 고마움이 서려 있었다. 
때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 정민 교수는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탈고하는 과정에서 다산의 기운을 전해 받고자 강진에 내려간다. 내심 떡차에 관한 다산 간찰의 실물도 봤으면 하는 소망을 품고. 이처럼 공부하는 학자의 의욕을 헤아려주면 참 좋겠지만, 간찰 소장자는 뜻밖에도 자료 일체를 공개하려들지 않았다. 여러 시간을 달려 간 길이라 그대로 접을 순 없었다. 중간에 다리를 놔줄 인물이 마침 강진에 있어 저자는 어렵사리 소장자 노인의 방안에 몇 뼘 간격을 두고 마주앉게 된다. 그리고 이 첫 만남은 두 사람이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실학 저술의 발굴로 이어진다. 바로 『동다기東茶記』와 『상두지桑土志』다. 
그동안 연구자들은 하나같이 두 저술의 집필자는 ‘다산 정약용’이라고 말해왔다. 그 오인의 역사는 길다. 글 맨 끝에 약간의 힌트만 남긴 채 거의 익명으로 전해진 데다 저술의 중량감과 존재감이 커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까지도 다산의 저술이라는 것에 한 치의 의심도 제기되지 않았다. 이에 저자 정민 교수는 이 책의 주인공을 무덤 속에서 불러내 그 이름값을 되찾아주자고 결심하게 된다. 220년간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원저자의 한도 달래주리라 생각하며.  
자료를 접하고, 수소문하고, 해독하고, 글쓴이에 관한 정보를 뒤적거리면서 들뜨긴 했으나 신중히 접근하려 했다. 그럼에도 저자는 중간에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애초에 ‘전의리全義李’라고 적힌 책의 집필자가 ‘이덕리’라는 것까지는 여러 터널을 통과하면서 밝혀냈지만, 『동다기』와 『상두지』를 쓴 이덕리보다 세 살 연하인, 1728년생의 동명이인 이덕리가 저술의 주인공이라며 논문으로 발표했던 것이다. 이 일은 1725년생인 이덕리 입장에서 보면 통탄할 만한 것이었다. 지난 220년간 세상의 빛을 한 번도 받지 못했고 후손들 역시 자기 선조의 발자취를 전혀 모르던 와중인데, 논문에서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죄스런 마음을 감추기 힘들었다.(전의 이씨 23세 청강공파 ‘덕德’자 항렬 계보에는 비슷한 시기에 세 명의 서로 다른 이덕리가 존재했다. 게다가 어찌된 셈인지 세 사람 모두 족보상에서 이덕리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기재되었다.)
하지만 발굴자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도 없었던 게, 이덕리는 그 형이 대역죄인인 까닭에 연좌되어 유배지에서 20여 년을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그 자신 세상에 절대 드러나지 않는 방법으로 글을 썼고, 책 말미에 희미한 흔적만 남겼다. 집안 후손들도 미처 몰랐던 사실인 데다, 후대 학자들 역시 그 덫에 걸려 헤매고, 오해하고, 다시 바로잡는 해프닝까지 벌어진 것이다. 
길디긴 발굴 과정이었지만, 이덕리는 뛰어난 실학자적 면모로 인해 충분히 양지에 드러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상두지』가 국방 관련 제안서라면 『동다기』는 차 전문서로서의 차에 관한 세부 내용은 물론이고 국방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재원이 될 만한 방책을 내놓기도 한다. 이 두 저술로 인해 이덕리는 18세기 지성사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어둠 속에서 걸어나온 이덕리는 누구인가  
 
『동다기』의 실제 집필자를 추적하는 실마리의 첫발은 우연한 기회에 떼어졌다. 저자는 초의의 『동다송』을 읽던 중 제37~40구 아래에 달린 주석에서 ‘『동다기』에 이르기를’이란 구절에 시선이 붙들렸다. “이상하다. 이 구절은 얼마 전 강진에서 이효천 노인이 보여주었던 『강심江心』이란 책에 실린 「기다記茶」의 내용과 같은데…….” 마침 노인에게서 자료를 빌려온 터라 곧장 대조를 해보니 「기다」가 곧 『동다기』였다. 둘은 한 글자의 오차도 없이 내용이 똑같았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다산의 또 다른 자료가 세상 빛을 보게 되는 것인가.’ 당시의 상식으로 『동다기』의 집필자는 다산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을 갖고 자료를 정리하던 중 정민 교수는 전혀 뜻밖의 인물, 문중에서조차 그 존재를 몰랐던 이덕리란 인물이 이 책의 실제 저자임을 알게 된다. 
 
“『강심』의 「기다」 끝에 필사자인 이시헌은 저자인 이덕리李德履가 ‘옥주적중沃州謫中’에서 이 책을 저술했다고 썼다. 이덕리가 죄를 지어 진도에 유배 와 있으면서 지었다는 것이다. 죄인 신분이었으므로 이덕리는 자신의 저서에 이름 대신 본관만 밝혔고, 이것이 필사되어 유통되면서 ‘전의리全義李 저著’란 해괴한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시헌이 『강심』에서 무심코 한 줄의 추기를 남겨놓지 않았다면 우리는 저자를 끝내 확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본문에서)
 
이덕리는 철저히 왜 잊히려 했고 잊힐 수밖에 없었을까. 저술은 버젓이 남아 전하는데, 왜 책표지에 자기 이름 새기기를 거부했을까. 발단은 그의 형 이덕사李德師(1721~1776)에게서 비롯되었다. 정조는 즉위일에 윤음을 내렸는데, 그 내용은 해석하기에 따라 아버지 사도세자를 예우하겠다는 뜻으로도 읽혔고, 정반대로 사도세자 추숭 논의를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엄포로도 읽혔다. 이덕사는 사도세자를 예우한다는 쪽으로 해석해 사도세자 추숭을 건의하는 방향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이것은 엄청난 광풍을 일으켰다. 노론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정조는 이덕사의 상소문이 올라오자 격노했고, 곧장 체포해 이튿날 능지처참에 처했다. 그의 가문은 멸문지화를 입어 당시 52세였던 동생 이덕리 역시 진도로 귀양 가게 되었다. 이들 형제는 명문의 후예로 문명이 높아 당대의 선집에 이름을 올렸던 문인이었지만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20년의 세월, 이덕리는 71세가 되기까지 유배지의 민가 골방에 틀어박혀 이름을 숨긴 채 『강심』과 『상두지』 집필에 몰두했다. 이후 다시 영암으로 이배되었다가 73세의 나이로 이름도 자취도 없이 세상을 떴다. 
저자가 자료를 발굴하면서 새롭게 확인한 이덕리는 그저 『동다기』의 집필자로만 기억될 인물이 아니었다. 변방의 둔전 경영과 축성 및 도로와 수로 운영, 각종 화포와 수레 제도의 적용을 꼼꼼히 정리한 것이 『상두지』라면, 농한기 유휴 인력을 활용한 차 생산과 국가 전매를 통해 엄청난 국부를 창출하자고 외친 것이 「기다」다. 게다가 「기연다記烟茶」에서는 국가적인 금연 정책을 실시할 것을 주장했다. 담배가 국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하고, 담배로 인한 실생활의 폐해를 고발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나아가 그는 국가 정책으로 확고하고 단호하게 금연령을 시행하여, 이를 통해 창출되는 경제 효과만으로도 1년에 1260만 냥을 절약할 수 있다며 시행의 구체적인 방법까지 단계별로 제시했다. 
이들 저술로 18세기의 잊힌 실학자 한 사람은 깊고 오랜 어둠 속에서 밝은 빛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나오고 있었다. 사실상 다산은 『경세유표』 『대동수경』 『민보의』에서 한 차례씩 『상두지』를 인용하면서 이덕리의 실명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도 그만 중간에서 오도돼 1974년에 발간된 『여유당전서보유』에서도 『상두지』가 다산의 저술로 실려 있었다. 
자세히 보면 『상두지』 서문 끝에는 작은 글씨로 “공이 야인에 이름을 가탁코자 하여 권도權道로 이 서문을 지어 스스로를 감추었다”라는 필사자의 추기가 있다. 
이덕리가 『상두지』를 쓴 것은 조정에서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장래의 근심을 논하기 위해서였다. 나라에 전란이 없은 지 200년이 되어 장마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고, 그저 끼리끼리 어울려 놀기만 하는 벼슬아치들의 안일에 빠진 태도를 경계했다. 여기서 말하는 ‘음우지비陰雨之備’에서 책 제목인 ‘상두桑斗’의 의미를 끄집어냈다. 상토로 읽지 않고 상두로 읽는 것은 고사가 있다. ‘상두’란 말은 『시경』 「빈풍」 ‘치효鴟鴞’에서 “장맛비가 오기 전에 저 뽕나무 뿌리를 가져다가 둥지를 얽었거늘迨天之未陰雨, 徹彼桑土, 綢繆牖戶”이라 한 데서 나왔다. 상두桑土는 뽕나무 뿌리다. 올빼미가 지혜로워 큰비가 오기 전에 뽕나무 뿌리를 물어다가 미리 둥지의 새는 곳을 막는다는 뜻으로, 환난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 『상두지』의 내용은 크게는 변방의 둔전 경영과 이에 따른 제반의 기반시설 및 축성에 관한 내용 부분과, 북방 오랑캐와의 전쟁 시 각종 대포와 무기류의 재원 및 활용법 설명, 그리고 『형주무편荊州武編』과 『후감록後鑑錄』 『만사합지蠻司合誌』 등 중국 군사 및 병학서에 나오는 구체적인 성 공략법과 무기 생산을 위한 제철과 제련에 관한 내용을 초록해서 정리한 세 부분으로 대별된다. 『상두지』를 읽게 된 다산은 그의 꼼꼼한 주장에 상당히 감복했던 듯 자신의 저술에서 세 차례나 인용해 세상에 그와 이 책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렸다.
 
새로 쓰는 차 문화사, 기다 
 
「기다記茶」는 『상두지』의 자매편 저술이었다. 요컨대 이덕리는 『상두지』에서 제안한 국가 안보 시스템에 관한 자신의 구상을 현실화하는 데 소요되는 막대한 재원을 차 무역을 통해 힘들이지 않고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책 『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는 애초에 「기다」의 전체 내용을 교주해서 소개하는 차 전문서로 기획되었다. 하지만 글쓴이의 몸집이 거인과 같은 면모로 밝혀지면서 실학자로서의 이덕리를 자리매김하는 데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이와 나란히 본문에서는 『동다기』를 교감하며 그 내용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차 이론서는 손에 꼽을 만한 게 없을 정도로 빈약하다. 원래 그랬던 건 아니다. 신라와 고려 때 은성했지만 조선에 들어와서는 내리막길로 치달았다. 차나무는 땔감으로나 쓰는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중국인은 저리도 차를 즐기는데 우리는 왜 안 마시는지 모르겠다며 세종은 의문을 표한 바 있다. 임진왜란 때 중국 장수 이여송 또한 선조에게 무슨 까닭에 귀한 차나무로 차 만들 생각은 않고 방치하는가를 물었지만 임금은 신통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조선 사람들은 숭늉이면 충분하다 여겼고 차보다 막걸리를 더 즐겨 마셨다. 조선은 차에 관한 한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조선 전기에 이목이 「다부茶賦」를 지었지만 생활 속에 체화된 차 문화를 논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20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 18세기에 이르러 운해의 『부풍향차보扶風鄕茶譜』가 구체적인 제법을 논했고, 다시 50년 후 「기다」가 나오며 그 40년 뒤 초의가 『동다송』을 지었다. 
하지만 초의의 『동다송』이 사실상 차 관련 문헌 여러 가지를 재인용한 데 그친 반면, 이덕리의 「기다」는 차에 대한 정확한 식견과 이해를 갖춰 국부 창출의 근원으로 차 무역의 필요성을 공격적으로 제안한 독창적 저술이었다. 이 저술은 「다설茶說」 5조, 「다사茶事」 14조, 「다조茶條」 7조를 번역과 그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제공하고 있다. 이덕리의 저술처럼 차의 생산부터 판매까지, 그것도 국제 무역을 통한 국부 창출의 구체적 매뉴얼로 만들어 제시한 경우는 앞에도 없었고, 그 뒤로도 없었던 단 한 번의 일이다. 그의 목소리는 힘이 있고, 그의 로드맵은 단계별로 매우 분명하고 실현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덕리가 그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까지 제안했어도, 그의 『동다기』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은 채 강진 백운동 골짝의 다락방 안에서 200년 가까운 세월을 묵혀 있었다. 
 
***
이덕리는 열아홉 살에 처음 차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당대의 골동품 수장가로 이름을 날렸던 상고당 김광수를 방문했다가 중국차를 맛보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차에 관한 한 문외한이었던 그는 저술까지 남기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정민 선생도 십수 년 전에는 차에 관한 한 문외한이었지만, 문서를 발굴하고 이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차 전문서에 교감 작업까지 하게 되었다. 이덕리의 「기다」는 현재 『강심』의 필사본인 『강심만록江心漫錄』이라는 타이틀 안에 깨끗이 필사되어 전한다. 이 책에서는 『강심만록』 전체와 『강심』 중 「기다」, 『다경』 중 「기다」 부분의 자료를 부록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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