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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 (모든 것을 빨아들인 블랙홀의 역사)
THE SECOND WORLD WAR
앤터니 비버
김규태 박리라
글항아리
2017년 3월 13일 발행
양장본 | 1288쪽 | 225*152
978-89-6735-416-9
정상
55,000원

한 뛰어난 역사가가 기록한 고통과 승리의 서사시. 저자 앤터니 비버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전쟁 역사가로서 정점에 위치해 있었다. 이 책은 전쟁의 ´본질´과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이다.

「인디펜던트」는 이 책에 대하여 "마치 톨스토이가 써내려간 전쟁 이야기를 읽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 책이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기 식으로 묶어내는 데 머물지 않고 그 안의 인간 서사를 탁월하게 재현해낸 것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 대규모 전쟁에 관한 비버의 광범위하고도 권위 있는 설명은 세 가지 점에서 뛰어난데, 이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다룬 <디데이>, <피의 기록, 스탈린그라드 전투>, 그리고 베를린 공방전을 다룬 <베를린: 몰락> 등 그의 연구가 갖는 고유의 특징이기도 하다.

첫째, 비버는 모든 주요 사건, 참가자, 전장을 아우르는 생생한 전략과 역사적 사건들을 엄격하고도 분명하게 설명한다. 둘째, 이전 저작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비버는 전쟁의 모든 잔혹성 및 이를 보상하는 행위에서 나타나는 인간적인 요소를 기록하는 데 뛰어난 솜씨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비버는 전쟁의 불합리함 자체와 극도로 야만적인 특성, 그리고 전쟁이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완전히 바꿔버린다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영국의 저명한 전쟁사가이자 작가. 영국의 윈체스터 대학과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서 수학한 그는 켄트 대학과 바스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런던대 버크벡 칼리지 초빙 교수로 있다. 『피의 기록, 스탈린그라드 전투』 외에 『크레타: 전투와 저항』(런시맨 상), 『해방 후의 파리: 1944~1949』 『베를린: 몰락』(롱맨-히스토리 투데이 트러스티 상), 『디데이: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앙리 말레르브 상과 RUSI 웨스트민스터 상), 『스페인 내전: 20세기 모든 이념의 격전장』(라 방과르디아 상)을 포함한 다수의 역사서와 소설을 발표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8월 만주 변방에서 시작되어 꼭 6년이 되던 해에 소비에트가 중국 북부 지역을 침공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유럽에서 벌어졌던 전쟁과 태평양 및 아시아에서 있었던 전쟁은 완전히 별개의 싸움이었지만, 그럼에도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들이 서로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이토록 광범위한 영역에서 펼쳐진 만큼, 사상 최악의 재앙인 제2차 세계대전은 다른 어떤 대립보다도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신만의 자료 해석과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피의 기록, 스탈린그라드 전투』 『베를린: 몰락』 『디데이』와 같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쓴 앤터니 비버는 한 사건의 모든 면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배열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는 최신 학술 자료를 활용하여 북대서양과 남태평양 사이, 설원과 북아프리카 사막 및 미얀마 밀림에서 벌어진 일들뿐만 아니라, 국경선의 SS 절멸부대, 처벌대대에 징집된 굴라크 죄수들, 중일전쟁에서 보여준 일본군의 극악무도함에 관한 이야기 등을 하나의 큰 그림으로 엮어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

휴먼 드라마에서 도덕적인 선택은 기본 요소다. 역사상 제2차 세계대전만큼 모든 이에게 극심한 딜레마를 안긴 사건은 없었으며, 그 사건이 내포하고 있는 개인과 집단의 비극, 정치권력의 부패, 이념적 위선, 지휘관들의 독선, 배신, 사악함, 자기희생, 상상을 초월하는 가학성,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연민에 대한 재현에 있어서도 비버의 책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비버는 엄청나게 큰 도화지에 큼직큼직한 사건들을 그려내는 한편, 역사상 가장 끔찍한 이 전쟁이 휘두른 압도적인 힘에 짓눌려 삶이 망가진 일반 병사와 시민들의 운명도 놓치지 않고 묘사한다.
머리말
1. 전쟁의 발발
2. 폴란드의 대붕괴
3. 가짜 전쟁에서 전격전까지
4. 용 그리고 떠오르는 태양
5. 노르웨이와 덴마크
6. 서쪽에서 벌어진 공습
7. 프랑스의 함락
8. 바다사자 작전과 영국 본토 항공전
9. 반향
10. 히틀러의 발칸 전쟁
11. 아프리카와 대서양
12. 바르바로사
13. 인종 전쟁
14. "대동맹"
15. 모스크바 공방전
16. 진주만
17. 중국과 필리핀
18. 전 세계를 휩쓴 전쟁
19. 반제와 SS 군도
20. 일본의 지배와 미드웨이 해전
21. 사막에서의 패배
22. 청색 작전에서 바르바로사 재개까지
23. 태평양에서의 반격
24. 스탈린그라드
25. 알알라메인과 횃불 작전
26. 남러시아와 튀니지
27. 카사블랑카와 하리코프 그리고 튀니스
28. 철조망 뒤의 유럽
29. 대서양 전투와 전략 폭격
30. 태평양, 중국, 버마
31. 쿠르스크 전투
32. 시칠리아에서 이탈리아로
33. 우크라이나 그리고 테헤란 회담
34. 독가스 홀로코스트
35. 단단한 아랫배, 이탈리아
36. 소비에트의 춘계 공격
37. 태평양, 중국, 미얀마
38. 기다렸던 봄
39. 바그라티온 작전과 노르망디 상륙작전
40. 베를린, 바르샤바, 파리
41. 대륙타통작전과 레이테 만 해전
42. 실현되지 않은 꿈
43. 아르덴과 아테네
44. 비스와에서 오데르까지
45. 필리핀, 이오 섬, 오키나와, 도쿄 공습
46. 얄타, 드레스덴, 쾨니히스베르크
47. 엘베 강의 미군
48. 베를린 작전
49. 죽음의 도시들
50. 원자폭탄과 일본 정복

감사의 말
약어 해설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제2차 세계대전 연구의 기념비적 결정판
앤터니 비버 전쟁사가 도달한 최고봉

한 뛰어난 역사가가 기록한 고통과 승리의 서사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1939년 8월 31일 오후, 위와 같은 작전 개시 암호와 함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다. 7년간 60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역사적 사건보다 그에 관한 기록이 더 많을 정도로 방대한 규모로 연구가 되어왔으며, 그 본질 또한 파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워낙 많은 국가 간의, 이념상의, 경제적·정치적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크건 작건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고, 수많은 국가의 운명을 바꿔놓았으며, 우리가 지금까지 고심하는 문제들에 난생처음 직면하게 했고, 인간 본성의 최선과 최악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극소수의 역사가만이 이 비극과 승리의 서사시를 지면에 담아낼 수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저자 앤터니 비버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전쟁 역사가로서 정점에 위치해 있었다. 이 책은 전쟁의 ‘본질’과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인디펜던트』는 이 책에 대하여 “마치 톨스토이가 써내려간 전쟁 이야기를 읽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 책이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기 식으로 묶어내는 데 머물지 않고 그 안의 인간 서사를 탁월하게 재현해낸 것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 대규모 전쟁에 관한 비버의 광범위하고도 권위 있는 설명은 세 가지 점에서 뛰어난데, 이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다룬 『디데이』, 『피의 기록, 스탈린그라드 전투』, 그리고 베를린 공방전을 다룬 『베를린: 몰락』 등 그의 연구가 갖는 고유의 특징이기도 하다.

비버의 ‘제2차 세계대전사’가 갖는 특징

▷ 공정한 연대기, 침대에 누워서 읽을 수 있는 벽돌책


첫째, 비버는 모든 주요 사건, 참가자, 전장을 아우르는 생생한 전략과 역사적 사건들을 엄격하고도 분명하게 설명한다. 이 책은 소련 특파원 바실리 그로스만의 매우 유용한 일기와 같은 개인 자료들에 인용된 귀중한 사료들을 제시하고 있다. 총 50개 장으로 이뤄져 있는 이 책의 각 장의 제목은 장마다 언급되는 하나 혹은 두 개의 주요 사건을 반영하고 있다. 편편마다 적절한 스토리의 구조를 갖고 있어 가독성 있는 역사의 전범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해 파편적 지식만 가진 독자들에게 포괄적인 설명을 해주는 유일한 책인데, 이는 전쟁의 정치적 배경과 군사적 사건 등을 공정하고 균형 있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비버의 특별한 능력은 가장 중요한 정보를 상대적으로 간략한 단락에 담아내는 데 있다. 그는 주요 참가자들의 장황한 인용문을 따로 분리하기보다는, 이를 한 단락 안에 잘 녹여서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1200페이지가 넘는 책 속의 각 사건을 읽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비버도 이를 잘 알아서, 최소한의 단어로 많은 것을 쉽게 얘기하려 했다. 또한 이 책은 최근 호평을 받고 있는 맥스 헤이스팅스의 책 The Secret War: Spies, Ciphers, and Guerrillas, 1939-1945와 비교해 볼만하다. 헤이스팅스의 책은 개인의 편지, 일기, 인터뷰 등 일반인들의 고통과 승리의 기록을 상세히 설명하는 현장 관점에서 쓰인 책인 반면, 비버의 책은 전쟁의 야만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개인 사례들을 충분히 인용하고 있는데도 설명 부분에서 좀더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 극동 지역, 태평양의 분쟁에 초점 맞춘 전개
비버는 다른 작품들처럼 이 책을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하지 않고, 이보다 한 달 전에 만주에서 벌어져 소련이 패배한 일본과의 전투로부터 시작한다. 실제로 이 책이 다른 책들과 구분되는 주요 요소 가운데 하나는 유럽에서 벌어진 사건의 기원이 되었던 극동지역에서 벌어진 중국, 일본, 소련 간의 분쟁에 지속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난징 대학살로 특징지을 수 있는 일본의 중국 침략 이후 책에서 표면화된 이 주제는 그 어떤 것보다 전쟁의 미래에 더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비버는 같은 방식으로 유럽과 태평양에서 벌어진 영국, 프랑스, 알알라메인, 스탈린그라드, 진주만, 노르망디, 이탈리아, 미드웨이 전투와 유보트U-Boat와의 교전을 생생하고도 분명하게 묘사하는 반면, 이집트, 그리스 그리고 미얀마와 같은 주요 전쟁 지역에 관해서는 (상대적으로) 설명을 간략히 한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전쟁 초기 소규모의 핀란드 군이 게릴라 전투라는 방식으로 대규모 소련군을 압도적으로 패퇴시킨 부분이다. 주요 전투의 상황과 위치를 보여주는 분명하고 커다란 지도 각각에는 무기 시스템, 암호 해독 그리고 지역 특수 장비에 관한 비버의 간결한 설명이 붙어 있다. 유대인 학살과 소련의 숙청 작업에 관한 장에서, 그는 20세기의 양대 폭군 히틀러와 스탈린에 의해 자행된 끔찍한 범죄 행위를 냉정하게 묘사하고 있다. 인간과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 이 폭군들의 뛰어난 능력을 상세하게 묘사하면서도 말이다. 특히 스탈린은 병적으로 자기중심적이기는 하지만 얄타, 테헤란 그리고 포츠담에서 루스벨트 그리고 처칠과 회담하면서 전후 성과를 공유하기 위한 전략을 구상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 끔찍한 만행과 믿을 수 없는 이타성의 공존
둘째, 이전 저작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비버는 전쟁의 모든 잔혹성 및 이를 보상하는 행위에서 나타나는 인간적인 요소를 기록하는 데 뛰어난 솜씨를 보여준다. 전쟁의 모든 공포는 이 책에 잘 나타나 있다. 소련 비밀경찰은 수십만 명에 달하는 자국 국민을 사살했고, 일본군은 중국 여인들을 총검으로 난자했다. 이 피도 눈물도 없는 군인들은 괴이한 모습의 얼음 조각상을 급속도로 닮아갔고,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극심한 기아와 광기로 인해 자신의 아이들을 잡아먹었으며, 러시아 군인들은 베를린을 ‘해방’한 후에 8세에서 80세에 이르는 모든 여자를 강간했다. 유대인 학살은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비버가 새롭게 폭로한 좀 더 끔찍한 사실 가운데 하나는 일본군들이 태평양 지역 점령 기간에 지역 주민과 전쟁포로에게 광범위하게 행했던 만행이었다. 특히나 충격적이고도 놀라운 사실은 일본 의사들이 미군 전쟁포로들에게 한 끔찍한 생물실험이었다. 이 실험들은 대개 실험 대상의 목숨을 앗아가버렸다. 맥아더 장군이 이 일본 의사들이 동맹국들에 상세한 기록을 제공해주리라는 기대감 때문에 이들을 기소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충격적인 사실이다. 한국에 진주한 미 군정이 행정적 편의 때문에 친일 부역자들을 그대로 유임시킨 것처럼. 
이런 이야기는 비버가 묘사하는 전쟁이 끔찍함과 도덕의 경계에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해준다. 어떤 사람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이타적인 행동도 보여준다. 평범한 독일인들이 유대인을 보호하기 위해 희생하고, 수적으로 완전 열세인 유대인들이 극악무도한 폭군들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며(바르샤바 봉기처럼), 또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종교, 계급, 정치적 성향을 넘어섰던 사람들이 있었다. 비버는 이런 설명에 유난히 생생하고, 때로는 재미있는 인물 묘사를 곁들여 주요 인물들의 성격을 간결하게 보여준다. 예컨대 체임벌린은 “깃이 넓은 칼라와 에드워드 7세 시대에 유행했던 콧수염, 말아 접은 우산을 든”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비버는 처칠과 루스벨트의 돈독하기로 유명했던 관계를 포함한 모든 중요한 사적 친분을 기지, 연민, 그리고 통찰력을 담아 기록했다. 

▷ 전쟁의 불합리함을 일깨우는 이해할 수 없는 행위들
또한 비버는 전쟁의 불합리함 그 자체와 비현실적인 특성을 독자에게 잘 전해준다. 가령 다음 사건을 보자. 파리에서 어느 젊은 폴란드 유대인이 독일 대사관 공무원을 암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독일은 나치 SA 돌격대를 투입해 제정 러시아 시절 유대인 학살 사건의 독일판에 해당되는 ‘수정의 밤’ 사건을 일으킨다. ‘수정의 밤’은 건물 유리창이 모두 깨진 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SA 돌격대는 유대교 회당을 불태우고 유대인을 공격하고 살해했으며 쇼윈도를 모조리 깨부쉈다. 그러자 헤르만 괴링은 벨기에에서 가져온 판유리를 모두 교체하는 데 드는 외화가 얼마인 줄 아느냐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전쟁의 광기는 그 광기의 주체조차 피해자로 만들 정도로 모든 것을 앗아가는 법이다. 
또 이런 일화도 있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가 그토록 쉽사리 독일의 공격에 무너지고 치욕적으로 독일의 인종 청소에 협조한 일에 대해 의문을 갖곤 한다. 비버는 그 이유를 잘 보여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전쟁 노력에서 중심 역할을 했던 프랑스군은 유럽에서 가장 강하고 자국 영토를 확실히 방어할 수 있는 군대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실상은 달랐다. 프랑스의 치명적인 결점은 공격에 대한 반응이 지나치게 느리다는 것이었다. 이는 단지 견고한 수비적 경향 때문만이 아니라 부족한 무선 통신에서 오는 문제이기도 했는데, 1938년에 독일은 구식 프랑스 암호를 모두 해독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활력이 없는 최전방을 방문한 로이터 통신 특파원13은 프랑스 병사들에게 독일군의 움직임이 뚜렷하게 보이는데도 왜 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놀란 듯했다. 한 사람이 “저들은 나쁜 자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발포를 하면, 저들도 발포를 할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방어 진지 구축을 제외하고 프랑스군은 훈련을 거의 실시하지 않았다. 프랑스군은 마냥 기다리기만 했다. 무단으로 자리를 이탈하고 카드 게임을 하고 술을 마시고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육군 기상관측소에서 복무하던 사르트르는 이때 『자유의 길』 제1권과 『존재와 무』 일부를 쓰게 된다. 그 겨울, 그는 “오로지 수면과 식사, 추위 피하기가 문제였다. 그뿐이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1940년 프랑스에서는 독일군이 국경 건너편에 집합한 광경이 빤히 보였는데도 프랑스 방송에서는 “나는 기다리겠다”라는 노래를 조심스럽게 틀었다. 

▷ ‘불운’ 때문이라는 막연함을 주는 전쟁의 야만의 구조 강조
마지막으로 비버는 전쟁의 불합리함 자체와 극도로 야만적인 특성, 그리고 전쟁이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완전히 바꿔버린다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50~60년이 지난 지금 제2차 세계대전은 비극적이기는 하지만 합리적으로 진행되어 선이 악을 무찌르고 승리했던 연속적인 사건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비버의 이런 설명은 수많은 사건이 행운 또는 불운 때문에 일어났을 뿐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도록 해준다. 한편 그는 이 장엄한 서사시를 마무리하면서 전쟁의 불합리함 안에 희망이 존재하고, 만약 사람들이 조금만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거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경우 ‘프랑스, 영국, 미국이 1930년대에 심상치 않게 군사 채비를 강화하던 히틀러의 권력을 알아채고, 힘을 모아 그를 막았더라면……’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지나고 나서 이런 생각을 하기는 쉽다. 그러나 인간이 본능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언제나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말도 유효하다. 그래서 비버는 결론에서 “인간사에서 도덕적 선택이야말로 근본적인 요소다. 인간성의 핵심이기 때문이다”라고 되짚어준다. 우리가 이 긴 책을 읽으면서 끝까지 기억해야 할 교훈은 바로 이 점이다.

▷ 끔찍한 고통과 그로 인한 ‘공포’ 체험의 순간
오스트리아 태생 미국의 물리학자 이시도어 라비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우리가 배운 놀라운 일은 사람의 마음이 바뀌자 너무나 쉽게 사람들을 죽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라고 썼다. 이것은 무기 기술, 특히 원자폭탄의 발명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도덕적 붕괴 또한 이런 살인 행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정도 규모의 대학살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역사가들에게는 청난 도전이다. 문제는 폭과 깊이다. 상황을 지나치게 자세히 설명해 독자들을 진력나게 하지 않으면서 전쟁의 방대함을 담아내야 한다. 이 책은 이런 부분을 충분히 감안한다. 
비버의 이번 책은 사회가 붕괴되고 살인 행위가 쉽게 이루어질 때 인간의 도덕성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런 때가 오면 인간의 풍부한 창조력은 대량 학살에도 기여하게 된다. 유대인 죄수들을 담당하는 독일군은 죄수들에게 몸을 정어리처럼 차곡차곡 쌓아 올리라고 명령했다. 이는 공동묘지 공간을 좀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탄약을 절약하는 기술이기도 했다.
제대로 된 전쟁 역사에서는 피비린내, 배설물 냄새 그리고 공포의 냄새가 나야 한다. 비버의 책에서는 이런 냄새가 난다. 이 책은 대규모 전투를 재구성하고 있지만,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는 수많은 개인을 함께 엮어나가고 있다. 그리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책 가운데 전쟁을 가장 개인적인 수준에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대량 학살의 무의미함, 잔인함, 어리석음뿐만 아니라 시인 찰스 솔리가 “소리 없이 죽어간 수많은 죽음”이라고 표현했던 사람들의 끔찍한 고통을 배운다. 영웅은 극히 드물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영웅은 주로 비현실적인 생각 속에 존재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비버는 찬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흐릿하게 하면서,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묘사의 폭은 대폭 넓혔다. 마치 “다른 사람이 말했던 것과 같은 수월한 일들을 말하지 말라”는 금언을 지키는 듯이 말이다. 저자는 수월한 묘사를 버리고 전쟁의 진정한 모습을 그리고자 했고, 그로 인해 이 책은 공포로 가득 차 있다.

▷ 한국인 양경종으로 드러내는 ‘개인들의 운명’
이 책을 든 한국 독자들은 머리말을 읽자마자 묘한 기분에 휩싸일 것이다. 저자 앤터니 비버는 1938년 일본군에 강제 징집돼 만주에 배치된 양경종이라는 한국인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 책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1944년 6월, 연합군이 노르망디를 침공했을 때 한 젊은 병사가 미군 공수부대에 투항했다. 미군이 투항 당시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던 그 병사는 한국인이었다. 그의 이름은 양경종이었다. 1938년, 양경종은 열여덟 살에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관동군에 배치되었다. 1년 뒤, 그는 할힌골(노몬한) 전투에서 붉은 군대에 붙잡혀 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 소비에트군 당국은 한창 위기에 봉착해 있던 1942년에 수천 명의 포로와 함께 양경종을 소련군으로 강제 복무시켰다. 그 뒤 1943년 초에는 우크라이나 하리코프 전투에 투입되었다가 독일군 포로가 되었다. 1944년에는 독일 군복을 입고 프랑스로 파병되어 동방군단에 복무하면서 유타 해안의 내륙에 자리 잡은 코탕탱 반도 기지에서 대서양의 벽을 강화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영국 포로수용소에 구금되었다가 석방된 뒤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과거를 숨긴 채 살았다. 그렇게 미국에 정착한 양경종은 1992년 일리노이 주에서 생을 마감했다.
왜 비버는 양경종의 이야기를 실마리로 삼았을까? 그 이유에 대해 말한다. “전쟁에서 일본군, 소련군, 독일군에 차례로 징집되어 의도치 않게 베테랑 군인이 되어버린 그는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이 무시무시한 역사적 폭력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지는가를 양경종은 강렬하게 각인시키고 있다.” 이 책의 가치는 저자가 이런 강력한 힘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전쟁은 주로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거대한 괴물로 표현된다. 하지만 이는 자칫하면 전쟁 공포를 회피하려는 핑계거리가 될 수 있다. 비버는 제2차 세계대전이 전쟁 참가자의 수라는 면에서 그 어떤 전쟁보다 더 큰 전쟁이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이 엄청난 대량학살에서 개인들이 어떻게 고통받았는지 그 자세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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